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추락, 외로움과 화려함의 냉정한 일체화
<소셜 네트워크>는 제가 개인적으로 애착이 큰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보고 영화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었어요. 이동진 평론가 님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처음 보고 신선한 충격과 함께 영화를 새로운 기준으로 보게 되었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것과 비슷한 류의 충격이었을수도 있겠습니다.다만 충격은 놀랍도록 사소하고 어쩌면 황당한 포인트에서 찾아왔습니다. 이전에 제가 좋아한 영화들은 <어벤져스>, <미션 임파서블>처럼 장점이 명확한 영화들이었어요. 이 영화들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제가 그 영화들에 끌리는 이유를 설명하기가 쉬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소셜 네크워크>는 달랐어요. 이해가 안 가지도 않는데 재미없는 줄거리와 평범하고 어쩌면 이기적인 주연들, 전기 영화라는 장르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는데도 빠져들었습니다. 이게 왜 재미있지? 이게 왜 깊을까? 스쳐가는 열등감과 외로움, 따뜻함이 뒤섞인 감동도 희열도 아닌 오묘한 감정들이 먼저 찾아오고 다음으로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끝에 결과를 이 글에 담았습니다.
핀처 감독이 초기에 사용하던 화려한 편집과 연출, <조디악>을 기점으로 한 미니멀하고 깔끔한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편집은 <소셜 네트워크>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점들입니다. 이 영화가 편집의 마술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유죠. 다만 많은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의 각본이 뛰어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표현입니다. 만약 각본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봉준호 감독이 선정한 2010년대 최고의 영화 10편에 들지도 못했겠죠. 각본이 인물의 개성과 편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떨어질 뿐이라 사료됩니다. 앤드류 가필드, 제시 아이젠버그의 연기력 또한 흠잡을 데 없습니다. 저는 두 배우의 최고의 연기로 모두 이 영화를 뽑고 싶어요. 물론 앤드류 가필드는 <틱, 틱 붐>에서도 놀라운 연기를 보여줍니다만. 결말은 앞서 설명했듯이 멍하고 소름이 끼칩니다. 저는 이 영화를 6번 봤는데 보면 볼수록 성공의 기쁨과 화려함, 그 이면의 사람을 잃은 슬픔을 심도 깊고 이해하기 쉽게 세심히 살펴낸 영화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야기할 쟁점도 많습니다.
주인공 마크 저커버그와 왈도 세브린, 조연 숀 파커와 윙클보스 형제는 개성이 뚜렷합니다. 마크 저커버그는사회생활에 서툰 오만한 천재로 대표되는 몰개성한 인물로 보입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그가 인간 관계를 다루지 못하는 천재라고 착각하기 쉽죠. 에리카와의 대화에서 에리카가 꺼내는 대화 주제를 죄다 무시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일삼는 모습을 보면 말입니다. 왈도가 피닉스 클럽에 들어가자 클럽은 유대인 인종이 필요할 뿐이라며 무시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우리는 마크가 인간 관계에 매우 민감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피닉스 클럽을 동경하고, 페이스북에 연애 상태 기능을 제안합니다.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때도, 술을 동시에 마셔가며 코딩을 하는 면접을 보며 사람들의 열광을 이끌어내죠. 캘리포니아에서는 친구들과 파티를 하는 모습이 주기적으로 등장합니다. 에리카와의 무례한 대화 속에서도 그는 너는 대화 주제를 바꾸고 싶어하는 것 같아라며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이렇듯 그가 여타 소위 오만한 천재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그는 인간에게 지독히 사랑받고 싶어하고 그럴만한 능력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는 왜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할까요? 이는 그의 상처 받기 싫어하는 민감한 성격과 밑바탕에 깔려 있는 열등감 때문이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윙클보스 형제의 제안을 쉽게 거절할 수 있었음에도 형제를 골탕먹인 그의 행동은 치밀한 계산이 아니라 에리카가 언급한 조정 선수이고 본인들의 클럽의 1층만 들여보내주며 차별한 점이 열등감을 자극했기 때문이죠. 왈도가 계좌를 동결하고 마크가 스스로의 입으로 정확히 언급하는데 너는 에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나는 못 돌아가라며 드물게 흥분하여 가장 친한 친구에게 화를 내죠. 마지막에는 왈도가 그토록 듣기를 원하고 자주 지적했듯이 '우리'가 해냈다고 조용히 미소지으며 말해줍니다. 마크의 목표와 감정을 드러내는 몇 안 되는 장면입니다. 마크가 강하게 동경하며 열등감을 느끼는 세련됨을 가지고 본인의 천재성을 이해해준 유일한 인물인 숀에게 저항없이 끌린 것도 동일한 맥락입니다.
