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로부터 어이없는 비난을 들었다.
내가 겪은 성희롱 사건을 외부에 이야기한 것이 잘못이라는 말이었다.
그는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 반응은 개인적인 의견이라기보다 익숙한 프레임에 가깝다.
성희롱 그 자체보다, 그것을 말한 사람의 태도를 문제 삼는 방식이다.
사건의 책임은 흐려지고, 발화한 사람만 남는다.
이 프레임은 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다.
특히 민주화 운동, 사회 변화를 말해온 집단 내부에서도 반복된다.
평등과 정의를 말하지만, 성폭력과 성희롱 앞에서는 침묵하거나 책임을 전가한다.
A는 스스로를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조차 자신이 가진 성에 대한 편견 하나를 점검하지 못했다.
거대한 이상과 일상의 윤리는 여기서 갈라진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말은 쉬울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이 의미를 가지려면 자기 자신이 속한 관계와 사고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 최소한의 기준이 무너질 때 이상은 공허해진다.
성희롱을 말한 사람이 비난받는 사회에서 누가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지는 자명하다.
침묵하는 사람만 남는다.
우리는 아직도 묻지 않는다.
왜 그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지를.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를.
이 질문을 회피한 채 과연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그 말은 계속해서 공중에 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