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도파민
삶을 살아내는 것은 어렵다.
치열하게 땀을 흘리고, 고통 속에 침묵하고, 성취감에 환희를 느끼는 등.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고통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따라올 승리의 기쁨을 더 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
가장 대표적이고 일반 사람들이 기독교에서 익숙하게 찾는 '믿음'이라는 개념으로 한번 살펴보고 싶다.
무언가를 믿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식만이 믿음의 유일한 필요조건은 아니다.
기독교인에게 믿음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다. '선물'이다.
기독교 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 두 가지가 성경 읽기와 기도이다.
이 두 가지는 시간과 신경을 써서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믿음을 보장할 수는 없다.
믿음은 선물이라고 한다.
참 어이없는 말이다.
노력해라.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건 아니다.
그럼 선물이 오기를 기다려라는 말인가?
아니, 믿음으로 기대하면서 노력해라.
노력이랑 믿음은 상관 없다면서.
누군가는 10년을 노력해도 믿음이 주어지지 않는다.
믿음을 받지 못한 이에게 스스로나 주변에서의 평가는
'너가 제대로 하지 않았겠지'
'뜻이 있으시겠지'
'너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거야'
등등의 차가운 문장들이 따라온다.
그리고 대개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은 노력한 것에 비해 자신이 선물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나 또한 그렇다.
나도 오랜 시간 동안 노력했고, 그러나 수년 이후에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독교는 참 어려운 종교이다.
가장 모호한 개념들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만 모호하고 어려운 종교의 생활을 하다 보면,
기독교인으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려고 노력을 하다 보면,
어떻게 보면 믿음이 아닌 다른 부산물이지만 이 또한 나에게는 매력이다.
...
예를 들어, 내가 기독교에서 씨름하면서 사실이라고 느끼게 된 명제가 있다.
'책을 읽는 것은 지식의 습득 이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에도 의미가 있다.'
나는 아직 이 재미를 누릴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소설을 읽을 때에도, 그 내용이 재미있어서 읽는 것이다.
이를 100% 정보 습득의 과정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풍부한 묘사를 통해서 상상할 수 있는 재미가 다른 매체에 비해 풍부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제공되는 정보를 통해 누리는 것에는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주는 기쁨이 있는 것일까?
자신이 실제로 있는 공간과 별개로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의 물꼬를 트고 다닐 수 있는 것이 그 장점일까?
나 또한 요즘 유행하는 '도파민'에 절여진 사람으로서,
종종 이 쾌락에 절여진 뇌를 소생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
밤 8시가 지나면 휴대폰을 흑백으로 바꾸는 설정.
휴대폰에서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영상 앱 삭제.
무의미하게 노래를 장시간 듣는 습관 줄이기.
릴스, 쇼츠 등 시각적, 청각적 자극으로부터 오는 쾌감을 위험하다고 판단하기.
탄산음료나 설탕 등의 자극적인 맛의 음식 피하기.
물론 이 모든 것을 단번에 끊을 정도로 내 의지가 강하지 않다.
이런 나태함 또한 도파민 선생의 역할일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는 안다.
자극적인 감각을 통해 도파민을 흥분 시키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 수록, 느리고 돌아가는 길보다는, 직선 경로로 향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기승전결의 이야기가 없이 곧바로 도파민을 건드린다.
그러나 아무런 사전 작업 없이 도파민을 건드리는 것에 대한 side effect가 요즈음 발견되고 있다.
세상이 바뀌는 페이스는 너무나도 빠르고,
그 가운데에서 빠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주는 편리함과 여러 이득이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이미 시장 원리에 의해 수많은 도파민 촉진제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인간의 행동 양식이라던가 행복을 느끼는 뇌, 마음 이런 것에 대한 해체적인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더 직접적인 자극이 가해지는데, 나는 이것이 정말 위험한 행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것이 위험하고,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나의 믿음이겠지.
나는 내가 믿는 기독교에서 고통과 기쁨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이 부분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설명을 담당하는 부분이 일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통이랑 쾌락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종교 쪽에서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없다.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이 쪽에 생각이 많은 사람일 뿐이다.
완전 이공계 쪽인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깊게 종교와 인간에 대해서 사유하게 되었는지는 참 원망스럽다.
한편으로는, 논문 이런 것을 떠나 글쓰기 실력이 형편없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오늘의 글 주제와는 무관하게, 이 글쓰기 활동을 통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글로 뚜렷하고 명쾌하게 풀어 쓸 수 있을 때까지는 글쓰기 활동을 꾸준히 해야겠다.
잘 하고 있어, 동.
(글을 읽다 느낀 점이 있다면 댓글로 자유롭게 참여해 주세요.
어떤 의견이든 글을 쓰는 데 있어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