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가는 어른들, 라일락 아이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동화같은 영화입니다. 그 동화가 잔혹동화인 것을 알고 보는 관객의 시점에서는 영화 내의 차가운 현실이 더 무겁게 다가오는 효과를 주기도 하죠. 독립 영화계에서 유명한 션 베이커 감독이 만들고 A24가 배급한 이 영화는 가슴 먹먹한 감동과 뱃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역겨움이라는 감정이 동시에 들게 만드는 독특한 영화였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접한 2024년 1월에만 해도 이 영화감독이 <아노라>로 아카데미를 석권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는 못했었습니다. 물론 <아노라>또 대단한 작품이지만 사실 <플로리다 프로젝트>도 <아노라>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작품입니다. 영화의 장면들 대부분이 디즈니랜드의 뒤로 펼쳐지는 보랏빛 노을과 어울리는 보랏빛 건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화면이 더욱 아름답다는 특징도 있어서요. 또 해당 영화를 리뷰한 제 블로그글이 조회수가 1000회가 넘어갈 정도로 알고리즘을 잘 타기도 하여 애착이 있는 작품입니다. 인물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주인공 무니는 미혼모이며 경제적 능력이 전무한 헬리의 밑에서 모텔을 전전하며 살고 있습니다. 모텔에서 사귄 친구들과 차에 침 뱉기 놀이를 하다 걸려 차를 청소하게 되면서 차 주인의 딸인 새 친구 젠시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죠. 영화의 주제 의식과 분위기 대부분이 첫 장면에서 드러나는데요. 관객은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순수하면서도 걸걸하고 수위가 센 욕설과 반성이 없는 태도, 그리고 이를 부추기는 헬리를 보며 답답함을 느끼다가도 꾸밈이 없는 태도로 친구를 사귀고 이유 없이 우정을 만드는 아이들의 모습에 배울 점을 느끼기도 하는 괴상한 감정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당연한 훈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임에도 헬리의 행동에 반감보다는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무니와 아이들의 모험이 여러 차례 나열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아름다운 연출과 노을이 번지는 배경, 아이들의 즐거운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아이들은 방화, 절도 등의 범죄를 끊임없이 저지릅니다. 마약과 성매매, 성범죄 등의 잔인한 폭력에 여과없이 노출되는 아이들과 이를 또다른 모험으로 생각하고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죠. 그러니까 무니는 문학으로 치자면 소위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헬리는 성인이지만 정신 연령은 아이에 머물러 있는 인물입니다. 헬리가 부모로서 자격미달이라는 사실은 명확히 드러납니다. 무니가 보는 앞에서 성매매를 하는 장면은 영화이지만 저도 순간 역겨움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에 더해 성매매 상대의 가방에서 물건을 훔칩니다. <아노라>를 보며 저는 이 장면이 순간 떠오르더라구요. 마트에서 물건을 사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더 비싸게 파는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합니다. 헬리의 성매매 장면은 헬리와 무니의 실질적인 보호자 역할을 하는 모텔 관리인 바비가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아동 성애자를 막는 장면과 대조되기도 합니다. 헬리의 성매매를 막으려는 바비의 훈계에 헬리는 고함을 지르며 반항하고 바비는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좀 배워야 한다고 받아치는데요. 영화의 첫 장면에서 차 주인은 무니에게 같은 대사를 똑같이 합니다. 이는 헬리의 정신연령을 명확히 드러내는 대사이죠.
그럼에도 헬리는 무니를 사랑합니다. 아동보호국에 데려가려 하자 무니가 강하게 반항하는 모습이나 헬리가 항상 무니의 손을 잡아주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절도도 무니를 위한 디즈니랜드 입장 팔찌를 가지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습니다. 결말부 위탁 가정에게 맡겨지는 무니가 반항하는 모습과 헬리가 반항하는 모습, 바비가 아래층에서 착잡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는 모습이 교차편집되는데요. 차분하게 슬픔을 표출하는 바비와 달리 헬리는 무니와 다를 바가 없는 악동과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자신이 부모 실격이 아니라고 목청껏 항변하는 헬리의 목젖이 클로즈업되며 헬리의 등장은 끝이 납니다.
영화는 무니가 위탁 가정에 맡겨지며 점을 찍습니다. 다만 결말부 무니는 아동 보호국 직원들에게서 탈출해 친구 젠시와 손을 잡고 디즈니랜드로 도망을 갑니다. 이 시점부터 화면이 흐릿이 변하는데요. 결말부 장면은 환상일뿐이라는 하나의 단서이죠.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둘은 돈이 없어 디즈니랜드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디즈니랜드의 외곽 빈민가의 모텔 퓨쳐랜드에 살며 평생 디즈니랜드를 꿈꿔왔을 두 아이가 마침내 가짜 디즈니랜드를 벗어나 진짜 디즈니랜드로 가는 모습을 그려주는 상징적인 위로에 불과합니다.
다소 열린 결말이지만 현실적으로 무니는 미래에 오히려 엄마 헬리의 전철을 똑같이 밟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헬리처럼 실패한 사랑의 도피를 할지도 모르겠군요. 어린 스코티와 무니가 누워있는 건물 담벼락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사과를 건네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요. 고대 그리스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사과를 건네는 것은 청혼에 해당됩니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이후 스코티가 무니에게 결혼하자는 대사를 하고 무니가 지금은 아니라는 대사로 받는 것을 보면 의도적일 것 같네요.
영화를 보고나면 모텔관리인 바비가 오히려 두 주연보다 기억에 남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바비를 연기한 윌렘 대포는 평소 <스파이더맨>의 그린 고블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조플링, <더 라이트하우스>의 등대지기 토마스처럼 사이코패스 역할을 연기해내는 모습이 강렬했었는데요. 소시민적이면서도 정의롭고 인정 많은 아저씨 역할도 어울리더군요. 특히 아동성애자가 접근해오자 분노를 참는 듯한 어조로 대화해나가다 결국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이나 헬리와 말싸움을 벌이다 못 참고 분노를 터트리는 장면. 일을 아이들이 방해하는데도 아이들의 역할 놀이에 스스로를 맞추어주는 장면이 다 인상깊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밤에 홀로 담배를 피는 바비의 담뱃불이 모텔의 수많은 불빛과 겹쳐지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빈민촌의 아이들이 지내는 퓨쳐랜드를 지탱해주는 사람인 그의 위치를 가장 깔끔하고 아름답게 그려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화면과 대조되는 잔인하고 역겨운 각본, 그 속에 숨어있는 아이들의 순수한 행동과 그들을 지키려 애쓰는 선량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버무려져 독특한 감정을 칠해주는 영화.
션 베이커의 <플로리다 프로젝트>였습니다.
평점 4/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