17. 당신이 힘들까 봐 나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나희덕 「찬비 내리고」와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

by 손병일

아내와 나는 만난 지 세 달만에 결혼식을 올리는 모험을 감행했다. 도대체 무슨 콩깍지였고, 어떤 용기였을까. 신혼 생활과 함께 나는 아내의 진면목을 보게 되었다. 결혼 전 항상 생글생글 웃음만 짓던 얼굴에선 도무지 찾을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그 모습은, 아버지 사후에도 내 마음과 불화하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내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 다혈질의 폭주 기관차가 되곤 했다.


아내에게 처음 뜨악한 감정을 느꼈던 것은 내가 쓴 시에 대해 조언을 구했을 때였다. 처음 자작시를 보여주었을 때 아내는 성심껏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하지만 두 번째 시를 보여주었을 때는 버거운 숙제를 받아 든 사람처럼 울컥 짜증을 냈다. 그 순간 아내의 표정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의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내는 시나 문학보다 드라마나 가요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교사였다. 시를 평하는 일이 분명 부담되고 힘든 일이었을 터였다. 아내가 시 품평이 힘드니 조언을 구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아내에게 자작시를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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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코파일럿


그러다 결혼 후 몇 개월이 지났을 즈음 아내가 내게 제대로 어퍼컷을 날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내와 나는 주말이면 부평 신혼집에서 처가와 본가가 있는 안양엘 다녀왔다. 금요일엔 처가에서 자고 토요일엔 본가에서 잔 뒤 주일에 교회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일요일 늦은 밤에도 안양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슈퍼에 들러 장을 본 뒤 연립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내가 켜두고 갔음직한 화장실의 백열등 불을 본 아내가 불같이 화를 냈다. 요는 나의 부주의한 실수로 2박 3일 동안 전기세가 얼마나 많이 낭비됐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가 이런 여자와 결혼을 했구나… 마음이 착잡해졌다. 아내의 그런 행동은 아버지에게 상처받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감정이 되살아나게 만들었다. 그리도 사소한 것으로 어떻게 그토록 거대한 분노를 폭발할 수 있는지 나는 늘 아버지에게 의문을 품었었다. 그런데 이제 생애의 반려자에게서 그런 감정 폭발을 겪어내야 하는 것이었다. 살아온 인생보다 훨씬 더 긴 여생을 말이다. 나는 장을 봐온 비닐봉투들을 식탁 위에 올려놓은 뒤 넋을 읽은 표정으로 화장실을 쳐다보았다. 누르스름한 백열등이 작고 더러운 화장실 안을 넘치도록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아내와 수월치 않았던 신혼 시절 내게 큰 위안을 준 건 나희덕의 시들이었다. 나희덕의 시는 이 책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실렸을 정도로 내게 힘을 주었다. 특히 그의 초기 시들은 그야말로 심금을 울리는 절창이다. 「찬비 내리고」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나의 신혼은 찬비의 연속이었다. 아내와 세 달 동안 교제하며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생활이라는 찬비에 속수무책으로 젖곤 했다. 나는 여전히 해맑은 아내 앞에서 ‘아프지도 못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세 달이라는 기간은 배우자의 면모 중 지극히 일부분만을 볼 수밖에 없는 기간이었다. 만난 지 세 달 밖에 안 된 여자와 결혼했다는 것은 엄청난 도박을 한 셈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런 일은 드물었다는 점이었다.


평소의 아내는 여전히 생글생글 잘 웃고 밝디밝은 신혼의 아내였다. 그런 아내에게 ‘당신이 이럴 때 내가 아프다’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따금 내가 너무 위축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내 입장에서도 내가 마뜩잖았던 점들이 많았을 것이다. 시 씁네 하며 생활과 현실을 등진 채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하는 모습이 뜬구름만 잡는 한량으로 보였을 터였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늘 아내가 맛있는 찌개로 저녁을 차려주었다. 특히 늙은호박고추장 찌개는 전에 맛보지 못했던 별미였다. 나는 찌개의 맛에 흠뻑 빠져서 밥을 세 그릇이나 비우곤 했다. 고추장이 배어든 늙은호박의 쫄깃한 식감과 풍미가 밥상의 신세계였다.


