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내려고 하는 것, 그것이 사랑
나에게 사랑의 정의는 무엇이었을까?
한창 연애를 하던 20대에 나는 수동적인 사랑을 했다. 누군가를 좋아해도 내 좋아하는 마음을 들킬까, 혹시나 거절당할까 고민에 결국 마음을 고백하지 못했고. 어떤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나도 그 사람이 좋아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20대에 내가 사랑에 내린 결론은 아프고 부질없는 것, 나를 한없이 붕 띄우기도 하지만 또 바닥에 처박히는 고통과 외로움으로 끝나는 것,
바보 같고 수동적으로 나는 혼자 고민하고 앓고 애끓다가 사랑하는 마음을 정리하며 이렇게 무모한 결론을 내려버렸다.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은 다른 의미의 기적이다.
남편도 나를 먼저 좋아해 다가왔고 용감하게 첫눈에 고백하여 만나게 된 인연이었다. 만날수록 좋았고, 사실 지금 싸움의 매개체가 되는 성격의 칼날들이 그때도 보였지만 너무나 잔잔한 행복이 이어지고 있기에 애써 모른척했던 것 같다.
결혼을 하자고 했을 때 나는 망설였다. 이 사람과 끝내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결혼 확신이 없는데. 그렇지만 섣부른 나의 거절로 끝나버리는 것이 싫었다.
이 사람의 단점이 ‘이건 내가 죽어도 안 돼!’라고 생각될 만큼 치명적이지 않다는 것 (그것으로 지금은 미친 듯이 싸우고 있지만..) 나에게 사랑한다는 믿음을 끊임없이 표현하는 남자.
그게 그와의 결혼의 이유였다.
아직도 결혼식날 떠오르는 광경이 있다.
내가 결혼한 결혼식장에서는 버틀러들이 식 5분 전 신부대기실을 정리하고 문을 닫아준다. 경건하고 조용한 마음으로 신부입장을 대기하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결혼식장에 오기까지 새벽부터 정신없이 바빠 피곤한데, 많은 친구들과 친척, 가족들..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 지인, 회사동료들에게 휩싸여 사진을 찍고 인사를 하고 짧은 담소를 나누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신부대기실 큰 거울에 비친 나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은 너무나 이질적이라 느껴져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미쳤지. 여기가 어디라고 이렇게 앉아 있어? 같이 살 확신도 없으면서.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지도 못하면서! 정말 잘하는 거 맞아?‘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며,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 도망가고만 싶었다. 다시 한번 깊게 이 결정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마음의 번민을 숨기고 환하게 웃으며 남편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우리. 12년 차가 되어간다.
남편의 끊임없는 지지와 사랑에 나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객관적으로 나를 보게 되어 장점은 밝히 드러내고, 단점을 고치려 노력하는 어른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우리 부부 미친 듯이 싸우고, 이혼하자는 이야기를 밥먹듯이 해온 내가 이제 와서 이런 말을 쓰고 있자니 등줄기에 민망함이 내리우지만.
흔들리면서 깊이 내리는 뿌리.
나는 우리가 뿌리가 되어 우리 가족의 커다란 나무로 자라가기를 바라본다.
남편이 변함없이 나를 지키고 가정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그의 사랑이리라 생각한다. 그의 말과 태도에 상처를 받을 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가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에 집중해 보면 그는 변함없는 사람이다.
나 또한 다른 생각과 감정이 들 때, 그것으로부터 떠나려 애쓰고 남편을 찾아 다시 이야기하고 사랑을 나누고 그렇게 우리의 관계를 지키는 선택을 하며 나는 사랑하고 있다 생각해 본다.
떨리고 설레고 간지럽고 기대되는 감정을 다시 느껴보기 힘들지라도, 우리가 약속을 지켜가고 화해하고 더 나은 인간이 되려 같이 노력하는 것이 어쩌면 더 사랑한다는 행동에 가깝지 않을까?
사랑은 쉽게 우리 안에 드는 감정이 아니었다.
어렵고 힘들지만 지켜내는 이 행동이야말로 사랑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열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