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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OBOM Jun 23. 2024

도서관 붙박이의 위클리 로그

6월 14일 / 찾았다 내 사랑, 내가 찾던 사랑


그것은 바로 아샷추! 아이스티에 커피 샷 추가 하나요! 


아샷추에 완전히 사랑에 빠졌다. 집에 커피 가루는 있으니 진지하게 인터넷에서 아이스티를 검색해보게 된다. 시원하고, 달고, 눈이 잘 떠지는데 끝맛이 텁텁하지 않고 개운하다. 카페인이 샷이 하나라 진하지 않아 저녁에 잘 때 잠을 깨우지 않을 정도의 각성 효과를 내고, 당분은 공부하기에 적당히 윤활유가 되줄 만큼이라 빨대로 쪽쪽 마실 때마다 아주 환상의 콜라보로 몸을 활성화시킨다. 내 입맛에 많이 달긴 한데 중간 중간에 물을 추가해서 마시면 지속적으로 연하게 당분을 충전하면서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오늘 오후의 졸음도 아샷추로 올 킬했다. 아샷추는 내 식곤증 퇴치약이다. 아샷추 만세! 



6월 15일 / 용사여, 일어나라!

내 앞에 어느 고등학생이 앉더니 정자로 예쁘게 체크 리스트를 작성했다. 그러고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자기 시작하더니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학생은 결국 거의 2~3시간을 꼬박 자고 5시에 앉아 8시쯤 일어나 문제집을 깨작깨작 풀더니 친구와 자리를 나란히 앉아 조금 더 보다가 나보다 일찍 짐을 쌌다. 


아니, 학생, 이럴 거면 오늘은 이만 영업 끝내고 집에 가서 편하게 자라고!



6월 16일 / 바람 타고 잠깐 귓가에 스쳐지나간 A whole new world에서 잊고 있던 징그러움이 떠올라버린 건에 대하여

잠깐 나와 산책을 하는데,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두 사람이 알라딘의 A whole new world를 리코더로 불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 덥지도 춥지도 않은 초여름 바람결에 실려온 디즈니의 사랑노래라니.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연주를 양껏 즐겼다. 어쩌면 다음 주에 음악 실기 시험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끊기고 늘어지는 구간마저도 사랑스러워 자꾸 웃음이 났다. 

아... 피아노 실기 때 손가락이 안 돌아가서 수행평가를 망... 그만하자. 어린 시절을 살짝 엿 보는 게 꼭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지는 않는다. 



6월 19일 / 바 선생으로 시작했으나 한 과목 거의 다 보고 자는 끝

세상에 마상에 아침에 눈을 떴는데 바닥에 무언가 움직…

“꺄아아!!”

노래방에서 마지막 곡으로 소찬휘 티얼스 부를 때도 안 나오는 고음이 바 선생 앞에선 제깍제깍 튀어나왔다. 이렇게만 부르면 100점일 텐데. 우선 손에 잡히는 거 아무거나 쥐고 던져서 일단 죽였다. 비싼 핸드폰도 바 선생에 이성이 끊기고 나면 파리채가 되는 매직. 다행히 폰은 멀쩡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잠이 다 깨는 정도가 아니라 혼이 나갔다. 


덕분에 공부 시작한 이래로 목표 시간에 제일 가깝게 도서관에 도착했다. 스케줄이 좀 밀리고 있긴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름 요령이 생겨서 시간 대비 진도를 측정해 하루 볼 분량을 대략 파악해서 하고 있다. 

‘오늘은 드디어 이 책 다 본다!‘ 하고 공부했지만.. 조금 남기고 집에 왔다. 그래도 평소보다 일찍가서 늦게 와서 그런지 많이 보긴 봤고 남은 과목도 오늘 정도 시간을 쓰면 다 보긴 볼 거 같다. (머리에 남아 있어야 할 텐데ㅜㅜ) 



6월 22일 / 비가 세 번 내렸다. 하늘에서, 문제집에서, 그리고 눈에서. 

지금까지는 개념 읽고, 문제 풀고, 답지 보고 그 다음 문제 풀고, 다음 파트 개념 읽고, 풀고,.. 이렇게 했다면, 개념 쭈욱 읽고, 문제 와다다다다 풀고, 채점 호롤롤롤롤 해봤는데, 흑연 비가 주륵주륵 내렸다. 

(흑연 비가 내린 이유는 요즘 샤프로 책에 표시를 하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내용이라 매 순간이 낯설고, 이해가 안 가고, 이걸 또 머리에 다 언제 넣나 싶고, 시작한 게 맞는 건지, 또 실패로 그칠 선택을 한 건 아닌지, 원래 있던 자리가 내 자리인 건지, 내 자리라는 게 애당초 존재는 하는지... 


늦은 저녁에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막막함이 걱정을 또 엮어댔다. 엮이고 엮이다 팽팽하게 먹먹해졌을 때쯤 집에 돌아와 폼롤러 위에서 뜬금없이 눈물이 도로록 흘러내려왔다.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 상담소를 매주 보지만, 박사님이 자주 해주시는 말씀 중, 아무것도 아닌 나로서 존재할 때도 괜찮다는 그 말이 아직도 내겐 허울좋은 소리 같다. 


쓸모를 찾는 여정이 고달프다. 


삶에서 더 중요한 걸 놓치고, 허황된 것을 쫓는 건 아닐까, 돈을, 다시 얼른 벌어야 하는 건 아닐까.


친구에게 선물받은 티를 홀짝거려 본다. 어제 마시고, 오늘 한 번 더 우려 마셨는데도아직 음미할 향이 넉넉하게 남아 있다. 그 애만큼 잔잔하고 성숙한 위로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온다.


응당 쏟아야 할 시간의 양이라는 게 있는 거겠지.  


한 모금만 더 마시고 이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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