저녁을 흡족하게 먹고 난 후에 아내와 나는 각자 좋아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작은 방에서 책을 읽고 시를 쓰는 것이었고, 아내는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축구를 하거나 테니스를 치고 돌아온 날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책을 읽다 보면 자꾸만 졸음이 밀려왔다. 나는 꾸벅꾸벅 졸면서도 세계문학이나 한국현대시 읽기에 빠져들었다. 나름대로 안온하고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졸음을 못 이기며 책을 읽다가 졸다가 하다 안방에서 외치던 아내의 목소리에 잠이 깨곤 했다.


“스포츠뉴스 한다!”


9시 30분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외로움이 뒤섞인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면 읽던 책을 덮고 안방으로 들어가 함께 스포츠뉴스를 봤다. 아내는 체육교사인 남편을 스포츠로 유인한 것이었다. 그런 뒤 재밌는 미니시리즈 하는 날이면 아내와 함께 드라마를 보았다. 사실 대부분의 신혼 시절은 그렇게 안온하고 평화로웠다.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조촐한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돈가스와 샐러드 요리를 멋지게 차리고 난 아내는 전등을 끄고 촛불을 은은하게 밝혔다. 나는 약간 어색해져서 포크와 나이프로 돈가스를 썰어 먹은 뒤 아내가 갖다 준 스프를 떠먹었다. 아내는 마치 경양식집에 온 듯 맛있는 요리와 분위기로 한껏 이벤트를 즐기고 싶은 것이었다.


그날 나는 아내의 정성과 노고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야 했건만… 그런 돈가스와 촛불이 영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감탄과 찬사의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런 양식보다는 아내의 된장찌개가 훨씬 더 맛있고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저녁에 나는 감동하는 연기라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쑥맥인 이 남자는 그런 걸 도통 하지 못했다.


밋밋한 이벤트가 끝나고 난 뒤 아내가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참 무드도 없는 남자랑 결혼을 했네….”


아내는 그런 남자를 참고 살아 주었던 것이다.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는 ‘아내를 외롭게 만든’ 남편이었던 나의 신혼 시절을 아프게 떠올리게 만든 영화다. 나희덕의 시가 내 마음의 젖은 부분을 어루만져주었다면,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영화의 주인공 영민은 나처럼 공무원 생활을 하며 시를 쓰는 남편이다. 아내 미영은 가정주부로 나온다.


영민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시 쓰는 일에 몰두하며 집안일에 등한시했던 나로 인해 아내의 속이 얼마나 터졌을지 뒤늦게나마 깨닫게 해주었다. 방구석에서 노트북 앞에 앉아 시 짓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영민에게 미영이 잔소리를 퍼붓는다.


“쉬할 때 변기 뚜껑 좀 올려주면 안 될까? 나한텐 연애편지 한 번 안 써줬으면서 시만 열심히 쓰냐?”


“시상을 다 까먹었다”며 괴로워는 영민에게 미영의 잔소리가 더 이어진다. “오래된 추리닝 바지와 꼬질꼬질한 남방만 왜 계속 입고 다니냐”, “먹은 것 왜 바로바로 안 치워서 꼭 내가 치우게 만드냐”…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얼마 뒤 영민은 꿈에 그리던 문학지에서 시 부문 신인문학상을 받는다. 세상일이 대개 그렇듯 너무 좋은 일에는 늘 그림자가 따라오는 법이다. 문학상에 들떠 있던 영민은 수상 소감에서 존경했던 시인에 대한 언급을 늘어놓을 뿐 아내 미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 모습에 미영은 적지 않은 상처를 받게 된다.


시인이 된 영민은 더욱 시작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집안일이나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이 거의 없어지고 만다. 그 즈음 영민은 존경했던 시인이 시상식 직후 세상을 떠난 충격으로 혼자만의 힘든 시기를 보낸다. 그런 생활이 이어지면서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이 점점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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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BS 연예뉴스


노트북 앞에서 시작에 골몰하고 있던 영민은 “배가 아픈데 병원에 가봐야겠지?”라고 묻던 미영의 말을 듣지 못한다. 시상에 몰두한 채 밖으로 나가던 그는 거실 쇼파에서 신음하고 있던 미영의 상태를 눈치채지도 못한다. 급성 복통으로 고통받던 미영은 가까스로 친정엄마에게 전화하여 응급실로 가게 된다.


