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편한 사회
2026년 2월 6일 금요일 저녁, 노무현재단에서 열린 『우리 곁에 막달레나』 북콘서트에 참석했다. 이 책은 성매매를 경험한 세 언니들의 삶과 그 이후의 시간을 담고 있다. 이후의 이야기는 탈 성매매 지원 생활공동체 '막달레나 공동체'와 이옥정 소장과 어우러져 있다. 도서출판 은빛기획이 책을 엮고 노항래 대표가 이번 북콘서트를 준비하고 사회를 맡았다.
『우리 곁에 막달레나』는 성매매 경험을 고백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책은 그 이후의 시간도 함께 따라간다. 현장을 벗어난 뒤에도 이어지는 가난과 불안정한 노동, 가족과의 관계 단절, 과거를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는 삶의 조건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탈 성매매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사실을, 세 언니들은 자신의 언어로 차분하게 펼쳐놓는다.
행사는 축하 인사와 세 언니 작가들과의 대화, 패널들과의 토론 등으로 이어졌다. 책을 접하며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린 질문이 내게도 떠올랐다. 처음에 어쩌다가 성매매를 하게 되었나요?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대학 졸업을 앞두고 갈 곳을 잃었을 때 담벼락에 붙은 '숙식 제공'이라는 말에 속아서 성매매를 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팔려갔다고. 인신매매를 당한 거라고. 그때 자기를 팔아넘긴 그 사람이 이 글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그 언니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보고, 그 인신매매범이 자기가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언니 작가도 있었다. 그 말은 비난처럼 들리지 않았다. 복수하겠다는 말도 아니었다. 다만 아주 오래 눌러두었던 이야기를 꼭 전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처음에 어쩌다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이 안에 담긴 인습과 편견부터 짚고 넘어가자. 이 말은 무심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이미 판단이 들어 있다. 그 질문은 언제나 개인의 선택과 실수를 공격하고, 그 이후의 폭력과 착취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다. 왜 빠져나오기 어려웠는지, 왜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는지, 왜 국가와 사회는 제 역할을 하지 않았는지는 묻지 않는다. 그 대신 그 질문을 받는 사람에게는 평생 반복되어 온 자기변명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다.
축하 인사를 해주신 한 신부님은 사회적인 고해성사라는 말을 사용했다. 요즘은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잘 안 하려 한다고 한다. 지은 죄가 너무 많으니까 못 하는 것이라며 개탄해하면서 그 신부님도 고해성사를 할 때는 남 모르는 곳에 가서 한다고 고백하였다. 평생을 수행해 온 신부님도 못 하는 일을 이 세 언니는 해낸 것이었다.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에게 나 이렇게 살았소, 나 부끄럽지 않소 하고 사회적 고해성사를 했던 것이다.
신부님의 말은 이 북콘서트가 왜 불편하면서도 필요한 자리였는지를 정확히 짚어냈다. 이 자리에 있기 전까지, 나 역시 침묵 쪽에 서 있었던 사람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용기 있는 고백'으로 칭송되지만, 실은 사회가 짊어져야 할 질문을 대신하는 것이다.
세 언니들이 자신의 삶을 말하기로 한 이유는 용기나 결심이라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말하지 않으면 묻혀버리고, 말하면 낙인이 찍히는 사회에서 이들은 말하기를 선택했다. 이 책은 고백처럼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온 시간을 하나씩 적어 두며,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를 되묻는 질문에 가깝다.
행사 말미에 사회자는 세 언니들에게 앞으로의 꿈과 계획을 물었다. 한 언니는 인세로 들어온 돈 전액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삶에는 쓰지 않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또 다른 언니는 크루즈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말해 객석에 잠시 웃음이 번졌다. 거창한 결심과 소박한 바람이 나란히 놓인 순간이었다. 그 대답들 속에서 이들이 이미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언니들은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었다. 이 자리는 바로 그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객석은 거의 여성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여자들만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은 처음 보았다. 신부님과 목사님들만 빼면 모두가 여성이었다. 이제 여성들의 연대가 자리를 잡아가는구나 하고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 연대가 얼마나 취약한지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여성들 대부분은 이미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이 공간은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하지만 이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말은 다시 위험이 될 수 있다. 말한 이후에도 삶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개인의 용기만이 아니라 그것을 지탱해 주는 제도와 공동체가 함께 있어야 한다. 막달레나 공동체는 바로 그 조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여성과의 연대 가능성을 확인한 것은 행사 속에서만은 아니었다. 북콘서트가 끝나고 우연히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일본 여성과 함께 걷게 됐다.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녀는 한국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듣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대체 그 여성들은 어쩌다가 성매매를 하게 된 거냐고. 똑같은 질문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팔려갔다고. 인신매매였다고.
그제야 편견으로 구겨졌던 그녀의 얼굴이 펴졌다. 마음에 맞는 대답이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한 걸음 더 내게로 다가왔다. 외국어책이라 이 책 읽기가 힘들다고 했다. 장난기가 발동했다. 우리말로 된 책도 어려운데 외국어 책은 당연하지 않냐고. 가벼운 웃음과 함께 우리는 새로운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정성껏 마련해 준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언니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한 분씩 꼭 껴안아 드렸다, 마치 나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다는 듯이. 하지만 언니들을 안는 순간 깡마른 살과 더운 피를 느낄 수 있었다. 그제야 나만 모르고 있던 내 편견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언니들의 상처에도 보드라운 속살이 차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