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야간상영 12화

김창훈, <화란>

찌에 걸린 물고기들의 장송곡

by 도연호

송중기가 노개런티로 출연해 한번 화제가 되었고, 신인감독이 칸 영화제에 진출해 또 한번 화제가 되었던 김창훈 감독의 영화입니다. 신인감독의 영화답지 않게 짜임새가 있고 깊이도 깊어 이해에 조금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 <화란>이 다시 올라왔기에 기억을 되살려 리뷰를 써 보려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있습니다. 결말 부분에 군더더기가 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왜인지 부족하고 비어 보이는 장면들이 많아 애를 먹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송중기의 연기는 좋았습니다. <화란>을 통해 가장 많이 얻은 사람을 꼽자면 감독 다음으로 송중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명확한 감정 표현 없이 미세한 눈빛과 표정만으로 차가운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임을 입증했습니다. 또다른 주연인 홍사빈과 김형서도 무게감이 확실했구요. 연기가 장점인 영화라고 보아도 무방한 수준이 놀랐습니다. 연규가 담배 꽁초를 태운 자장면을 아이가 먹는 것을 보면서 말없이 눈을 돌리고 나중에 무표정하게 아이에게 생일 선물을 주는 장면과 치건이 연규의 손톱과 자신의 손톱을 함께 뽑으며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과 괴로움, 허탈함을 대사 없이 전달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깊었어요.




불행의 종점


<화란>의 모든 인물은 짙은 불행에 빠져 있습니다. 연규는 지옥 같은 동네에서 태어난 아이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없으며 새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에 연규를 폭행합니다. 연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일말의 양심과 순수함, 꿈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국회의원 후보의 다리를 자르면서도 손을 벌벌 떨고 이해해주세요라는 말을 반복하기도 하고 치건에게 돈을 떼먹히고 아들은 다친 택시운전사에게 오토바이까지 가져다줍니다. 연규는 치건과 조직의 잔인함에 점차 양심을 잃어가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치다 사거리에서 갑자기 오토바이 연료가 떨어지자 연규가 황망한 표정으로 앞을 응시하고 곧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괴물 같은 모습에 급히 얼굴을 닦지만 오히려 피가 번져 흉측하게 변하는 장면이 이를 암시합니다. 개인적으로 <화란>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연규가 가진 순수함은 지워지지 않고 결국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새아버지에게 복수하지 않고 하얀과 길을 떠나는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다만 연규가 어머니를 잃음으로서 화란을 영원히 찾지 못하게 된 결말일지, 하얀과 함께 순수성을 지켜 지옥 같은 동네의 굴레를 벗어나 화란을 향해 나아가는 결말일지는 관객에 따라 갈릴 수도 있겠네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하지만요.




과거를 바라보는 치건, 미래를 바라보는 연규


치건은 조직의 간부 위치이지만 한편으로는 연규와 쌍둥이처럼 닮아있습니다. 치건은 연규에게 그답지 않은 깊은 애정을 보입니다. 박카스 상자에 300만원을 쟁여두기도 하구요. 치건과 연규가 처음 만나는 식당에서 연규는 돈이 필요하다며 아빠를 그 새끼라고 부르면서 치를 떠는데, 이는 어릴적 치건의 상황과 같습니다. 이때부터 치건은 연규를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고 아꼈다고 추측됩니다. 그럼에도 치건은 환경의 영향인지 삐뚤어지고 애정을 제대로 표현 못 하는 태도를 보여요. 연규는 치건에게 자신의 상황을 솔직히 털어놓고 치건이 생선을 발라먹는 모습까지 손을 데어가며 따라하다 마지막에는 치건이 빼지 못한 자신의 손톱을 치건처럼 잡아뽑습니다. 하지만 치건은 연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포장해서 설명하고, 연규가 돈을 모아놓은 화란의 풍차가 그려진 낡은 상자를 새 것으로 교체해주려고 만들어놓으면서도 끝내 이를 전달하지 않아요. 또 치건은 은연 중에 일을 그만두려는 연규에게 이 일이 너에게 딱 맞다라고 하거나 여기 계속 머무르라고 종용하는 듯 화란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연규를 붙잡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택시운전사의 오토바이를 빼앗아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서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서도 그냥 한다는 말을 반복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치건의 성향은 결국 택시운전사가 고의로 연규의 오토바이를 고장내 일을 어그러뜨리고 자신의 죽음까지 가져오는 결과로 이어지죠. 정작 치건은 자신을 끝까지 따랐던 승무를 의심했던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치건은 연규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미래 중에 하나입니다. 반대로 연규는 치건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과거이죠. 둘의 결정적 차이는 연규는 화란을 믿고 있지만 치건은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치건은 동네를 고여버린 호수로 생각합니다. 치건과 연규는 서로 물고 뜯는 물고기이죠. 짐승처럼 물고기를 물어뜯던 치건의 행동을 고려하자면요. 치건에게 연규가 바라는 화란은 후에 설명할 물고기를 낚는 찌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치건 또한 내심 연규의 말이 사실이길 바랬던 것으로 보입니다. 연규를 위해 준비한 돈과 나무상자 속 2개의 찌를 고려해보면요.


