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야간상영 18화

웨스 앤더슨,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사라진 낭만을 지키는 호텔보이를 따라가는 투숙객들

by 도연호

세계에서 가장 독특하고 아름다운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웨스 앤더슨 감독의 대표작입니다. 영화를 소개하기 전에 그의 작법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동화적인 색체를 영화에 가미하는 감독이에요. 영화의 색상은 유치한 원색으로 배색되고 화면은 화려한 카메라 무빙 대신 수평 또는 수직으로 고정된 채 등장인물들이 화면 안에서 밖으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프로시니엄 아치숏처럼 클래식하고 초기영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연출법을 구사하지만 강박적으로 뽑아낸 미장센과 아름다운 색감을 바탕으로 한 그림같은 화면 구성이 그를 예술가로 만들어줍니다. 내용도 잔혹동화에 가깝구요. 유머도 많아 작가주의 감독 영화 중에서는 가볍게 볼 수 있지만 잔인하고 야한 속뜻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많아 성인용입니다.


작품성이 보장된 감독이니만큼 배우들에게 인기도 많아서 이 영화도 라이프 파인즈. <스파이더맨>의 그린 고블린 역으로 유명한 윌렘 더포. <레이디 버드>, <작은 아씨들>로 유명한 시얼샤 로넌,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플래시 역으로 알려진 토니 레볼로리와 틸다 스윈튼이 주연이구요. 할리우드 중견 배우로 캐스팅이 어렵다는 빌 머레이, 에드워드 노턴, 레아 세이두, 주드 로까지 대단한 캐스팅을 자랑합니다.




양파 껍질 벗기기


각본도 우수합니다. 양파처럼 이중 액자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표피층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책을 펼치는 독자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초반 5분을 차지하죠. 한겹까면 책을 쓴 작가의 과거 회상이 진행됩니다. 책을 쓴 작가는 요양삼아 낡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묵게 되는데요. 그곳의 소유주 제로를 만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한겹까면 지금은 노인인 제로의 소년 시절로 돌아가 호텔 지배인 구스타브와 로비 보이 소년 제로의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영화의 본이야기죠.


약간의 TMI를 덧붙이자면 굳이 감독이 영화를 액자형식으로 만든 이유에는 낭만을 다루는 영화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위함도 있지만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어떤 연출을 사용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화면비를 사용한 시간선 연출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영화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보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영화의 화면비는 점점 넓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아이맥스를 제외한다면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층층의 액자 구성 요소들은 각각의 화면비가 다릅니다. 과거와 현재. 액자 외부와 내부를 앤더슨 감독은 화면비를 이용해 구분하고 있습니다. 난 이만큼 영화를 사랑하고 잘 알아!하는 감독의 애정이 드러나는 부분이죠.




제로와 구스타브가 쫒던 낭만 그리고 앤더슨이 쫒던 낭만


주인공 제로와 구스타브는 몇가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실상 쌍둥이처럼 닮은 동류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스타브는 특히 특이한 인물인데요. 나이 든 금발의 여자만 밝히는 천박함, 호텔 직원들에게 밥 먹을 때마다 훈계 한마디를 덧붙이는 고리타분한 성격과 함께 로비 보이인 제로를 신경써주는 따듯함, 몸에 밴 자연스러운 매너를 가진 젠틀맨이기도 합니다. 그의 면모는 영화의 동화스럽고 유치한 분위기를 한층 살려주는 역할을 하죠. 영화의 주제인 사라져버린 낭만을 한 인물상으로 형상화하기도 하구요. 늙은 제로가 작가에게 전하는 구스타브에 대한 평가가 구스타브가 어떤 인물인지 분명하고 함축적으로 나타내 주는데요. 제로는 구스타브가 그의 여자들처럼 돈 많고 불안정하며, 허영심 많고 천박하며, 금발에다 외로웠다고 애정 어린 어조로 담담히 전합니다.


영화 후반부에는 구스타브와 제로의 환상이 꾸준히 강조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를 꾸준히 지키려는 낭만과 환상. 구스타브와 제로는 이러한 낭만이 사라져 가는 세상에서 홀로 환상을 지키는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환상은 빛바래고 훼손되는데요. 이는 낡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통해 시각적으로 한 번, 제로를 폭행하는 군인을 막다 죽는 구스타브의 코믹스러운 수미상관 장면으로 한 번 보여집니다. 마지막 장면에 이 책을 덮는 독자의 모습으로 영화가 마무리되는 것은 어쩌면 영화를 보는 감상자들이 이 영화를 통해 환상을 이어가주는 후계자로, 구스타브의 호텔보이 제로처럼, 남게 된다는 비유적 의미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웨스 앤더슨 감독의 최고작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상업영화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 예술영화를 만들고 있죠. 연출방식도 초기영화를 현대화합니다. 영화의 뿌리인 연극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구요. 미장센이 아름다운 점도 편집을 중시하는 현대영화들과는 차이가 있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문라이즈 킹덤>,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애스터로이드 시티> 등 그 어떤 앤더슨 감독의 영화보다도 앤더슨 감독 스스로가 잘 투영되는 영화라고 파악됩니다.




장면들


인상 깊은 영화의 여러 장면들에 대해 언급을 안 할 수 없겠네요. 가장 유명한 장면은 쇼생크 탈출을 연상 시키는 코믹한 구스타브의 교도소 탈출 장면입니다. 뛰어난 편집과 예상치 못한 각도로 상황을 조명하는 감독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장면이죠. 미니어쳐들로 구성된 조플링과 구스타브 제로의 급박한 추격 장면은 아기자기해서 의도치 않은 웃음과 함께 영화의 개성을 살려줍니다. 조플링이 코박스의 손가락 네개를 잘라 손가락이 댕겅 떨어지는 장면. 드미트리와의 총격전에서 화면 비가 갑자기 세로로 길쭉하게 늘어나는 장면이 모두 참신하고 좋았습니다. 특히 영화의 하얀색과 연핑크가 어우러지는 환상적이고 천박한 색감들도 인상깊었네요.


단순해보이는 유언장이라는 오브제와 상속인들의 싸움에 휩쓸린 호텔 지배인을 다루면서도 색다르고 동화적인 연출과 색감, 배우들의 코믹한 명연기, 사라져가는 환상과 그 추억에 관한 씁쓸한 향수를 뿌리는 듯한 영화.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었습니다.




평점 5/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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