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않기, 차별 앞에서 마주한 나

by 몽돌이

사회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많이 줄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오래된 편견이 남아 있다. 글을 쓰면서 나 자신도 그 마음을 마주하게 되었고, ‘혹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하는 마음이 일었다.

내 친구는 척추 장애인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나에게 반말을 썼다. 자기는 나이를 별로 따지지 않는다면서. 나는 말 트는 걸 유난히 싫어해서,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 한켠에는, 장애인이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 상한 면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말을 놓는 것이 점점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반말이든 존댓말이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그 적응이 관계의 친밀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불편함을 스스로 무디게 만든 결과였는지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

입던 옷을 버릴 때나 쌀이 오래 되서 새 쌀을 먹게 될 때 남은 쌀을 이 친구가 해결해 주곤 했다. 버리는 옷과 종이를 가져가서 고물상에 내다 팔면서 자기 말로는 취미생활을 한다고 했다.

장애인이면 위축돼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데 이 친구는 좀 달랐다. 그는 언니들과 함께 밥을 먹고,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장애가 있다는 사실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고 활발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남편 때문일까? 믿을 데가 있어서? 남편은 정상인이다. 얼굴도 잘생긴 편이다. 어떻게 같이 살게 됐는지 궁금했다. 그게 왜 궁금했을까? 이유는 장애인이 정상인과 결혼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상인’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불편하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그런 구분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이들은 부부금슬이 아주 좋았다. 자식도 안 낳고 오로지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었다. 부럽기도 했다. 내가 그녀에게 뭐를 좀 부탁하고 후하게 인사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말을 들은 그녀의 남편이 아내에게 잘해주니까 너무 고맙다고 골치를 썩이고 있던 선반을 달아줘서 시름을 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걔와 함께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볼 때 조금 당황한 적이 있었다. “쟤는 왜 장애인이랑 다니지?”라고 생각할까봐 불안했다. 그 불안은, 어쩌면 나 자신이 이미 사회의 시선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나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어떤 남자들이 자기를 유혹하는 듯한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정답을 알았지만, 그 정답을 말하는 게 과연 친절한 일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장애인을 약자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장애 때문이 아니라 장애인이 언제나 ‘취약한 위치’에 놓이도록 사회가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친구도 그 점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몸이 불편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대하는 걸까?”

진보적인 사람일수록 이 지점에서 더 흔들린다. 왜냐면 자신은 차별하지 않으려는 사람이고 스스로를 ‘깨어 있다’고 인식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속에서는 “내가 이런 차별적인 생각을 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동요가 일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차별을 외면하지 않고, 내 안에서 정확히 목격했다. 문제는 차별적 생각이 스친 것이 아니라 그걸 미화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후자는 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두려움이나 회피가 아닌,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그것은 곧 “나는 이 문제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라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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