조연인 연규의 새아버지나 택시 운전사도 이렇게 불행한 인물의 일부로 볼 수 있습니다. 택시 운전사는 사채를 썼다가 아들은 의식 불명 상태에 자신도 빚에 허덕이는 상황에 몰립니다. 결국 복수하지만 그 대상은 치건이 아니라 조직의 막내이자 자신과 심지어 아들과도 친분이 있던 연규였지요. 새아버지도 술을 마시며 폭력을 휘두르는 막장 아버지이지만, 치건이 들어오자 자신도 모르게 딸 하얀의 앞에서 지키거나 사업이 망했고 어머니에게 잘해주려 노력했다는 연규의 말, 후반에 연규의 엄마를 죽이고 피 묻은 야구방망이를 든 연규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 조금은 입체적인 인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연규가 결국 마지막에 돈을 갚기 위해 새아버지의 가게를 터는데요. 거기 있던 돈이 10만원도 안 되는 것을 깨닫고 돈을 내려놓는 장면이 새아버지 또한 사회적 약자이자 가해자임을 여실히 드러내줍니다. 연규는 이렇게 끊기지 않는 증오의 사슬을 끊고 새아버지에게 복수하지 않는 선택을 한 채 하얀과 마침내 자신이 나고 자란 동네를 떠나는 결말을 맞습니다.




낚시꾼과 찌


치건이 연규에게 해준 낚시꾼이 귀를 잡아 꺼낸 아이 이야기도 주목해 볼만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낚시꾼은 조직의 형님이고 아이는 치건이지만, 다르게 보면 치건이 낚시꾼이고 연규가 아이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금방이라도 익사할 상황에 연규는 치건 그러니까 낚시꾼의 찌에 귀를 꿰어 살아남았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집에서는 참혹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이 유사합니다. 연규가 손톱을 뽑은 장면은 어찌보면 고기가 낚시꾼의 찌에서 몸을 결국 빼낸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요. 또 다르게 보면 관객이 아이이고 감독이 낚시꾼으로 보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종반부 치건이 연규를 위해 만든 나무 상자와 돈이 가득 든 박카스 상자를 챙겨 연규를 기다리자 저는 치건이 이 돈으로 연규를 화란으로 보내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치건은 끝내 그러지 않고 연규의 손에 죽음을 맞았고 조직의 보스가 열어본 나무 상자 안에는 낚시꾼의 찌가 두 개 들어있었습니다. 나무상자가 관객을 낚는 찌, 맥거핀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결국 화란이 실재하느냐 아니냐는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감독은 열린 결말로 영화를 마무리하는 선택을 내렸겠지요. 중요한 부분은 개인이 괴로운 삶 속에서 화란을 믿고 살아가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영화의 장점은 영화 특유의 어둡고 흡입력 있는 분위기와 배우의 연기로 볼 수 있습니다. 신인 감독 답지 않게 편집도 좋았어요. 문제가 있다면 이상하게 늘어지는 후반부와 떨어지는 개연성입니다. 일단 연규가 치건을 찾아가는 동안 그 많은 조직원들은 어디서 뭘 하는지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었으며, 치건과 연규가 후반부에 왜 싸우는지도 왜 연규가 치건을 죽였어야만 했는지도 알 수가 없고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원래 개연성이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되지만 않는다면 신경을 별로 안 쓰는 편인데 이 영화는 방해가 되었었습니다. 심의 관련하여 논란이 좀 있는 편이기도 했는데요. 요즘 그런 영화들이 한 두 편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을 잡을 필요는 있겠습니다.


어둡고 잔인한 인간의 본질적인 불행을 담은 두 쌍둥이를 그린 누아르 영화.


김창훈 감독의 <화란>이었습니다.




평점 3/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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