모호성은 <소셜 네트워크>의 또다른 미학적 요소입니다. 관객은 영화 내내 마크의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합니다. 후반부는 왈도의 시점으로 전개되어 마크의 상황조차 모르죠. 이러한 연출은 마크라는 어린 억만장자의 외로움을 부각시키며 해석의 여지를 넓혀줍니다. 마크가 왈도의 닭 학대 사건과 숀의 마약 사건에 관여했는지, 왈도의 페이스북 지분율 조작에 얼마나 발을 들였는지가 모호합니다. 왈도에게는 배신하기 직전에 그답지 않게 따듯한 모습을 보였기에 그렇습니다. 마크는 왈도에게만은 유일하게 감정을 드러내며 내가 너의 유일한 친구였다는 말에 흔들리기도 하고, 자신의 노트북을 부수며 배신감에 몸서리치는 왈도의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배신당한 왈도에게 깐죽거리는 숀에게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굴 필요없었다며 강하게 지적합니다. 캘리포니아로 오라며 나름대로 끝까지 함께하려 노력합니다. 마지막에 에리카에게 친구 신청을 하고 멍하니 화면을 새로고침하는 최연소 억만장자는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애정을 갈구했는지 깨닫습니다. 관객의 입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신참 변호사가 지적한 것처럼, 그의 그동안의 노력은 그를 억만장자로 만들어주었지만 그의 인격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왈도는 마크와 대조되는 인물입니다. 기본적으로 사업 수완은 가지고 있지만 마크나 숀 같은 천재성은 없습니다. 관객은 그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모습, 친구인 마크를 믿고 큰 돈을 빌려주며 끝까지 존중하는 모습을 통해 그에게 감정이입합니다. 적들로 가득한 건물을 가로질러 마크에게 욕설을 날리는 장면은 마음 아프면서 통쾌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마크와 왈도, 윙클보스 형제의 소송과 과거 페이스북 초기 시점을 번갈아가며 편집해 보여주는데요. 몇몇 장면은 대사로 세련되게 매치됩니다. 왈도의 욕설는 영화의 말미를 장식하는 신참 변호사의 대사와 연결되는데요. 왈도가 마크를 존중하고 믿었지만 끝까지 마크라는 인간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말해주는 요소입니다. 왈도는 작중 내내 감정적으로 행동합니다. 숀이 회사에 도움을 줌에도 단순히 숀이 싫다는 감정에 호소하고, 캘리포니아에서 숀이 더 좋은 투자자를 찾아도 CFO의 권한은 나에게 있다며 뉴욕을 고수하죠. 마크가 피닉스 회원이 되었을 때 모욕적인 언사를 해도 따지거나 감정을 파악하려 들지 않고 조용히 마음에 담아둡니다. 그러고는 마크에게 배신당하고 묵혀놓았던 감정을 표출합니다.
두 주인공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를 생각하지만 단 한번도 소통하지 못합니다. 영화 제목이 소셜 네트워크임을 고려하면 아이러니하죠. 에리카에 이어 왈도를 잃은 마크는 결국 경제적으로 성공했지만 인간으로서는 실패합니다. 그러니까 <소셜 네트워크>는 마크의 성공담이자 실패담입니다. 여타 영화와는 차별화되는 이 모순적인 구조와 악역의 부재, 시간 순서를 뒤바꾸는 건조한 편집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결말부로 달려간다는 점을 파악하신다면 왜 <소셜 네트워크>가 위대한 영화인지 알 수 있습니다.
숀은 왈도와는 반대로 마크를 생각해 주지는 않지만 마크라는 인간을 이해합니다. 그는 화려한 플레이보이, 천재, 언변가이면서 속물입니다. 마크와의 첫 만남에서 한 송어 이야기와 클럽에서 금문교로 뛰어든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 창립자 이야기는 소셜 네트워크의 내용을 압축한 우화인 동시에 그가 얼마나 사람에 따라 알맞은 대화 주제를 정하는지 알려주는 디테일입니다. 클럽에서 끼고 놀던 여자들이 화장실 가는 장면도 감독이 허투루 찍은 것이 아닌데요. 숀이 화장실 직전까지 200개의 학교에 페이스북을 확장하는 애기를 하다가 화장실 가자마자 마크의 속을 건드리는 빅토리아 시크릿 이야기를 하다가 여자들이 돌아오자 자연스럽게 다시 200개의 학교 이야기를 하면서 여자들이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그의 언변이 눈에 띕니다. 그러고는 그 여자들이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이라고 마크에게 넌지시 언급하죠. 동시에 옆에서 깐족거리며 직접적인 싸움은 남에게 떠넘기는 얄미운 속물이기도 합니다. 공허함도 있어 이를 여성과의 잠자리나 마약으로 채우는데 영화 말미에 결국 걸려 곤욕을 치릅니다. 마크는 숀이 했던 말을 적어 인쇄한 명함을 씁쓸히 내려놓으며 향후 둘의 인간 관계도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영화는 암시합니다. 여담으로 왈도와의 대조도 아이러니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연출되는데요. 왈도는 숀과 만나기 전 숀에 대한 뉴스를 샅샅이 뒤졌고 숀은 하나도 알아보지 않았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왈도에 관한 닭 학대 뉴스는 가짜에 가까웠고, 숀의 마약과 미성년자 성관계 뉴스는 사실이었습니다.
