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야간상영 07화

샤프디 형제, <언컷 젬스>

저주 받은 보석, 저주 받은 인간

by 도연호

여러분은 좋아하시는 감독이 있나요. 저는 웨스 앤더슨 감독과 데이비드 핀처 감독을 좋아하는데요. 앤더슨과 핀처 감독의 영화를 보면 상상력과 밀도가 장난이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니 상상력의 산물로 여겨졌던 몇몇 장면들이 실은 다른 매체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가 얼마 전에 개봉했었는데요. 저는 이 영화가 <패터슨>이라는 영화와 유사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약간의 조사를 거쳤는데, 그 결과 <패터슨>의 자무쉬 감독이 <퍼펙트 데이즈>의 벤더스 감독과 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대부>로 유명한 코폴라 감독 또한 수많은 오마주로 영화를 채우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처럼 감독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도 하고, 다른 매체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언컷 젬스>를 만든 샤프디 형제는 미국에서 무려 스콜세지 감독의 후계자로 일컬어지는 유망한 감독입니다. 봉준호와 더불어 유이하죠. 사실 저는 봉준호의 영화와는 아직 샤프디 형제의 영화가 완성도 면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만큼 샤프디 형제의 영화는 스콜세지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감상 포인트


<언컷 젬스>는 끝없이 폭주하는 증기기관차같은 영화입니다. 영화는 무미건조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주인공을 궁지에 몰아넣고 불쾌한 조명과 배경 음악을 쓰는데요. 자신감과 허세로 가득한 주인공의 감정과는 반대로 관객은 영화를 보며 점점 고조되는 긴장감, 불안함을 생생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출 방식이나 중요한 등장인물의 죽음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은 마틴 스콜세지와 유사합니다. <언컷 젬스>는 할리우드의 중견 배우 애덤 샌들러가 제2의 전성기를 맞도록 도와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농구선수 가넷, 더 위켄드도 각각 스스로의 역할로 특별 출연하는데, 연기를 굉장히 잘하더군요. 이들을 보는 것도 영화를 감상하는데 있어 소소한 재미가 될 수 있겠습니다.


인상 깊은 장면을 꼽자면 먼저 오프닝 장면을 들 수 있어요. 다리가 박살난 흑인 광부의 처절한 비명과 신음 그리고 이를 평온하게 바라보는 다른 광부들을 비추는 장면이죠. 다른 두 광부가 들어가 '언컷 젬스'를 채굴하고 황홀하게 빛나는 보석의 단면이 주인공 하워드의 대장으로 이어지는 연출이 새로웠습니다. 이 장면은 잔인할 정도의 불행을 겪는 주인공도 실은 다른 이의 불행의 원천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조명하면서 영화의 엔딩과 조응합니다. 영화의 엔딩은 반대로 죽은 하워드의 안면에 난 총알 자국이 빛나는 블랙 오팔 보석의 단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저는 하워드의 대장내시경 검사 장면, 하워드가 빚을 진 장면을 보며 하워드가 대장암 또는 빚 때문에 죽지 않을까 예상했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샤프디 형제가 플롯를 가공되지 않은 보석으로 보고 하워드가 빚을 다 갚고 도박에 성공하며 병도 없었지만 기막힌 불운으로 죽게 되는 결말을 가공된 블랙 오팔로 비유하며 관객을 농락한 느낌입니다.




