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야간상영 09화

레오 카락스, <아네트>

살인 사건: 예술가의 심연

by 도연호

예술가들이 대개 그렇듯 영화감독들 중에서도 잘 차려입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긴팔셔츠나 후줄근한 스트릿 패션, 아니면 아메카지룩을 선호해서 매일매일을 날다람쥐 분장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데요. 레오 카락스 감독은 서부극에 나올만한 강렬한 인상과 가죽자켓, 짧은 콧수염을 가진 그야말로 예술가의 전형이라 할 만한 사람입니다. 아름답고 철학적인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기도 하죠. <아네트>는 레오 카락스 감독의 가장 최신작이자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입니다. 개인적인 영화인만큼 영화 자체만으로는 완벽히 이해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워요. <홀리 모터스>가 레오 카락스 감독의 대표작인데요. 저는 홍대병이 조금 있는터라 비교적 최신작이고 제 취향에 가까웠던 <아네트>를 리뷰하려고 합니다.




헨리 맥헨리 = 레오 카락스?


먼저 영화의 오프닝에 대해 다루어보겠습니다. 영화의 오프닝은 감독인 레오 카락스가 스스로의 딸과 함께 스튜디오의 밴드를 지켜보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감독이 제4의벽을 뚫고 연극처럼 막을 올릴 것을 알립니다. 그리고 등장인물이 한 명, 한 명 등장합니다. 영화의 오프닝은 난해한 영화에서 우리가 붙잡고 가야할 2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는데요. 하나는 영화가 감독과 감독의 딸에 관한 이야기이며 두번째는 영화가 노래로만 채워진 뮤지컬 드라마 영화라는 것입니다.


주인공인 헨리 맥헨리는 잘나가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입니다. 그는 모두를 조롱하는 거만한 컨셉으로 유명세를 떨칩니다. 그가 아내 앤과 성행위를 할 때 그는 앤의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행위를 반복합니다. 그러고는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아내의 발바닥을 간지럽히다 아내를 죽였다는 내용의 코미디를 내놓습니다. 일전에 아내의 오페라에서 아내가 관객에게 아부하듯 인사한다며 조롱한 내용과 일맥상통하죠. 하지만 그는 딸을 낳게 되고, 아내가 죽은 이후에는 딸에게 집중합니다. 이는 뭐랄까, 감독인 레오 카락스를 겹쳐보이게 합니다. 레오 카락스가 내놓은 영화 <아네트>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폭력성과 딸의 치부를 드러내놓은 이야기입니다. 말하자면 카락스는 헨리처럼 자신의 치부를 관객에게 팔고 있습니다. 한편 공연에서 아내와의 성생활을 판 헨리는 동시에 관객에게 아부하는 행위를 조롱하는 이중적인 행위를 보입니다. 어쩌면 이 또한 카락스의 내부를 드러낸 모습일 수도 있겠습니다.


특히 아내와 아내의 외도자, 지휘자를 죽이고 감옥에 수감된 헨리는 결말에서 면회실의 구석에서 얼굴을 가리고 보지말아달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마치 레오 카락스가 자신의 치부를 보지 말아달라며 관객에게 사정하는 것처럼요. 이때 콧수염을 기른 배우 애덤 드라이버의 외모조차 카락스와 상당부분 유사합니다. 거만하고 폭력적이며 자기파괴적인 헨리의 모습이 감독의 자화상이며 이를 감독이 지켜보고있으며 상업화했다라는 일련의 사실은 관객에게 기괴함과 우울함, 섬뜩함을 가져다줍니다. 레오 카락스의 예술은 스스로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는 아름다움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를 다른 영화 감독과 차별화하는 요소인 것이죠.


영화 외적인 요소를 약간 덧붙이자면 레오 카락스 감독은 2000년대 들어 부인과 사별했습니다. 딸과 남은 그는 개인적 부침을 겪고 아내와 딸의 이야기를 첨가한 <홀리 모터스>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라섰습니다. 여기까지가 난해한 영화의 내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확장하는 데에 필요한 기본적인 배경인 것 같습니다.




작가주의와 아네트


영화에 관련된 개념 가운데 작가주의 영화라는 것이 있는데요. 말하자면 감독의 철학과 개성이 영화에 짙게 반영되어 영화가 예술에 가까워졌을 때 우리는 그러한 영화를 작가주의 영화라고 합니다. 물론 작가주의 영화란 없으며 작가주의는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의견도 꽤나 많습니다. 작가주의 영화를 만드는 유명한 감독으로는 홍상수가 있습니다. <아네트>도 작가주의 영화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업 영화와는 달리 예술의 창작자를 이해하는 행위가 작품의 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이겠죠.


앞서 말했듯이 <아네트>에서는 감독이 딸과 자신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드러납니다. 헨리는 아내앤을 죽이고 아네트의 지휘자마저 죽입니다. 아네트는 이를 목격하고 마지막 대형공연에서 아빠가 사람을 죽인다는 섬뜩한 이야기를 합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큰 충격을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때 아네트는 봉제인형이라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아네트는 사람이 아니라 봉제인형의 형태로 그려집니다. 아버지 헨리는 아내를 닮아 노래를 잘 부르는 그녀를 이용합니다. 돈을 위해서요. 죄를 짓고 감옥에 수감된 헨리가 딸에게 죄를 비는 순간 아네트는 사람이 됩니다. 레오 카락스는 아내의 사별과 더불어 딸에게 상당한 죄책감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결말부 헨리는 자신의 살인에 대해 용서를 빌지 않습니다. 딸을 이용한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빌고 있지요. 동시에 아내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딸에게 반복해 이야기하고 납득해주기를 원합니다. 딸은 앤과 헨리가 자신을 이용했다고 분노합니다. 레오 카락스에게 이 영화는 관객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딸을 위한 반성문인 셈이죠.




숲과 피


그럼에도 영화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영화의 연극적인 배경과 짙은 녹색, 새빨간 피의 색으로 채워진 색감은 미적인 쾌감을 선사합니다. 독특한 영화의 형식과 음악 또한 훌륭합니다. 블랙유머와 겹쳐있는 웅장한 음악은 오페라 가수인 앤과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의 매력을 스크린 내에 그대로 반영한 듯 합니다. 상징적인 요소도 꽤나 있습니다. 독사과를 먹는 앤에 겹쳐보이는 헨리가 폭력적인 남자라 주장하는 6인의 여성들은 앤이 헨리에게 살해당할 것을 암시합니다. 앤이 죽고 아네트와 함께 보트에서 노를 저어가는 선장 헨리는 아내와 사별하고 딸과 남은 가장이 된 카락스 감독과 겹칩니다.


간지럽히는 행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는데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주관적인 해석을 덧붙이자면 자기반영성을 담은 영화를 보고 즐기는 관객들이 간지럼당해 강제로 웃는 앤에 대비되는 모양새 같습니다. 개인적인 비극을 활용해 관객을 억지로 간지럽히는 카락스 감독과 웃을 수 밖에 없는 관객들을 묘하게 떠오르게 하더라구요. 아무튼 저도 제 나름대로 해석해보았지만 사실 완전히 이해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영화라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를 보고 어떤 해석을 하시더라도 정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분명한 것은 보고 후회하지는 않으실 영화라는 겁니다.


감독의 심연을 내려다본 영화,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창의적인 어두운 블랙유머의 익살극과 웅장한 오페라를 겹쳐놓은 영화.


레오 카락스의 <아네트>였습니다.




평점 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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