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야간상영 05화

데이비드 핀처, <파이트 클럽>

Where is my mind?

by 도연호

저는 가끔 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는 꿈을 꾸고는 합니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대로 감정을 드러낼 수 있었고 볼 꼴 못 볼 꼴 서로 다 본 가족 같은 친구들도 많았는데요. 크면 클수록 감정 표현을 주저하게 되더라구요. 이제 스무 살 겨우 넘었는데, 앞으로는 얼마나 더 참고 살아야 할 일이 많아질지 괜시리 걱정이 되기도 하는 밤이 있었습니다. 화내야 할 상황인데 삭히고 참은 날 밤이면 더 가슴이 답답하고 제 자신이 미워지기도 했어요. 내 주위 상황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내 성격이 바뀌었을까봐, 어느 틈에 내가 수동적인 사람으로 묶여있는 걸까봐 더 그랬습니다.




'컬트'


<파이트 클럽>은 현대인들의 억눌린 감정을 스타일리시하게 폭발시키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영화입니다. 저는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들을, 특히 절제된 데이비드 핀처의 후기 영화들을 좋아하는데요. 이 영화는 초기 핀처 감독 특유의 편집과 연출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에요. 마치 나 이런 연출도 할 수 있어하고 천재가 마음껏 뽐내는 느낌이랄까요. 이런 느낌이 분출하는 듯한 영화의 폭력성과도 맞물려 더 재미있었어요. 개봉 당시에는 혹평과 호평이 공존하는 다소 아쉬운 평가를 받았고 흥행성적도 부진했지만 현재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명작이자 컬트와 반항의 상징으로 추앙 받는 영화이기도 하죠. 어딘가 퇴폐적인 화면 색감도 돋보였어요. 보신 분들은 누구나 공감하시겠지만 결말도 뛰어난데요. 주인공의 정체가 드러나고 개연성 오류라고 느껴졌던 이해할 수 없는 등장인물의 행동들과 복선들이 짜 맞추어지며 전율이 일어요. 핀처 감독의 페르소나 브래드 피트와 <프라이멀 피어>로 눈부신 데뷔를 한 천의 얼굴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도 잘 어울립니다. 소심하며 수척하고 피곤해 보이는 회사원인 화자와 옷을 엉망으로 입고 다니며 반항적인 잘생긴 외모와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하는 타일러의 캐릭터가 극명히 대비되어 캐스팅을 잘했다고 느껴졌습니다.




복선


누군가에게는 결말이 어이없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실은 감독이 주의 깊게 넣어놓은 수많은 복선이 자리하고 있는데, 몇 가지만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아요. 오프닝에서 타일러에게 붙잡혀 있는 화자가 건물에 폭약이 설치되어 있다고 말하며 자신이 이 사실을 아는 이유는 타일러가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상한 말을 합니다. 화자가 정신분열하기 직전 복사기 옆, 고환암 환자 모임 중에 타일러가 짧게 화면에 나타나요. 또한 타일러는 비행기에서 화자가 추락과 파괴를 상상하던 중 등장하며 자기 파괴를 신조로 삼고 있어요. 심지어 여행 가방도 같구요. 타일러와 전화를 할 때 공중전화를 자세히 보면 발신 제한이라고 뜨기도 합니다. 타일러는 화자처럼 아버지와의 사이에 문제가 있으며, 화자의 부모님이 그랬듯 말라와는 성관계할 때 이외에는 말을 섞지 않아요. 영화 중반부에 회사 상사 앞에서 자기 자신을 마음껏 구타하던 화자는 타일러와의 싸움이 떠오른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죠.




Protagonist, Mala, Antagonist


감독의 전작 <세븐>과 같이 인물들은 개성적이고 매력적이에요. 특히 화자와 타일러의 관계는 영화의 줄기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화자는 겉보기에는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광기와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는 인물입니다. 동시에 이를 억제하고 싶어하는 이중적 속성도 지니고 있어요. 화자는 물질적 욕망의 분출을 활용하여 이를 억제하고자 하는데 이케아 가구를 중독적으로 사 모으는 화자의 모습과 초반 프랜차이즈 제품 음식물이 섞인 쓰레기통 내부를 감각적으로 조명한 초반부가 감독의 이러한 의도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는 충분하지 않아 화자는 불면증을 앓게 되고 결국 다른 이의 결핍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채우는 길을 선택하기에 이르러요.


