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이 아니오, 나는 괴물이로소이다
가끔 저는 제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나와 완벽히 일치하는 사람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어요. 친구를 위로할 때면 나 너 이해해라고 자주 말해주곤 했지만 사실 이해한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을지도 몰라요. 저도 다른 이에게 이해를 바라고 있겠지만 실은 서로를 이해함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게 아닐까요? 우리는 서로의 생 일부를 투과해 지나가는 이방인일뿐이니까요.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에게 이해를 바라는 까닭은 사회적 동물로서 어쩔 수 없이 욕망하게 되는 최소한의 공감과 존중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알 수 없는 괴물인 것입니다.
저는 지난주 이동진 평론가와 함께하는 메가박스 시네마 리플레이에 다녀왔습니다. <브로커>를 보고 조금 실망도 했었어서 <괴물>을 보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되어 볼 수 있었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단한 걸작입니다. 깜짝 놀랐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 요소와 깊은 주제가 맞물리며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흔히 일본 영화를 보면 찾아오는 잔잔하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가져다주는 감동과 일본 스릴러나 사회추리물을 보면 느껴지는 등골 서늘함 각각의 최고치가 아마 <괴물>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애정도 잘 나타났구요.
<괴물>의 구조는 톡특합니다. 5명의 주요인물이 있고 5명의 주요인물 각각의 시점이 나열됩니다. 학생 요리, 주인공의 엄마인 무기노 사오리, 주인공의 담임교사 호리, 학교의 교장, 주인공 무기노 미나토의 시점이 나열됩니다. 각각의 시점은 영화에서 일어난 사건의 극히 일부분을 보여줍니다. 단편처럼 짧은 요리와 교장의 시점을 제외하면 같은 시간대를 영화는 사오리, 호리, 미나토의 시점으로 세 번을 되짚어가죠.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의 시점, 한 사람의 이해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사건의 진실과 반전이 드러납니다. 영화를 보셨다면 아셨겠지만 관객은 그 과정에서 사오리와 호리에게 속을 수 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인간이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인간은 다른 인간을 얼마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 인간은 다른 인간을 이해한다고 얼마나 깊게 착각하고 있는지가 마음으로 다가옵니다. 이러한 영화의 구조를 라쇼몽이라고 합니다. 일본 영화의 제목을 그대로 따왔구요. <굿윌헌팅>의 두 주연배우이자 할리우드의 대표 절친 맷 데이먼과 벤 애플랙이 몇십년만에 협업한 영화로 큰 화제가 되었던 <라스트듀얼>에서 라쇼몽 구조를 활용했었습니다.
사오리는 아들을 가장 이해하지 못하면서 아들을 가장 사랑하는 인물입니다. 사오리의 시점은 스릴러를 연상케합니다. 미나토는 사오리가 운전하던 차에서 갑자기 뛰어내리거나 어두운 터널에서 홀로 괴물을 찾는 모습을 보이는 내면이 불안정한 아이로 묘사됩니다. 사오리는 호리가 아들을 폭행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다만, 영화 내 대부분의 어른이 그렇듯이 사오리도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을 일삼습니다. 교직원에게 폭언과 무례한 행동을 일삼고 교장에게는 죽은 손녀를 언급하고 호리 선생에게는 걸즈바 소문을 이용해 인신 공격을 합니다.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은 인간인지 묻는 아들의 무거운 질문에 돼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거나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면 하는 게 자신의 유일한 소원이라고 아들에게 말하는 장면을 보면 사오리는 본의아니게 아들에게 상당한 압박을 주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죠. 사오리는 남편의 불륜을 알아차라지 못했던 것으로 보아 애정관계나 심리이해에 상당히 둔감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미나토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합니다만.
호리는 미나토와 요리의 또다른 분신, 어른이 된 분신과 같은 인물입니다. 영화 내내 선한 주요인물들은 올바른 판단을 위해 노력하지만 편견에 어쩔 수 없이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호리와 사오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리는 싱글맘 밑에서 자랐음에도 싱글맘 밑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미나토를 편견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미나토가 요리를 괴롭혔을 것이라고 짐작해버리죠. 홀로 자살할 생각을 하며 한쪽 신발이 벗겨진 채 옥상에 서 있던 호리는 미나토의 관악기 소리에 투신할 생각을 접습니다. 한쪽 신발이 벗겨진 호리의 모습은 한쪽씩 신발을 나눠신고 걷던 요리와 미나토의 모습을, 동시에 걸스바에 화재를 일으키고 강가에서 타오르는 건물을 바라보는 요리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연출되어 있습니다. 성격도 자기비하적이고 소심하여 미나토와 요리를 떠올리게 하죠. 후반부 산사태가 일어나자 폐기차 아래에서 목숨을 걸고 요리와 미나토를 찾는 호리의 모습은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자신의 엄마처럼 싱글맘이었던 여성과 함께 찾아 헤메이고 있습니다. 그는 미나토를 구원하려 하고 있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어린 시절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미나토와 요리는 동성애자입니다. 미나토는 남들과 다른 스스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요리는 남들과 다른 스스로의 모습을 비하적으로 바라봅니다. 폭력적인 아버지의 영향이겠죠. 둘이 꿈꾸는 이상향은 '빅 크런치'라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아직 어린아이인 둘은 세상이 멸망하고 태초 이전으로 되돌아가 정상적인 인간의 뇌를 가지고 태어날, 이성애자인 자신들을 꿈꿉니다. 돼지의 뇌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아이들에게는 동성애자를, 사오리와 호리에게는 남들과 다른 폐쇄적인 아이들을 떠올리게 했지만 결론적으로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결국 돼지 뇌를 가진 사람은 실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반전부분이 영화의 결말이 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영화 초반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돼지의 뇌를 한 아이들은 관객의 눈에 비정상적인 괴물로 보입니다. 결말부 진흙을 뒤집어쓴 돼지와 같은 몰골을 한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소리를 지르며 괴물처럼 뛰어다니는 그들을, 관객들은 마침내 역설적이게도 인간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영화의 주제는 다양하게 나누어질 수 있겠습니다. 소문과 편견에 사로잡힌 어른들에 비판,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괴물을 만들어낸 이들에 대한 비판, 사랑에 휩싸여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의 본성이라고도 혹자는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성장하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영화의 주제의식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해요. 결말부 결국 '빅 크런치'가 찾아오지만 두 아이들은 이성애자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요리와 미나토는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괴물이었던 두 아이들이 스스로를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그 감동적인 장면이 저는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어떤 시간에서든 어떤 장소에서든 행복할 수 있다고 외치는 듯한 장면이죠.
마지막으로 교장은 영화 내에 정보가 거의 주어지지 않고, 성향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교장이 손녀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꾸준히 암시됩니다. 미나토의 정체성을 인정해준 유일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해석에 따라 선역으로도 악역으로도 보일 수 있는 인물인데요. 저는 교장이 사오리와 비슷한 인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사오리가 아들 미나토를 사랑하여 벌인 일들이 영화에 그려졌다면 영화 내에 교장이 한 악행들은 학교를 사랑하여 벌인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사오리가 교장의 미온적인 대처를 놓고 공허한 눈을 바라보며 교장에게 당신이 진정 사람인지 묻자 교장은 조용히 자신은 인간이라고 대답하는데요. 어쩌면 관객이 미나토를 잘못 판단했듯이 신비롭고 이해할 수 없는 교장의 악행과 행동들에도 자기만의 행동 논리가 있음을,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임을 부각하려 했을수도 있습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괴한 초반부를 지나 따듯하기만한 후반부를 향해, 동성애와 다름을 독창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은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입니다.
평점 4/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