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야간상영 13화

윤성현, <파수꾼>

순수한 악의를 가진 소년이 던지는 마구의 구력

by 도연호

학교에는 권력이 존재합니다.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조금씩은 느끼셨겠습니다. 학교에서의 권력관계는 특별해서 우정과 마구 뒤섞이는 느낌을 받곤 할 때도 있죠. 개중에서도 우리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친밀한 친구와의 권력관계가 눈앞에 나타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윤성현 감독과 배우 이제훈, 배우 박정민의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잘 알려져 있는 <파수꾼>은 이 미묘한 경계를 탐구한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저는 셋 모두의 최고작이 바로 이 <파수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파수꾼>을 좋아하는데요.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연출과 거칠고 순수한 소년들의 열등감과 분노 사랑을 드러내는 독특한 정극연기, 개성적인 인물과 완성도 높은 각본까지 한국영화 역사에서 손에 꼽을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태의 야구공


<파수꾼>의 세 인물들은 모두 매력적입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오브제로 야구공이 등장하는데요. 정황상 기태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 받은 소중한 물건으로 보입니다. 야구공은 세가지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해석되는데, 그중에 하나가 기태의 열등감입니다. 기태에게 야구공은 잃어버린 어머니를 대신합니다. 친구들이 어머니에 대해 대화할 때 기태는 지독한 열등감을 느끼고 반발합니다. 처음에는 이야기의 화제를 돌리는 식의 방어기제로 기태의 열등감이 표출되다가 이전부터 갈등이 있었던 희준이 조롱한다는 정황을 눈치채자 이는 희준에 대한 가학행위와 권력을 이용한 폭력으로 나타납니다. 영화의 소름끼치는 결말부에서 기태가 어떤 인물인지 분명히 나타나는데 이는 가장 친한 친구였던 동윤의 환상으로 드러나죠. 기태는 동윤에게 야구 선수가 되어 홈런을 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 일인 연극을 시연합니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의 환희. 기태는 그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동윤이 인정해주기를 원하죠. 말하자면 기태는 자신의 열등감을 배트로 멀리 날려보내고 이를 바라보며 열광하는 관중의 위에서 군림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보다도 더욱 중요했던 것은 친구 동윤의 인정이었죠. 기태는 부모님의 죽음에서 기인한 상실과 열등감을 단 두 명에게만 내보이는데 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 두 명의 친구 동윤과 희준이죠. 동시에 둘은 기태의 야구공을 넘겨받은 유일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기태에게 두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영화의 첫번째 화자 기태를 더욱 매력적인 인물로 만드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다른 일반적인 영화였다면 기태는 친구를 지배하고 싶어하는 악의 전형이었겠지만 기태는 사실 마지막 순간까지 친구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처음 희준이 조롱한다는 정황을 눈치챘을때도 희준에게는 일언반구 터치를 가져가지 않았고, 재호를 윽박지릅니다. 보경의 고백에도 희준을 생각해 거절하죠. 동윤의 충고를 받아들여 희준과 화해하려 노력하고, 동윤과의 관계가 틀어졌을 때에도 과일을 사들고 가 사과하죠. 하지만 기태의 소통방식은 자존심과 열등감에 진심을 묻어 속이는 방식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동윤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식적이었죠. 예를 들어 희준에게 사과할 때 머리를 쓰다듬는데 이는 기태의 입장에서는 애정표현이었지만 희준은 자신을 아래로 보는 기태의 심리가 반영되었다고 보죠. 기태가 동윤에게는 한번도 그러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것 또한 맞는 판단이었구요. 기태는 자기혐오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가식적이었던 기태가 가식적인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는 언급과 묘하게 불안해보이는 그의 태도로 드러납니다. 결국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죠.




사회비판적 관점


기태를 사회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먼저 그는 한부모 가정이었지만 아버지는 그에게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아버지의 대화 방식도 저는 굉장히 디테일하게 연출되었다고 감탄했는데 본의를 숨기며 조금은 고압적인 태도로 대화합니다. 희준에게 동윤의 연락처를 달라고 할때 동윤의 연락처 좀 부탁하자하고 기태가 희준에게 사용하던 청유형을 사용하는 부분과 동윤에게 숨기는 일을 말해달라고 물어보지 않고 말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말해달라며 우회적으로 말하는 부분이 그러하죠. <파수꾼>에서는 같은 장소가 의도적으로 여러번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공원에서 동윤이 기태를 만나는 장면의 연출과 동윤이 기태의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의 연출은 일치합니다.


