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야간상영 06화

데이비드 러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유치, 치유, 새살, 햇살

by 도연호

여러분은 로맨틱 코미디 좋아하시나요? 저는 로맨스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요. 저는 MBTI가 INFP인데요. 몇몇 INFP 친구들은 제가 이 이야기를 하면 너는 INFP 호소인에 가깝다고 친절하게 욕해주곤 한답니다. 사실 저도 제 MBTI가 마음에 안 들어서 몇 번이고 다시 해보았지만 거짓말처럼 똑같이 나왔습니다. 분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가 없지요. 아무튼 가짜 INFP인 저도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몇 개가 있어요. 많은 분들은 <이터널 선샤인>이나 <어바웃 타임>을 인생 로맨틱 영화로 꼽으실 것 같아요. 저도 이 두 영화를 좋아하지만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도 앞의 두 영화에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두 주연배우 데이비드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도 상당하고요. 특히 러셀 감독은 잘 알려진 끔찍한 인성과는 별개로 배우들의 연기력을 뽑아내는 능력이 상당한데요. 이 영화에서는 제니퍼 로렌스의 대단한 연기력을 감상하실 수가 있어요. 저는 몇몇 장면에서는 여자 디카프리오 같은 느낌도 받았습니다.




화성에서 온 팻, 금성에서 온 티파니


남자주인공 팻과 여자주인공 티파니는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먹구름 아래에서 빠져나오려 애쓰는 인물들이죠. 티파니는 남편을 잃고 헤픈 성생활을 즐기고 팻은 아내와의 외도를 겪고 아예 정신병원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주연들의 비참한 상황과는 전혀 반대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냈어요. 영화를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대사량이 상당히 많습니다. 장면 전환도 많아요. 흔히 스크류볼 코미디라고 불리는 우스꽝스럽고 온정적인 장르를 사용해 따뜻한 시선으로 인물들을 바라봅니다. 이런 어두운 각본과 밝은 연출 방식의 대조가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이 영화와 다른 흔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와의 차이점 같아요. 마치 <버드맨>이 블랙 코미디 장르와 어울리지 않는 롱테이크 기법을 사용해 크게 성공한 것처럼요.


팻과 티파니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음을 영화는 둘의 대사와 시점숏, 클로즈업을 통해 드러냅니다. 특히 대사가 일상적인 대화와 팻과 티파니가 가지고 있는 상처와는 상관 없거나 이를 저속하게 후벼파는 농담으로 채워져 있음에도 이상하게 둘의 서로를 향한 사랑과 위로, 이해도 함께 담겨있어요. 주연인물뿐만 아니라 팻의 부모님, 티파니의 가족이 팻과 티파니를 각각 대하는 방식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결말은 뻔하고 관객 모두가 예상 가능한 결말로 흘러가지만 장면, 장면이 주는 마음을 따뜻하게 간질이는 쾌감이 대단해요. 그리고 코미디 영화로만 봐도 훌륭한 것이 정말 웃깁니다. 숨 쉬듯이 무례한 두 주연의 감칠맛 나는 대화와 연기합, 팻의 가족들과의 에피소드들, 결말에서 10점 만점에 5점을 받고 괴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주연들과 어이없어하는 심사위원의 표정까지 다 기억이 나요.


특히 제가 가장 감탄했고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시퀀스가 있어요. 팻이 아내와의 결혼식 녹화본을 찾아 새벽에 집을 뒤지는 부분입니다. 팻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보이고 그가 분노를 쏟아내며 집 안을 소란스럽게 하자 바깥의 이웃들이 깨어 집집마다 불이 반짝하고 켜지는 장면을 교차편집한 시퀀스에요. 팻이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린 이후부터는 아내의 외도 장면도 겹쳐져 나옵니다. 이때 아내를 무심코 때린 아들 팻의 얼굴을 마운트 자세로 두들겨 패는 팻의 아빠에게 깔려 엉엉 우는 팻의 모습이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펐어요. 이렇게 복잡한 감정을 억지스럽지 않게 전달해주는 영화가 있구나, 인상 깊었습니다.




여담


정신과 의사이시거나 정신 의학에 조예가 있으신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다 깊게 즐기고 두 주연의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행동들 뒤에 숨은 심리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정신질환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만약 이 영화 속의 정신 질환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유튜브에 영상이 많더라구요. 한번 찾아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이야기하자면 중간 부분에 팻이 결말이 이해가 안 간다며 창문 밖으로 집어던진 책은 어니스트 해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인데요. 허무주의적인 결말을 가지고 있어요. 팻처럼 주인공은 마지막에 아내를 잃구요. 팻이 끝내 정신병을 이겨내고 티파니와 이어지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결말이 팻이 이 소설의 결말을 싫어하는 장면과 묘하게 일맥상통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장점은 영화를 깊게 좋아하시는 시네필도, 가볍게 즐기시는 관객들도 좋아할 만할 영화라는 것입니다.호불호가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웬만하면 인간의 광기와 심리를 다룬 영화들로 브런치북을 채우고 싶어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조금 어렵거나 무거운 영화들을 많이 리뷰하게 되었는데, 이 영화는 가볍게 보기에도 좋은 영화입니다.


제목 그대로 먹구름에 갇힌 인물들을 구름 틈을 통과하는 햇살의 시선으로 따뜻하게 조명하는 독특한 코미디 영화.


데이비드 러셀 감독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입니다.




평점 3/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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