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와 얼룩말이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꿈
A24 영화들이 요즘 아주 잘 나가고 있습니다. <겟아웃>부터 한국에서 최근 개봉한 <시빌워>까지 대부분의 배급 작품들이 중상 이상의 완성도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특히 완성도가 높았다고 여겨졌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별 주목을 받지 못한 이 영화를 소개하고 싶어 가져왔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 대부분이 영화의 주제가 꿈과 집단공동체, 그리고 집단공동체의 일면 가운데서도 대중들의 잔인함과 변덕을 조명했다고 바라보시는 분들이 꽤 많더라구요. 저는 여기에 약간의 배경지식을 더해 <드림 시나리오>가 어떤 영화인지, 일견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장면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말씀드리고 싶어요. 물론 주인공에 대한 분석도 더해서요.
먼저 <드림 시나리오>의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소심하고 평범한 대학교수 폴이 지구상 모두의 꿈에 나타난다는 특이한 줄거리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폴이 지구상 모두의 꿈에서 꿈을 관망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이 사건으로 폴은 일약 스타덤에 오르지만 곧 상황은 반전됩니다. 지구상 모두의 꿈에 나타난 폴이 다양한 잔혹하고 기괴한 방법들로 살인을 저지르는 끔찍한 모습으로 변화하며 폴은 아무 죄없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맙니다. 이후 어느 시점부터 폴은 모두의 꿈에서 나타날 때처럼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그는 잊혀집니다. 그러니까 표면적인 폴의 서사를 넘어 폴이 인기를 얻는 과정과 무너지는 과정이 쉽게 인기를 얻을 수도, 쉽게 인기를 잃고 매장당할 수도 있는 현대사회를 은유적으로 묘사했다고 보아도 무리는 없는 셈이죠.
여기서 폴이 어떤 인물인가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그는 개미들을 이용한 진화심리학을 그중에서도 관계망을 연구중인 교수입니다. 그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자신을 공격한다는 방어기제를 발동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또한 동료들이 모이는 모임에서도 배척당하며 학생들에게도 그닥 인기있어 보이지는 않아요. 그는 자신이 모두의 꿈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관망하기만 했다는 사실에 불만을 느낍니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그는 그 인기를 자신의 연구가 알려지는 방향으로 이용하고 싶어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의 소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광고회사의 비서가 자신의 꿈에서처럼 폴과 성관계를 하고 싶어하자 내심 기뻐하며 아내와의 의리를 지키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거부감을 느껴 성관계 직전 연거푸 방귀를 뀌며 창피를 당하는 장면입니다.
그의 위치를 드러내주는 극중극으로 폴이 강의 중에 언급한 얼룩말들의 무늬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얼룩말들은 초원에 적합하지 않은 진화를 했지만 서로의 무늬에 섞여들어감으로서 거대한 무리를 형성하여 사자들이 한 개체를 사냥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이야기였죠. 폴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그런 그는 꿈속에서 관망하기만 하며 대중에 섞여들고 호감을 얻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에는 트위스트가 있었죠. 무리에서 떨어져 스스로를 드러낸 얼룩말은 사냥당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꿈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고만 폴은 대중에게 사냥감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기괴한 쇠로 된 손을 달고 광고를 찍은 폴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요.
여기까지가 서두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영화의 결말부 직전까지는 영화의 흐름에 흠잡을만한 구석이 없습니다. 윗 문단으로 모두 설명 가능한 내용들이죠. 그런데 딸의 무대를 지켜보고 싶어하던 폴이 꿈에서처럼 폭력을 휘두른 순간부터 의아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영화는 시점을 건너뛰죠. 폴의 사진이 영정사진처럼 화면에 등장하고 그 화면은 곧 광고 화면으로 변합니다. 폴의 사건 이후 세계는 꿈을 탐험할 수 있는 소위 '리비도'라는 장치를 개발합니다. 리비도의 광고 이후 폴은 경험을 밑거름삼아 연구를 포기하고 '드림 시나리오'라는 책을 씁니다. 영화의 결말은 더욱 의아합니다. 처음으로 자의로 다른 이의 꿈에 들어갈 수 있게 된 폴은 영화의 중반부 언급된 아내의 성적 판타지를 아내의 꿈 속에서 직접 실현시켜주죠. 아내와 뺨을 맞대고 천천히 돌며 폴은 이 순간이 현실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운을 남기며 영화는 끝이 나죠.