윙클보스 형제도 캐릭터가 독특한데 스스로 하버드의 신사임을 자처하며 꽉 막힌 답답한 면모를 지니고 있고, 신사답게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특권을 마음대로 행사하며, 그것이 특권임을 인지조차 못하는 입체적인 인물들입니다. 마크가 형제를 농락하자 다짜고짜 하버드 교칙을 뒤지는 장면, 아버지의 인맥을 이용해 총장과 약속을 잡거나 아버지의 변호사들로 마크를 고소하는 장면이 각각을 잘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들은 순탄했던 그들의 삶과는 별개로 조정 경주에서도, 마크와의 분쟁에서도 승리하지 못합니다. 사회의 치열한 경쟁에서 온실 속 화초로 살아온 엘리트들은 도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상 깊은 장면도 많아요. 영화의 롱테이크 대화 오프닝은 마크의 성격과 영화의 분위기를 삽시간에 이끌어냅니다. 유명한 조정 장면은 감독 편집술의 정수를 보여주죠. 영화 편집 강의에서도 자주 등장할 정도입니다. 왈도가 노트북을 부수는 클라이막스. 제시 아이젠버그가 무심히 자신의 컴퓨터 화면을 새로고침하고 비틀즈의 노래가 깔리는 엔딩도 대단합니다. 엔딩에서는 분명히 일차원적인 슬픔과 감동보다 복잡하고 오묘한 감정이 들이치는 경험을 하실 것이라 장담할게요. 아닐 수도 있지만요. 영화의 키워드를 정하자면 몰입과 모순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모순은 앞서 언급했고 몰입은 파티의 한가운데서 코드를 짜는 프로그래머에게 숀과 마크가 언급한 단어인데 마지막으로는 왈도의 노트북을 부수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페이스북에, 명성에, 돈에 몰입하느라 정작 페이스북을 시작한 동기였던 에리카와 파트너 왈도를 놓친 마크의 상황과 심리를 잘 드러내주는 단어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장면을 매끄럽게 연결하며 마크와 왈도가 갈라서게 된 연유를 중심으로 잡고 움직여 영화의 흥미를 더해주는 연출. 대사와 등장인물들로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마크의 침몰을 암시하는 숀의 우화. 숀의 미성년자 관계를 넌지시 지적하는 마크. 클럽에서 에리카에 대한 애정을 내비치는 마크처럼 영화의 소소한 복선들도 마음에 듭니다.
수미상관적인 연출이 있어요. 에리카와 이별하고 쓸쓸히 페이스메쉬 코드를 짜는 마크와 동경하는 피닉스 클럽의 파티가 교차 편집되는 첫 장면과 사용자 1억 명 돌파 페이스북 기념 파티를 뒤로 하고 혼자 회사에서 컴퓨터를 만지는 마크의 종반부 장면이 대조됩니다. 위치가 변했음에도 여전히 외로운 마크를 보여주는 오묘한 매치입니다. 마크는 두 장면에서 본인이 잃은 소중한 두 사람 에리카와 왈도를 각각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무거운 주제를 다룹니다만 스카프를 태우는 여자친구를 왈도가 속옷 바람으로 미쳤냐고 소리치며 소화기를 들고 달려가고 동시에 마크와 전화하는 장면과 윙클보스 형제가 힘을 못 이기고 문손잡이를 뽑아버리는 장면처럼 유머러스한 장면과 재치 있는 대사로 채워져 가볍게 볼 수 있는 강점도 있습니다.
성공의 공허함과 인간의 열등감 우리가 살아가면서 갈구하는 애정과 상처 가운데 위치한 외로운 천재를 냉철하게 하지만 매력적으로 담아낸 마크 저커버그의 전기 영화.
데이비드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였습니다.
평점 5/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