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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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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수 Sep 10. 2024

운동장에는 울리지 않는 종소리

누가 우리의 종소리를 가로막는가

학교에 울리는 모든 소리와 영상은 방송부가 담당한다. 컨트롤 타워는 스튜디오라고 불린다. 스튜디오 안 기계는 수많은 버튼이 있고 아는 사람만 아는 작동법으로 움직인다.


출근 첫날 스튜디오에서 제어 pc1을 점검했다. 모니터에는 주로 사용하는 운영모드가 상시 열려 있고 실내 방송 장소를 바꿔가며 마이크, 차임, 음원, 영상을 송출 시작과 종료를  조절할 수 있다.


스케쥴링 탭을 보니 시종이 가득 들어가 있다.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시종이 빼곡히 들어가 있는 것을 보니 시계처럼 돌아가는 학교의 일상이 여기서 조절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운동장으로 나가는 시종이 하나도 없다.


“운동장도 수업장소인데 왜 시종이 없는 거지? “


모든 시종에 운동장이 빠진 이유를 수소문해 알아내니 그것은 바로 “민원!”


방송부가 꽤 많은 민원에 시달린다는 것을 긴 학교생활동안 아예 몰랐다. 학교 방송을 대상으로하는 민원인은 일면식 없는 미지의 그분이셨다. 우리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으니 전화 민원에서 끝나는 일이 많다지만 그렇다고 쉽게 넘어가는 민원이 아니다.


첫 번째 전화가 왔을 때,

소리를 줄였고,

두 번째 전화가 왔을 때,

세 번째 전화가 왔을 때,

10칸의 볼륨 레벨을 더 이상 줄일 칸이 없을 때도 전화를 해 줄이지 않았다 우기시니 결국 무음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운동장에 시종이 없어진 이유였다.


그래서 체육시간에 아이들은 종소리를 듣지 못하고 시작하고 끝난다. 학창 시절 시작 종은 야속하고 종료종은 그렇게 해방감이 들어 좋았는데, 운동장에는 그 감성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학교종이 “땡땡땡 ”울려야 아이들이 모일텐데 그럼 누가 아이들을

모이게 하는 거지?

“선생님의 육성?”


체육선생님께 여쭤봤다.

“시종 안 울려서 불편하지 않으세요?”

“불편하지~ 근데 민원 들어왔다매?”

어쩐지 체념한듯한 쿨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지난 학기 폭염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운동장 수업을 안 해서 괜찮았는데 이제 다시 한창 운동장 수업할 시즌이니 불편하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렇다면!

‘내가 방송부 담당교사로서 총대를 메고 볼륨 10칸 중에 한 칸씩 올려 봐? 2주에 한 칸씩 올리다 보면 겨울이 되고 문을 꼭 닫는 계절엔 민원은 안 들어오겠지? ’라는 생각을 해봤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듣지 못했던 종소리를 들으면 정겨웠다. 그 소리가 좋아서 귀 기울여 들으며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었다. 그건 학교에 좋은 기억이 있는 사람들만 가능한 일이란 걸, 학교가 싫었던 어떤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듣기 싫은 소리가 종소리일 수 있다는 걸 새삼 이해했다.


학교를 오래 다니고 있어 학교의 일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날이 점점 더 많아졌었는데 종소리가 싫다던 민원인은 오랜만에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운동장의 종소리를 살려내고 민원인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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