이 부분은 대체 무슨 의도를 담고 있을까요? 앞서 설명한 제 글에 대해 군데군데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폴의 인생과 캐릭터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놀랄 정도로 유사합니다. 그의 연구는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죠. 폴의 연구처럼요. 실증 대신 관찰만을 통해 꿈과 성에 대해 연구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한 저서로 대중들의 스타덤에 오릅니다. <꿈의 해석>이죠.
다만 실제로 증명할 수 없는 그의 이론은 살아생전 학계에서 배척당했습니다. 성과 꿈의 연관성을 지나치게 파고들었다는 점도 그의 이론의 약점이었습니다. 그는 성적 에너지를 '리비도'라 불렀죠. 폴이 대중에게 외면당하고 난뒤 리비도가 출시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광고에서는 프로이트 대신 융이 언급되죠. 융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받아들여 집단무의식 이론을 창시합니다. 폴, 그러니까 프로이트가 물러가고 그의 사건, 그러니까 연구를 바탕으로 집단적인 무의식 장치, 그러니까 이론을 발명한 융으로 이야기가 대입되는 것입니다. 너무 복잡한가요. 그동안 폴은 단 한번도 자신의 의지로 꿈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의 의지대로 등장한 단 하나의 꿈은 아내와의 애정과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꿈이었습니다. 이것 역시도 폴이라는 한 인간의 인간적이고 따듯하면서 안타까운 면모를 강조함과 동시에 평생 성과 꿈에 대해 연구한 프로이트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인 셈이죠.
사족을 덧붙이자면 정신분석학은 오히려 철학과 인문학에 더 큰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이 영향을 끼친 산업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영화입니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에고, 이드, 수퍼에고 개념은 영화를 분석할 때 아주 자주 등장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를 해석할 때는 물론이고 누구나 아실만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의 주연들도 에고, 이드, 수퍼에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너무 제멋대로 설명하는 것 같으니 권위자의 말을 조금 빌리자면 이동진 평론가 님은 <다크나이트>의 중심이 조커도 배트맨도 아닌 하비 덴트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하비 덴트의 위치가 에고임을 고려한 말씀이라고 해석됩니다. 다른 방송에서 변화하는 행동을 보인 이가 영화 내의 주인공이라고 하신 적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이 내용 역시도 정확히 에고에 해당되는 설명입니다. 이드의 유혹과 수퍼에고의 불변하는 도덕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물이 에고이기 때문이죠.
아예 정신분석학과 영화의 관계를 이론으로 정립한 사람도 있습니다. 영화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이름, 지젝입니다. 유튜브에서도 범죄 심리학자 박지선 교수님이 영화를 분석하는 영상이 인기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심리학과 영화는 의외로 뗄려야 뗄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가 왜 이렇게 정신분석학을 오마주했을까 궁금하신 분들이 있을까 추가 설명드렸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제 글을 읽고 너무 어렵고 지루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드실수도 있을텐데 독창적인 스릴러 호러 영화라고 생각해주시면 더 편할 것 같습니다. 위의 내용을 아예 모르고 봐도 영화 감상에 아예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알고 보면 영화가 속속들이 이해되는 장점은 있겠습니다. 독특하면서 힙한데 좀 덜 무서운, 마일드한 호러를 보고 싶으신 분께 추천드립니다.
꿈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독창적인 줄거리와 의미를 담은 과소평가된 영화.
크리스토페르 보르글리의 <드림 시나리오>입니다.
평점 3/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