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야간상영 02화

데미언 샤젤, <위플래쉬>

뒤틀린 열정과 위대함에 관하여

by 도연호

드럼 쳐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학교에서 밴드부를 하고 있습니다. 작은 과밴드인데 키보드를 맡았어요. 일반적으로는 기타나 보컬이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합주를 실제로 해보면 보컬은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기타도 꼭 필요하기는 하지만 드럼이 없다면 합주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만큼 드럼은 무조건 밴드에서 1인분 이상을 하도록 요구받는 포지션입니다. 뛰어난 드럼 연주를 보다 보면 손에 땀이 쥐어지거나 정신을 파고드는 듯한 둥둥 소리를 들으실 수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한 아마추어 밴드가 혁오밴드의 노래 Citizen kane의 드럼 파트를 연주하는 모습에서 처음 큰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하이햇


<위플래쉬>는 <라라랜드>와 <퍼스트맨>, <바빌론 > 등 내놓는 작품마다 대단한 호평을 받은 데미언 샤젤 감독의 영화입니다. 영화를 모두 시청하고 나면 영문도 모른채 광기와 흥분에 사로잡힌 앤드류의 모습, 클로즈업되는 핏방울, 땀방울, 잦아드는 주위의 소음 그리고 대비되는 경쾌하고 찬란한 드럼 소리를 들으며 앤드류의 아버지처럼 충격을 받은 관객이 많았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앤드류는 대부분의 러닝타임 동안 그 긴 고뇌와 훈련을 거쳐 무엇이 되었을까, 그 답을 영화는 무거운 주제와 상반되는 담백한 톤으로 담아냅니다.


드러머, 위대한 드러머가 되고 싶어하는 앤드류와 학생들을 말처럼 채찍질하는 플레처 교수는 독특한 관계를 형성합니다. 플레처 교수는 등장 첫 장면부터 앤드류가 박자를 틀릴 때마다 뺨을 강하게 때리고 고함을 지릅니다. 그런 그를 보며 관객은 거부감을 느끼지만 곧 혼란스러워집니다. 플레처에게 자극을 받은 앤드류는 피나는 연습을 통해 '위플래쉬' 메인 드러머 자리를 따냅니다. 자신감을 얻어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고백하기도 하지요. 플레처는 연주를 할 때가 아니면 예의바른 태도로 상대를 대합니다.


앤드류의 고발로 교수 자리를 내려놓게 된 플레처는 재즈바에서 느린 재즈를 평온한 표정으로 연주합니다. 착잡한 표정으로 앤드류는 그를 바라보죠. 같은 예술에 대한 헌신과 갈망으로 묶여있는 두 사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이 장면은 마지막 클라이막스만큼이나 제 기억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플레처와 앤드류는 완벽한 연주를 바라고 있지만 스크린을 보는 관객들에게 둘의 연주는 시끄러운 소리와 불협화음으로 전달된다는 점도 놀라웠구요.




더블킥


플레처의 돋보이는 가학행위들과 앤드류의 타락을 통해 영화는 결말을 향해 질주합니다. 아마추어 럭비 선수인 사촌들을 무시하거나 드럼 연주에 방해된다며 여자친구에게 결별을 통보하는 그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점점 드럼에 대한 앤드류의 열정보다는 그의 집착과 불안정한 심리에 주목하게 되죠. 그리고 이는 플레처의 그것과도 매우 유사합니다. 앤드류는 그를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앤드류는 평생의 소망대로 드럼 스틱을 잡고 카네기홀에 오르지만 플레처는 그를 속입니다. 플레처의 이 행위는 전체 공연을 망칠 각오를 하고 앤드류에게 망신을 주려하였다는 점에서 그간 보여왔던 플레처의 가학성이 예술에 대한 열정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드러냅니다.


차가운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다시 돌아온 앤드류는 달라진 눈빛으로 무대를 응시하고 제멋대로 다른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죠. 상황을 통제하려는 플레처와의 기싸움 끝에 앤드류와 플레처는 마침내 완전히 융화되어 뛰어난 연주를 보여줍니다. 미친듯이 땀과 피를 흘리며 무대가 끝나고 관중이 떠난 뒤에도 드럼을 연주하는 앤드류를 그의 아버지는 문틈으로 경악한 표정을 하고서 바라보죠. 미소를 흘리는 플레처와 땀이 한방울 흘러내리는 드럼을 내려치는 앤드류가 눈을 맞추며 영화는 갑작스럽게 막을 내립니다.




스윙

<위플래쉬>의 주된 쟁점은 앤드류의 변화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플레처의 가학적인 교육방식 아래서 앤드류는 카네기홀에서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합니다. 그 대가로 그는 뒤틀린 인격을 가지게 되죠. 관객의 시선에 따라서 앤드류는 결말부 시련을 극복한 위대한 드러머로도 음악에 대한 집착과 광기에 사로잡힌 괴물로도 보일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이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 열린 결말로 극을 마무리짓습니다.


플레처의 의도도 논쟁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플레처는 마지막 장면에서 앤드류를 속이지만 그가 기개와 천재성으로 장애물을 뚫어냈을 때 그를 자랑스러워하듯이 깊게 눈을 응시합니다. 카메라는 다른 밴드 멤버들을 가리고 음악과 하나가 된 둘을 비춥니다. 학생을 자살로 몰아갈 정도의 가학성과 분명한 철학과 예의, 예술성이 공존하는 입체성을 띠는 매력적인 인물로 플레처는 관객에게 다가섭니다.


영화의 절제되어 있는 연출도 뛰어나지만 다른 영화와는 다른 위플래쉬만의 장점은 두 주연의 연기와 매력으로 극의 긴장감을 꽉 잡아 끌고 가는 속도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담백한 연출, 클래식한 재즈 음악, 절제된 연출로 무너져가는 인간의 심리를 다룬 영화.


데미언 샤젤 감독의 <위플래쉬>입니다.




평점 5/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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