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의 바다, 부유하는 고래
오늘은 제 키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작하고 싶어요. 저는 171cm입니다. 실은 170cm인데, 170cm라고 하니 친구들이 169cm를 올려치기했다고 놀려대서 1cm 늘려보았어요. 몸무게는 58kg입니다. 원래 통통한 편이었는데 아픈 동안 빠진 체중이 돌아오지를 않는군요. 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음식을 못 먹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더 웨일>은 제가 아팠던 기간 동안 본 영화 가운데 특히 감정 이입을 깊게 한 영화에 해당해요. 그만큼 무언가 무너졌다고 느끼셨을 때나 스스로가 쓰러졌다고 느끼시는 순간에 보시기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더 웨일>은 죽어가는 272kg의 거구 찰리와 딸 엘리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는 감동적인 부분에만 집중하지는 않습니다. 찰리는 끔찍한 고통을 겪고 스스로를 파괴하기 위해 살을 찌웁니다. 회개하려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찰리는 10년이 넘도록 자신을 돌봐준 간호사 몰래 돈을 숨겼습니다. 동성애자인 제자와 불륜을 저질러 가정을 잃고 딸을 버렸습니다. 방에서 거구의 몸으로 홀로 자위하다 선교사 청년에게 걸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병원도 거부하고 스스로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하고 싶어 안달을 하는 찰리는 딸을 끔찍히 만나고 싶어합니다. 관객은 272kg의 역겨운 모습에 자위까지 하는 불쾌한 주인공에게 이상하게도 매력을 느끼게 되지요. 어쩌면 비극이 가져다 주는 동정심일지도 모릅니다. 극 중 딸 엘리를 제외한 등장인물들도 다른 것은 아니어서 선교사 청년, 죽은 연인의 여동생이자 간호사, 심지어 피자를 배달하는 배달부까지 그에게 동정을 보냅니다. 찰리가 버린 딸만 그에게 폭력적이고 잔인한 말을 던지는데, 찰리는 그를 보살펴주는 많은 사람과의 대화에서 주눅이 든 채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지만 딸과 대화하면서는 즐거워하고 심지어 웃기까지 합니다.
영화를 자세히 뜯어 생각해보면 찰리의 이런 심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찰리는 사람에 대해 아주 낙천적이기도 하지만 솔직함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솔직하게 대해주기를 바랍니다. 대학 온라인 에세이 수업을 하면서도 솔직한 글을 보고 싶다고 여러번 토로하는가 하면, 후반부에는 자신부터 솔직해지고 싶다며 살이 뒤룩뒤룩 찐 흉측한 자신의 모습을 웹캠으로 공개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이상한 마음의 울림을 느끼기도 했네요. 그런데 간호사는 찰리의 뒤에서 그는 어차피 죽을 것이라고 선교사에게 말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종교로 찰리를 구원하겠다던 청년 선교사는 실은 대마를 피워 가정에서 가출한 가짜 선교사로 찰리를 도움으로서 본인이 구원되기를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는 다릅니다. 자신을 버린 살 찐 아빠가 혐오스럽다고 솔직히 말합니다. 언뜻 평면적으로 보이는 영화는 구원받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구원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주된 쟁점은 종교와 구원으로 압축할 수 있겠습니다. 찰리의 애인은 종교에 사로잡힌 부모의 억압으로 죽음을 택했습니다. 청년 선교사는 종교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찰리를 설득합니다. 애인의 여동생은 찰리를 간호함으로서 오빠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해방되고자 합니다. 찰리는 사랑을 통해서 자신의 애인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상대의 구원을 바란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용해 구원받고자 했던 이들은 쓰디쓴 실패를 경험합니다. 정작 이들을 구원하는데 성공했던 것은 꾸밈없는 태도로 공격성을 드러내던 엘리였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로 다가옵니다.
찰리는 겉으로는 끊임없이 먹어대며 자신을 고문하고 스스로를 파괴하려고 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단 하나의 의미있는 일이라도 하고 싶다며 눈물 맻힌 채 고함을 지르거나 엘리의 앞에서 어떻게든 거구의 몸으로 일어나 걸으려는 모습으로 삶에 대한 의지를 드러냅니다. 죽을 때 듣고 싶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읽어달라 했던 글도 딸이 어렸을 때 썼던 글이었죠. 결국 찰리는 종교로부터가 아니라 딸이 낙천적이고 굳건히 자신을 믿어주는 아빠에게 되돌아오며 구원받습니다. 딸이 직접 읽어주는 글을 들으며 비척비척 몸을 일으킨 찰리는 아내와 딸과 함께 갔던 바다를 떠올립니다.
무너져 가는 한 인간에 대한 반종교적 구원을 담담한 시선으로 조명한 영화.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더 웨일>이었습니다.
평점 3/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