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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주 Apr 18. 2023

TV와 엄지손가락 그리고 죄책감


전원 버튼을 누르는 내 오른쪽 엄지 손가락에는 죄책감이 배어 있었다. 나른한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8살 아들이 일어나라고 연신 내 어깨를 흔들어 댔지만 주중에 이어진 회식 여파로 인해 나는 이불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일주일 내내 아빠와 놀기만을 기다린 아들의 보채는 소리가 커질수록 몸은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고민 끝에 또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머리맡에 놓인 TV 리모콘을 힘겹게 집어 들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곧장 아이의 시선이 TV로 빠져들고 집안에 평화가 찾아왔다. 내 엄지 손가락 깊이 새겨진 죄책감과 함께 온 평화였다.   

통상 유명한 작가들은 어떤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냐고 물으면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겸손하게 대답하는 걸 자주 봤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쓰게 된 데 특별한 계기가 있다. 우리는 8살 아들은 둔 40대 초반 맞벌이 부부다. 여느 중산층 가정처럼 주중엔 오전 8시 출근, 밤 8시 퇴근의 일상을 반복하며 살았다. 주말에는 육아 전선에서 싸우고 다시 월요일에 일터라는 전쟁터로 향했다. 문제는 거의 비슷하게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8살 아이는 어느새 유튜브, TV 중독에 빠져 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처음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 아이 만큼은 유튜브 중독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맞벌이 부부의 체력적 한계라는 핑계 속에서 아이는 주말 오전에 내내 집에서 TV를 봤고, 외식하러 간 식당에선 유튜브에 빠져들었다. 아니다. 아내와 내가 제공한 중독에 온전히 젖어들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것 같다.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고 있지만, 만 3살부터 아주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영상에 노출된 아이에게 책은 너무나 지루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아이에게는 잘못이 없다. 이 모든 중독은 부모인 아내와 나의 공동 책임이고, 토요일 오후 2시까지 이어지는 아내의 병원 일정을 고려하면 내 책임이 더 컸다. 변화가 필요했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더군다나 두 달이나 되는 겨울 방학 내내 아이가 베이비시터 없는 오전을 그저 TV와 함께 보낼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이게 바로 4년 10개월 간 정치부 기자 생활을 핑계로 사실상 아이를 방치했던 내가 육아 휴직을 선택한 이유였다.

휴직을 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바로 고비를 맞았다. 누군가 그랬던가. 노는 것도 배워야 한다고. 딱 들어맞았다. 시간과 돈만 있으면 다 될 줄 알았다. 8살짜리 아들과 노는 것쯤이야라고 생각하고 달려들었지만, 현실의 장벽은 높았다. 어느 한적한 일요일. 아내가 세미나 때문에 집을 비우고 아이와 내게 온전한 12시간 주어진 날, 나는 나의 민낯을 마주하게 됐다. 오전 8시부터 밤 8시까지 무려 12시간이라는 시간이, 그토록 내가 원하던 뭉텅이 시간이 확보됐을 때였다.

정작 한 뭉텅이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그 ‘시간’을 활용할 줄 모르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아빠들 대부분은 아이와 노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부부들은 주말 대부분 시간을 키즈 카페에서 보낸다. 작게는 2만원, 많게는 5만원 이상 드는 키즈 카페에 아이를 풀어놓고 그 인근에서 아빠는 휴대폰을 보고 있다. 그게 아니면 대형 쇼핑몰을 돌아다니거나 공원이나 유원지를 떠돈다.

사람들 생각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다. 나도 그랬다.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고, 주중엔 언제나 시간을 외치면서도 정작 많은 시간이 주어졌을 땐 어찌할 바를 몰라 그냥 길바닥에 시간을 버리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었다. 내가 딱 그랬다. 그러나 이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공부도 기술도 운동도 배워야 한다.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일이든 놀이든 간에 온전히 활용한다는 게 쉽지 않다.  

대부분 어른들은 아이와 노는 법을 단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다. 나는 90일 간 육아 휴직 동안 다양한 시도를 했다. 어떤 부분에선 내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거둔 부분도 있고, 머릿속 생각과 달리 저조한 부분도 있었다. 하늘의 별도 딸 수 있다는 식으로 대단한 뭔가가 있는 듯 과장하고 싶지 않다. 이 은 그런 성과를 보장하진 않는다. 다만 여기서 시도해 성공한 방식과 경험에 대해선, 결과치가 작은 성과에 불과할지 몰라도 그 효과를 보장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 글은 순전히 내 체험담이다. 특별히 다른 사례와 비교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례는 넣지 않았다. ‘결론을 먼저 위로 올려야 하는’ 기자의 직업병을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서두에서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그러니까 ‘아빠와 보낸 석 달 동안 8살 당신의 아이는 유튜브 중독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감히 “예”라고 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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