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야간상영 17화

그레타 거윅, <작은 아씨들>

사랑받고싶어

by 도연호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작은 아씨들>은 유망한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과 더불어 플로렌스 퓨, 엠마 왓슨, 티모시 샬라메, 시얼샤 로넌 등 초호화 배우진까지 합쳐져 많은 기대를 받았던 작품입니다. 그 기대를 충족시켰다고 보아도 별 문제없을만한 수작이기도 하죠. 영화는 원작의 잔잔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내면서 원작의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나 단점은 능숙히 가리고 있습니다. 잔잔한 일상을 다루는 시대극이라는 점, 주연 인물과 자매의 삼각 관계를 다룬 점에서 묘하게 우리나라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했죠. 저는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요. <레이디 버드>, <작은 아씨들>, <바비>를 모두 보았었는데 개중에서도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은 굉장히 뛰어난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자인 노아 바움백 감독과 유사하게 인간 감정의 깊은 부분을 세심하게 다루고 존중하며 묘사해내는 능력과 여성화자를 다루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따뜻하면서 미니멀한 화면도 제 스타일이기도 했구요. 마지막으로 저는 티모시 샬라메와 시얼샤 로넌 두 배우를 너무 좋아하고 두 배우의 선구안도 뛰어나다고 생각했었던터라 작품을 보기 전부터 괜시리 기대가 되었던 그런 <작은 아씨들>이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어요. 다만 두 시점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구요. 상황에 따라 왔다갔다 시점을 옮겨다니기도 해요.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에 영화의 주연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사건과 이로 인해 그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기준으로 영화를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입니다.




로리의 고백을 조가 거절한 이유


영화의 주인공 4남매 중 둘째 조는 발랄하고 말괄량이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가 되기를 꿈꾸며 이에 걸맞는 글 솜씨로 연극을 써 4남매와 친구 로리와 함께 공연하기도 하죠. 이 연극은 영화 특유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요. 후반부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만나지 못하게 되는 남매들의 상황을 부각시켜 주기도 합니다. 조는 로리와 친구를 가장한 연애를 하고 있는데요. 로리는 조를 사랑하며 몇년을 고백않고 친구 관계를 유지하다 첫째 매그의 결혼식에서 조에게 고백합니다. 이 장면은 너무나 인상 깊고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장면이에요. 단지 로리의 고백을 거절하는 조와 그런 조 앞에서 사랑한다고 여러 번 참아왔던 말을 거듭 뱉고 돌아서는 로리가 드라마틱해서 뿐만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도 두 명이 왜 이어질 수 없었는지도 함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먼저 주목할 점은 조는 로리를 사랑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결국 사랑하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영화의 끝자락에 조는 셋째 베스의 죽음과 외로운 도시 생활을 견디다 못해 사랑받고 싶다고 울며 로리의 고백을 받아주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가 로리를 사랑했다고 오해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로리의 대사에서도 드러나는데 로리의 고백을 다시 찬찬히 보면 도저히 사랑 고백을 하는 사람이라 보이지 않습니다. 절박하게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감정에 호소하고 있는 느낌을 주죠. 거절당하고 나서도 자신은 결혼할 생각이 아예 없다는 조에게 너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살고 죽을 사람이며 자신은 결국 조의 사랑을 멀리서 지켜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조가 결국 프리드리히와 결혼한 것을 생각하면 로리가 조를 꿰뚫어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사이면서 조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은연 중 알고 있었음을 드러내 주는 절묘한 대사인 셈입니다. 조도 로리에게 너는 너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상류층 사람이 더 어울린다는 말을 하는데요. 로리는 상류층 생활을 하고 있는 조의 동생 에이미와 이어지게 됩니다. 자기 자신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으면서 이어질 수 없는 상황이 여러 사람의 실제 사랑과 닮아있을 것만 같아 여러모로 목 메이는 장면이었어요.




아씨들이 아가씨들이 되기까지. 애정어린 시선으로


영화의 후반부에서 작은 아씨들은 현실의 장벽에 부딪힙니다. 결혼 생활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메그, 병을 앓아 일찍 죽게 되는 베스, 상류층 생활을 홀로 버티고 있는 에이미, 어려운 도시 생활을 해나가는 조는 떨어져 제각각 현실과 마주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모두 성장한 모습을 보이죠. 에이미는 이전과 달리 로리와 사랑을 이루기도 하고, 조는 에이미와 로리의 결혼에 충격을 받았음에도 동생을 이해해줍니다. 동생이 원고를 태워먹었다며 며칠째 이야기를 하지 않다 에이미가 연못에 빠지고서야 화해하는 부분과 대비되는 장면입니다. 메그는 생활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하고 가지고 있던 환상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지만 남편과 꿋꿋하게 삶을 이어나갑니다. 로리는 그동안의 수줍음과 조를 향한 일방적인 구애, 귀족층 집안 환경에 대한 반항심 가득한 세월을 거쳐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해줄 수 있는 남자가 됩니다. 조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글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죠. 빗속에서 조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하는 장면은 아름답고 극적으로 그려집니다.


약간의 단점을 꼽자면 유치원생 같은 아주 어린 아역이 맡아야 할 시간대의 장면까지 성인 배우가 맡아 몰입도가 좀 떨어지는 장면이 있었어요. 또 4자매의 어머니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고모 할머니는 통찰력이 있는 재력가로 여성들은 능동적으로 그려지는 것에 반해 아버지나 메그의 남편 같은 경우 무능한 남성상으로 그려져 PC주의가 지나치게 반영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의식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물론 반영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작품의 분위기나 흐름과 어울리는 설정인지 조금은 고민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무능하면서도 따뜻하고 선량한 면모가 돋보이도록 그려놓기도 했고 전개상 자연스럽기에 큰 거부감은 없이 볼 수 있겠기도 합니다. 그리고 작품의 시대상을 조금더 알았으면 이해가 빨랐을텐데 제가 남북전쟁 시대에 대해 이해도가 떨어지기도 했던터라 제 스스로에게 조금 아쉬웠던 부분도 있습니다. 식견이 짧아 작품을 완전히 즐기지 못한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서요. <작은 아씨들>은 거창한 교훈이나 무거운 주제 대신 사람들의 삶과 성장을 가벼운 유머와 따뜻한 시선을 줄기로 천천히 이끌어 갑니다.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이뤄질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생이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고 살아볼만한 것이 아닐까요.


어디에선가 1990년대에 살았을 로리, 조, 에이미, 메그, 베스를 떠올리게 하는 따듯한 색감의 성장영화.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이었습니다.




평점 3/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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