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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주 Apr 18. 2023

유튜브 중독, 당신의 아이는 안녕하십니까

유튜브 보러 중국집 가자?

우리 아이가 유튜브 중독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닫게 된 계기가 있다. 서울 연희동에는 우리 가족이 자주 다니는 단골 중국집이 하나 있다. 나와 아내, 아이 3명이 함께 주말 일정을 소화한 후 거의 매주 일요일 저녁은 단골 중국집에서 해결했다. 중국집에 가면 시키는 메뉴도 거의 똑같았다. 탕수육 하나에, 간짜장 하나, 볶음밥 하나. 아이가 걷기를 시작한 만 3살 때부터 그 중국집을 다녔다. 처음엔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다가 조금씩 성장한 이후엔 따로 의자에 앉혀서 같이 밥을 먹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의자에 단 1분을 앉아 있지 못하고 아이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인지 능력이 생긴 이후에는 이것저것 요구 사항이 많아지고 나가자, 들어가자 등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르렀다.

  

별 수 없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딱 30분만 조용히 밥 좀 먹자’는 마음으로 나와 아내 모두 약간의 죄책감을 안고 유튜브를 틀어줬다. 이렇게 별 생각 없이 틀어준 유튜브가 후일 중독으로 이어질 것을 알았다면, 당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럼에도 당시 아내와 내가 처한 상황에서 굳이 변명을 한마디만 보태자면, 말 그대로 별 생각이 없었다. 어른도 아이도 TV와 유튜브를 가끔 보면서 지내기 마련이고, 고작해야 짜장면 먹으면서 보는 30분 정도 유튜브를 보는 게 나쁘면 뭐 그리 나쁘겠냐고 쉽게 생각했다.


문제는 이렇게 시작된 아이와 유튜브와의 첫 만남은 점점 더 깊어졌다는 점이다. 또래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온순한 편인 아이는 자기가 보고 있던 유튜브를 꺼야 할 때가 되면 예민해졌다. 이 정도는 당연히 어느 가정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이가 유튜브 중독에 해당한다는 것을 자가 진단하게 된 것은 어느 주말 아이의 한마디 제안 때문이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아이는 내게 “아빠, 짜장면이 먹고 싶어. 중국집 가자”라고 했다. 언뜻 보기에 별 것 아닌 아이의 이 한마디에 우리 부부가 의아함을 느꼈던 이유는 따로 있다. 어릴 때부터 입이 짧아 식탐이라곤 없는 아이가 외식을 하자고 먼저 제안한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미각이 아주 예민해서 돈까스에 후추만 조금 들어가도 바로 알아내서 혀로 밀어내며 거부했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런 애가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믿기지 않았고, 당연히 믿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직감적으로 촉이 왔다. 아...올 것이 왔구나. 짜장면을 먹으러 가족끼리 외식을 할 때마다 유튜브를 보여주니까, 결국 유튜브를 보고 싶다는 뜻이었다. 유튜브를 보기 위해서라면 본인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짜장면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 바로 그 대가를 치르겠다는 아이의 강력한 의지가 느껴졌다. 본말이 전도됐고,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딱 그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시 아이에게 물어봤다. “아 그래? 그럼 중국집 가서 짜장면 먹을 테니까 대신 유튜브는 안돼. 유튜브 안 보고 짜장면 먹는다고 약속하면 엄마, 아빠는 지금 당장 출발할게” 돌아온 대답은 예상한 그대로다. 짜장면을 먹고 싶지 않다며 중국집에 가자고 했던 말을 취소했다.


돌이켜보면, 만 3살 전후 연령대에서 접하는 유튜브의 중독성을 우리 부부는 간과했다. 처음엔 핑크퐁, 뽀로로 등 유아용 애니매이션으로 시작한 유튜브는 공룡 만화, 로블럭스 게임 중계 등으로 저변이 급격히 넓어졌다. 아이가 고르는 주제가 다양해지는 만큼 유튜브를 켜고 끄는 시간에 대한 통제도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통상 모든 부모들이 한번쯤은 겪는다는 바로 그 상황. 짜장면을 다 먹고 나서도 유튜브에 빠져든 아이에게 이제는 끄고 집에 가자고 설득을 해야 하는 그 결단의 시간 말이다. 겪어보면 다들 알지만, 현실에서 설득이라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설득은 엄마, 아빠의 강제력이 투입되기 직전 명분쌓기에 불과하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 가정은 비슷한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유튜브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아이 옆에서 엄마는 협박조로 몇 마디 말을 건네다가, 어느 순간 휴대폰을 뺏고 강제로 시청을 종료시킨다. 당연히 한참 재미있게 보고 있던 아이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소리를 지르고 울거나 발을 차며 강하게 반발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엄마의 기세에 눌려 억지로 식당 밖으로 끌려 나가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자기가 재미있게 보고 있던 유튜브를 계속 보여 달라며 누워서 바닥을 구르는 등 강하게 저항을 이어나가면서 흡사 부모와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중독’이란 말을 쓰기를 꺼려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중독(中毒)의 정의는 이렇게 돼 있다.


1. 생체가 음식물이나 약물의 독성에 의하여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일 2.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3.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


중독이란 단어 자체는 중립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부정적인 어감을 주는 게 사실이다. 중독이란 용어를 일상 생활에서 쓸 때도 알콜 중독, 게임 중독, 도박 중독 등 부정적인 대상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특히 자신의 아이에 관한 부분이 중독이란 단어와 연관된 경우엔 일단 부정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유튜브 중독’. ‘TV 중독’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거의 대부분 아이들에게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설마 우리 아이가?” “결코 우리 아이는 중독이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8살 아들이 유튜브 중독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의학적인 검사를 통해서 검증해본 적은 없다. 의료적이 측면에서 정밀 검사를 해보면 당연히 중독에 해당하는 객관적인 지표들이 있겠지만, 아이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모만큼 아이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유튜브를 보기 위해서라면 억지로 짜장면도 먹는 것도 불사하겠다던 우리 아이는 ‘유튜브 중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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