하워드는 어떻게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가


하워드는 여러모로 좋은 캐릭터입니다. 애덤 샌들러의 연기도 하워드를 이끌어가는데 한 몫하구요. 하워드는 어른의 몸에 갇힌 아이입니다.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아내에게 로맨틱한 말을 던집니다. 도박 중독에 장물 아비로 빚을 돌려막기하면서도 아이에게는 따듯합니다. 불륜녀 줄리아와 만날 때는 아이처럼 옷장에 숨어들어 놀래켜 주기도 합니다. 관객은 혀를 끌끌 차지는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는데, 작중의 여러 여자들과 심지어 하워드에게 거액의 빚을 받아내야 하는 동서 아르노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는 심각한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도박 중독입니다. 그는 스스로의 감각에 근거 없는 자신감을 지니고 있고, 과감히 실행해 버리는 행동력과 무모함을 가졌어요. 그가 농구선수 가넷과 셀틱스에 초반에 올인했을 때, 블랙 오팔의 값어치와 가넷이 큰 돈을 투자할 것이라 믿고 경매장에서 돈을 올려 불렀을 때 드러나죠. 이때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도박은 모두 표면적으로 대형 성공을 거둔다는 점입니다. 이게 왜, 싶은 상황이 반복되는데요. 결국 행운들은 동서 아르노의 제지로 모두 무산됩니다. 궁지에 몰린 하워드는 불안과 초조함을 허세로 감추다 불륜녀 줄리아 품에서 펑펑 울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냅니다.


하워드가 가넷에게 블랙 오팔을 팔아 번 돈을 다시 몽땅 셀틱스에 올인할 때, 빚쟁이들이 권총을 들고 들어오자 관객들은 셀틱스의 승패 유무가 하워드의 목숨이 달아날지 아닐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죠. 그러면서도 영화가 치밀하게 쌓아온 불안과 불운을 터트리며 셀틱스가 지고 하워드가 죽을 것이라고 예측했어요. 하지만 셀틱스는 승리를 거두고, 하워드는 포효합니다. 한순간에 인생 역전을 거둔 하워드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습니다. 하워드와 아르노에게 시달려 왔던 아르노의 끄나풀 필이 순식간에 하워드와 아르노를 죽여버립니다. 하워드의 운명은 그의 행동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던 셈입니다.


결말부가 인상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를 꼭 밝히고 싶은데, 관객이 예측하기 어렵고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결말 하나로 영화의 해석이 모두 바뀌기 때문입니다. 만약 셀틱스가 지고 하워드가 죽었다면 영화는 하워드의 불운을 다룬 영화입니다. 하지만 결말에 하워드에게는 운이 따라 주었음에도 결과는 죽음이었어요. 아들에게 불륜을 들킨 불운, 농구 선수 가넷이 오팔을 안 돌려준 불운, 아르노가 성공한 도박을 취소시켜버린 불운, 줄리아가 더 위켄드와 바람 피고 있다고 오해한 불운. 불운들은 하워드 본인의 무모함, 우유부단함, 부도덕함이 만들어낸 참사이지 마법처럼 불운이 찾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영화는 하워드의 죽음이 명확한 원인에 따른 결과임을 하워드의 불운에 가린 그의 행동과 성격적 결함에 대해 잊고 있던 관객에게 주지시킵니다.




블랙 오팔


그렇다면 영화의 핵심인 블랙 오팔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개인적인 해석인데요, 블랙 오팔은 광신 혹은 하워드를 상징합니다. 불운의 원천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죠. 가넷은 오팔이 소유물이며, 오팔의 유무가 경기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믿죠. 하워드는 오팔이 높은 값어치를 지니며, 오팔로 빚을 갚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전문 감정사가 평가한 오팔의 값어치는 하워드의 생각보다 낮았는데, 오팔의 값어치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이는 사업 수완과 감을 지녔지만 본인의 미성숙함과 무모함으로 재능을 만개하지 못한 하워드를 비유하죠. 하워드 안면의 총알 자국이 검은 오팔로 우주로 점차 확장하는 마지막 장면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불운의 원천이라고 보는 입장은 평면적인 해석이구요.


적절한 음향, 불쾌하고 단조로운 화면, 매력적인 인물,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각본. 관객의 신경을 곤두세우며, 철학적이고 해석할 거리가 많은 영화.


샤프디 형제의 <언컷 젬스>였습니다.




평점 3/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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