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야간상영 15화

코엔 형제, <인사이드 르윈>

무너진 철학과 잔잔한 우울, 그리고 위로

by 도연호

심도 깊게 생각해보고 감독의 뜻을 헤아려야 재미있는 영화들도 있지만 가끔은 보는 것만으로 감정의 굴곡을 가져다주고 미학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영화들도 있습니다. <인사이드 르윈>은 둘 다에 해당하는 영화였어요. 코엔 형제 특유의 블랙 코미디 감성과 왜인지 모르게 칙칙하고 우울한 색감, 주인공 르윈의 코믹한 대사와 암울한 상황이 맞물려 일상에 짙게 스며드는 우울감을 묘사하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오스카 아이작과 캐리 멀리건, 아담 드라이버,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 우수한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르윈을 연기한 오스카 아이작의 연기가 가장 돋보였습니다. 음악적으로도 너무나 뛰어나서 영상미가 돋보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나면 음악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의도와 숨은 상징들을 찾기를 즐기기도 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인사이드 르윈>을 보고 나니 어떤 영화들은 정신을 놓고 감상하며 끌려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었습니다. 영화는 정답을 찾는 예술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더 그랬습니다.




르윈과 고양이, 코엔 형제의 위로


르윈은 순수하고 예술가답게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면서도 일견 고지식하고 타협없는 일면을 지닌 포크 가수입니다. 하지만 무명가수라 집도 없이 지인의 집 소파를 전전하며 살아야 하는 르윈은 일상 속에서 강제로 이러한 예술가적 일면을 억압당하고 괴로워하죠. 영화 제목 인사이드 르윈은 주인공 르윈이 낸 앨범 제목이기도 하지만 영화 전체가 르윈의 내면의 변화을 따라가는 과정임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르윈은 교수가 맡긴 길고양이에 대해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입니다. 고양이는 르윈의 내면을 드러내주는 상징물이죠. 르윈처럼 떠돌이 생활을 하기도 하구요. 르윈은 그런 고양이에 이입해 전 여자친구 진에게 고양이가 들어올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음반 홍보도 할 겸 기획사를 찾으러 시카고로 간 르윈은 고양이를 버리고 떠나고 시카고에서 다시 돌아오는 길에 르윈은 길고양이 한 마리를 차로 치고 가게 됩니다. 르윈에게 길고양이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의미합니다. 길고양이를 치는 의미심장한 장면 뒤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르윈은 자책하면서도 다시 클럽의 밤무대에 서서 노래를 계속합니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은 수미상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르윈에게 모욕 당한 여자 가수의 남편이 르윈을 부르자 클럽을 전전하는 자신의 무대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가득 찬 르윈은 다 생계를 위한 일이라며 상황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르윈을 폭행한 여가수의 남편은 대응하지 않고 자리를 뜹니다. 괴로워하던 르윈은 또 보자며 실 없는 인사를 남편에게 남기고 영화는 끝이 납니다. 결국 르윈은 꿈을 이루어 낼 가망이 없는 현실에 순응하고 앞으로도 현실 속에서 살아갈 것임을 방증하는 장면입니다.


르윈이 차를 운전할 때 르윈의 시야를 따라 차 앞의 정경 심도가 점점 낮아지고 흐려지는데요. 르윈의 감정과 어두운 미래를 동시에 암시합니다. 여행을 다녀온 르윈은 잃어버린 고양이는 교수의 고양이가 아니고 실제 교수의 고양이 이름은 율리시스임을 알게 됩니다. 이는 르윈의 음악도, 시카고로의 길고 피로한 여행도, 그의 인생도 비루한 실패작일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르윈의 여정을 오디세우스의 여정에 비유해 르윈을 위로하고 존중하는 영화적 장치로 보입니다.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관객은 르윈의 시점에서 르윈의 말, 행동,노래로 드러나는 르윈의 내면을 따라가지만 정작 르윈은 영화 속 누구에게도 위로받거나 공감받지 못합니다. 르윈을 아끼는 교수도 실은 르윈의 내면에 공감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는데요. 음악가가 직업인 르윈에게 식사 중 음악을 연주하라 시키며 자존심에 상처를 줍니다. 옆의 부부는 중국인이고 르윈과 대화가 잘 통할 것이라며 초대한 사람은 클래식 음악가인 등 르윈과는 하등 대화가 통하지 않을 사람들을 마치 르윈을 배려하는 양 즐겁게 소개해주는 모습을 보입니다.