말라는 화자가 스스로 분열하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화자는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과격한 언행을 일삼는 말라를 멀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라에게 반했고 결국 만족스럽지 않았던 본인의 모습을 다른 인격을 통해 채웁니다. 이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이혼이나 아버지와의 갈등 단조롭고 억압적인 본인의 일상 또한 기폭제로 작용하였을 수 있죠.


타일러는 스스로 말했듯 여러 면에서 화자의 안티 체제인 동시에 화자와 닮아있습니다. 화자가 갖추지 못한 강력한 카리스마와 화술, 반항심, 명확한 본인의 철학, 물질문명에 대한 혐오감을 갖춘 매력적인 인격인 타일러의 다양한 기행들을 보며 관객들은 현대인으로서 대부분 가지고 있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대리 해소합니다.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타일러와 화자의 주먹질이 그 예죠. 저는 이 장면에서 묘한 쾌감을 느껴서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타일러로 인해 사람이 죽게 되고 화자가 이에 반발할 때도 저는 타일러를 단순 악역보다는 화자와 대립하는 적대자로 보았습니다. 점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 채 꿈이 무엇인지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며 협박하기도 하는 독특한, 신념이 묻어 있는 행동을 보이고 심지어 마지막 곳곳의 금융 기관에 폭탄을 설치해 폭파한다는 계획에서도 사상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화자는 흥미롭게도 타일러를 점점 닮아가는데 타일러의 카리스마 넘치는 말투를 따라하거나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고 회사 상사를 협박합니다. 하지만 결국 화자는 스스로의 머리에 총을 쏘면서까지 타일러로 살아가는 것을 거부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선택을 통해 성장합니다. 타일러가 화자를 성장시킨 것입니다. 화자는 타일러의 기폭제였고 타일러는 화자의 기폭제였던 셈이죠.




<파이트 클럽>의 의의


논란의 세월을 지나 반항의 상징과도 같은 영화로 남은 파이트 클럽은 다른 여러 개의 영화에서 오마주될 정도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화려한 편집, 촬영 기술의 정점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한 몽환적인 연출이 인상적이었으며 곳곳에 폐가, 어둑한 술집, 네온 사인이 흐르는 거리 같은 배경을 배치해 과감한 각본과 폭력적인 내용에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한편 감독은 직접 자녀에게 <파이트 클럽>을 좋아하는 아이들과는 놀지 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제 친구들은 저와 놀면 안 되겠군요.


저는 이와 같은 반사회적인 각본이 후에 <파이트 클럽>이 단순히 좋은 영화를 넘어선 위대한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 같습니다. 화자와 타일러가 동일인물이라는 반전도 좋았지만 금융 기관이 폭파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픽시스의 where is my mind?가 흘러나오는 엔딩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핀처 감독은 영화의 엔딩만큼은 저작권료가 상당해 보이는 좋은 음악들을 선곡하는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일반적인 영화였다면 화자가 타일러의 게획을 저지했을 텐데, <파이트 클럽>에서는 화자가 말라에게 우리는 참 이상한 때에 만났어라고 이야기하며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를 목도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따지고 보면 초토화 작전은 타일러가, 혹은 화자가 진행한 것이 아닌 억눌린 삶에 반발하고 저항한 군중들이 실행했습니다. 타일러의 말처럼 파이트 클럽의 주인은 영화의 화자가 아니었던 것이죠. 반전이 밝혀지면서 군중은 타일러가 정신 병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초토화 작전에 참여한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타일러가 아닌 타일러의 사상을 따랐다고도 볼 수 있어요.


폭력적이고 정돈되지 않은 억눌린 반항심을 형상화한 영화. 현란하고 창의적인 편집과 세기말적인 색감을 담은 영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이었습니다.




평점 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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