또한 학생들끼리의 폭력이 일어나는데도 어른의 개입은 정말 눈꼽만큼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교사나 학부모 양쪽에서요. 물론 영화 전개상 어쩔 수 없었던 부분도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기태가 고립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수꾼>이 사회비판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할 여지도 있죠. 영화의 곳곳에 의도적으로 배치된 황량한 아파트들이 파수꾼처럼 도시를 가로막은 장면들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영화의 오프닝 또한 한 학생을 폭행하는 기태를 오묘한 눈빛으로 지켜보기만 하는 동윤과 희준을 조명하지요.




희준과 동윤


희준은 영화의 두번째 화자입니다. 여기서 야구공의 두번째 역할도 같이 언급하고 싶습니다. 야구공은 영화의 시점을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희준이 야구공을 받는 장면 이후는 희준의 관점으로 희준에게서 동윤이 야구공을 넘겨받은 이후로는 동윤의 관점으로 극이 진행됩니다. 희준은 섬세하고 내성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기태와 동윤의 우정에서 한발짝 멀어져 있으며 동윤과 기태와는 달리 다소 평범한 학생의 입장이기도 하죠. 기태와는 다르지만 역시 틀린 소통방식으로 그 또한 친구들과 멀어지는데요. 그는 본심을 숨기고 억누르며 비꼬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결국 기태와 미묘한 거리감이 생기고 폭발하는 갈등을 참다 전학을 결정하게 된 그는 기태에게 감정을 무섭게 표출합니다. 지금도 유튜브에 떠도는 박정민과 이제훈의 영상으로 영원히 남아있게 된 명장면이죠. 하지만 그는 영화의 말미 동윤과 기태와는 달리 유일하게 성장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동윤이 진실을 말하지 않더라도 이해해주며 진실을 기태의 아버지에게 전달하려 노력합니다.


영화의 세번째 화자는 동윤입니다. 가장 어른스러운 인물이고 기태와 희준을 중재하려하죠. 세정에게는 애정을 아낌없이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는 기태가 세정의 자살시도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자 일순간 가해자로 돌변합니다. 기태를 잘 알고 있었던 동윤은 기태의 약점을 후벼파 끝내 그를 자살에 이르게 하고 맙니다. 기태와 동윤은 서로를 누구보다 믿었기에 마음속의 진심을 나눕니다. 동윤의 집에서 너만 있으면 된다는 기태와 세정을 사랑한다고 공원에서 기태에게 말한 동윤의 진심들은 위기의 상황에서 서로를 공격하는데 악용되고 결국 이는 최악의 결과를 불러옵니다. 그의 어두운 이면 또한 영화 곳곳에 암시되는데 기태가 희준에게 사용했던 몇몇 말들은 동윤이 중학생 시절 기태에게 했던 말들이었습니다. 또 동윤은 기태를 마음대로 불러냅니다. 기태가 희준을 마음대로 불러냈듯이요.




4번 타자


마지막으로 인상깊은 연출들과 결말부 장면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그리고 야구공의 마지막 역할도요. 좀 싱겁지만 야구공은 기태 자신을 상징합니다. 기태가 야구공을 잃어버릴 때 덤불에 파묻힌 기태와 야구공이 조명됩니다. 기태의 미래를 암시하는 장면이죠. 덤불 등의 프레임에 물체나 사람을 가두어 보여주는 연출은 부정적이고 불길한 의미를 함축합니다. 최근 영화 중에서는 <파묘>에서 무덤 주위의 나무들이 그물을 이루며 무덤을 가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연출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야구공의 마지막 의미에 주목하여 결말부 장면을 해석하면 기태는 권력욕과 폭력성 열등감을 쫒아 동윤과 건강하게 주고받던 관계를 놓고 멀리 스스로를 날려 보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파수꾼>이라는 영화의 전개를 함축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태의 자살장면에서 과다노출이 사용되는데 과다노출은 굴레를 벗어내 자유를 찾는 등의 긍정적인 장면에서 주로 쓰입니다. <김씨표류기>에서 히키코모리인 배우 정려원이 맨발로 집을 뛰어나오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파수꾼>에서는 반대의 의미를 가진 장면에 쓰는 방식으로 비틀었더라구요. 동윤의 집 거울을 이용한 장면도 인상깊습니다. 희준과 동윤의 대화 그리고 기태와 동윤의 대화 중 가운데에 위치한 거울은 마치 서로가 서로의 잔상을 보고 대화하는 듯한 연출을 보여줍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혹은 서로 소통하지 못한 세 친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입니다. 우리는 가장 단단할 것 같았지만 가장 위태로웠다. 네이버 영화 평점 1위 댓글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 싶습니다. 임팩트있고 쉽게 <파수꾼>을 요약해주는 댓글이라 도저히 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투박하고 순수한 소년들의 진심과 악의가 뒤섞인 영화, 학창시절의 미묘한 권력관계와 우정을 조명한 영화.


윤성현 감독의 데뷔작 <파수꾼>이었습니다.




평점 5/5점.







keyword
이전 12화김창훈, <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