르윈의 전 여자친구이자 비슷한 처지라 조금이나마 공감하는 진도 르윈에게 폭언을 뱉는가하면 르윈의 자식일지도 모를 자신의 아이를 낙태하려 합니다. 심지어 이 일은 처음이 아니며 이전에 낙태한 다른 여자친구를 수술해주었던 의사를 찾아간 르윈은 설상가상 그녀가 낙태를 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떠났다는 사실을 듣습니다. 이때 르윈은 충격과 씁쓸함으로 텅 비어버린 표정을 짓더라구요.


마지막 보루로 찾아간 시카고의 여행길에 동행한 운전수와 늙고 뚱뚱한 신사는 르윈과는 한 마디 대화도 하지 않으려 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만 해대는 끔찍한 대화법의 양 극단을 보여주고 르윈의 자살한 듀엣 파트너를 들먹이며 르윈을 모욕하기도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음반회사의 사장 앞에서 르윈은 아이를 낳고 죽은 여인의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지만 음반회사 사장은 상업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다시 듀엣으로 합칠 것을 권유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르윈 또한 누군가와 공감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자친구의 낙태 수술 날짜를 까먹는 충격적인 인간성은 기본이고 자신의 팔리지 않은 악성 앨범 재고를 탁자 밑으로 밀어넣으려다 자신을 재워준 동료 가수 알 코디의 앨범들을 발견하고도 아무 대화도 공감도 시도하지 않습니다. 항해사가 되지 않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아픈 항해사인 아버지의 거처도 오랫동안 방문하지 않았죠. 결국 삶의 전부를 깎아 갈아넣은 음악으로도 공감받거나 소통하지 못한 르윈은 음악에 대한 스스로의 철학을 포기하는 결말을 맞습니다.




색감과 분위기


영화는 칙칙하고 어두운 녹색과 흐릿한 하얀색을 뒤섞은 차분하고 어두운 색감으로 이루어져 있고 화면과 르윈의 음악이 맞물려 세련되어 보였습니다. 음악을 자꾸 언급하게 되는데요. 잔잔하고 어두운 곡조도 인상적이며 가사 또한 미처 표현하지 못한 르윈의 상황과 내면에 묘하게 겹쳐 관객을 흔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Hang me, oh hang me와 밥 딜런의 Fare well이 기억에 남더라구요. 마침 곧 밥 딜런의 전기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이 개봉을 앞두고 있어 괜시리 <인사이드 르윈>에 대해 써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지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코엔 형제의 영화답게 코믹하고 가볍지만 한편으로는 우울하고 차가운 이면과 풍자를 겸하는 블랙코미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거듭 주인공에게 닥쳐오는 불행을 묘사한 점에서 코엔 형제의 <시리어스 맨>과도 유사하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영화의 주제를 다소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즐기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점도 장점이었습니다. 르윈이 저작권료 대신 음반회사 사장의 코트라도 가져가겠다며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나 전 여자친구에게 대차게 욕을 얻어먹으며 다시는 성관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강요받는 르윈의 짜증 가득한 표정이 기억에 남네요. 음악 영화 중에서 손에 꼽을만한 명작이고 개인적으로도 취향에 맞아 즐기며 감상했던 영화였네요.


무너진 일상과 꿈의 경계에 흐르는 잔잔한 우울함과 웃음을 담아낸 블랙코미디 음악영화.


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이었습니다.




평점 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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