뒤늦게 병원으로 달려온 영민은 “왜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그 말에 미영이 아연실색하며 “이럴 거면 왜 같이 사느냐”고 되묻는다. 그런 말은 나 역시 아내에게 자주 듣던 말이었다. “시(詩)랑 결혼하지 왜 나랑 결혼했느냐”는 말. 미영의 다음 말은 내 가슴을 서늘하게 파고들었다.


“사람이 집에 혼자 있고 그런 게 외로운 게 아니야. 같이 있는데 진짜 외로운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데…”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그랬다. 정작 상대가 힘들까 봐 아프지도 못하고 향기로울 수도 없었던 사람은 아내였다. 저녁을 먹자마자 작은방에서 꾸벅꾸벅 졸며 시와 씨름하던 몇 시간은 내게 달콤한 행복이었다. 신혼의 아내는 안방에서 예능과 연속극으로 외로움을 달래며 ‘남편의 시간’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해 겨울 아내가 보여주었던 또 다른 희생의 모습은 내 마음에 얼어붙어 있던 감정들을 눈 녹듯 녹여주었다. 그 겨울에 아내와 나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의견으로 첨예하게 다투고 있었다. 겨울방학을 맞아 어머니 댁에 간 날 밤에도 우리 부부는 치열한 다툼을 이어갔다.


아내가 임신하면서 불거진 문제였다. 아이가 다음 해 6월 경에 태어나면 어머니와 합가를 하자는 게 내 의견이었다. 왕복 세 시간이 넘는 통근길이 두려웠던 아내는 당연히 계속 부평에서 살고 싶어 했다. 하루 종일 임신한 몸으로 학생들에게 시달리다 먼 길을 오고 갈 일이 아내로선 암담했을 터였다.


밤이 깊도록 우리는 언성을 낮추려 애쓰며 치열하게 논쟁을 했다. 이번엔 내 뜻을 굽힐 수 없다고 판단한 아내가 항복을 했다. 새벽 두 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내가 말했다.


“배고프다.”


“어떡하지? 다들 자고 있을 텐데.”


걱정하는 내 얼굴을 보며 아내가 눈물 맺힌 눈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밖으로 나가면 되지. 편의점이 있잖아.”


한밤중의 외출에 의기투합한 우리는 외투를 걸쳐 있고 추운 밤거리로 나섰다. 편의점에서 아내와 나는 컵라면을 후후 불며 먹었다. 그 가게에서 먹는 면발과 진한 국물은 얼마나 뜨겁고 맛있었던가. 내게 항복한 아내의 얼굴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나의 고집에 져준 아내의 얼굴은, 승자의 기쁨보다 패자의 숭고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컵라면을 먹고 나온 우리는 내 점퍼 주머니에 함께 맞잡은 손을 넣고 갈지자로 걸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먼 밤하늘에 검푸른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달이 밝았다. 시린 밤거리를 아내와 헤쳐 왔던 그 길에 내 마음은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했다. 그때는 아내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내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안다. 아내의 마음은 무거운 미래로 어둡고 음울했을 터였다. 안양에서 부평 학교까지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출퇴근할 일이 얼마나 암담했을까. 그런 상태에서도 아내는 ‘당신이 힘드실까봐 나는 아플 수도 없습니다’라는 시구처럼 희생을 감내한 것이었다. 화장실의 백열등이 아내의 날카로운 현실이었다면, 그날 밤거리의 달빛은 나의 이기적인 낭만이었다.


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아내는 지금도 내게 난간에 매달려 있는 마지막 물방울처럼 아슬아슬하게 눈부신 존재이다. 당신이 아플까 봐 향기로울 수도 없었던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내였다. 이제는 내가 아내의 찬비를 막아주는 지붕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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