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야간상영 14화

기예르모 델 토로, <나이트메어 앨리>

굽어진 거리를 거니는 악몽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by 도연호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수작 <나이트메어 앨리>는 브래들리 쿠퍼,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주연의 누아르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대표작인 <판의 미로>나 <피노키오>처럼 잔혹 동화 같은 분위기나 상상력이 아주 잘 드러나는 영화는 아닙니다. 델 토로 감독의 팬이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지만 서서히 조여오는 긴장감과 후반에 몰아치는 반전과 복선의 회수만큼은 대단한 영화이고 해석할 거리도 많아 영화를 깊이 있게 보고 싶은 사람과 가볍게 즐기고 싶은 사람 모두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좋은 영화라 생각되어 가져왔습니다. 특히 브래들리 쿠퍼와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그야말로 관객을 소름끼치게 하고 두 명이 한 화면에 있는 것만으로 긴장감 조성은 확실히 되니 연기 보는 재미도 확실합니다. 영화를 다 보면 끝없이 어두운 골목을 질주하며 출구를 찾아 헤메이는 챙 넓은 모자를 쓴 남자를 떠올리게 되는 묘한 소름과 두려움 신비함을 전달해주는 영화입니다. 또 이 영화 결말을 알게 되면 영화의 재미가 반감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아래 글은 영화의 결말을 상당수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먼저 알려드리고 시작할게요.




에녹의 아버지 살해기


영화의 주인공은 최면술사이자 심령술사인 스탠턴 칼라일인데요. 그의 동기나 감정선, 과거 회상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따라가기가 좀 벅찰 수 있습니다. 이때 칼라일과 아버지의 관계에 주목하여 영화를 감상하시기를 추천드릴게요. 스탠턴 칼라일은 세 명의 아버지를 만납니다. 하나는 그의 친부이죠. 그는 알코올 중독자이자 바람둥이로 칼라일은 친부에게 뿌리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어요. 그의 영향으로 알코올을 절대 하지 않는 습관도 생깁니다. 결말부 칼라일이 그의 친부를 간접적으로 살해한 것이 드러나 관객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하죠.


두번째는 그에게 최면술을 가르쳐 준 피트입니다. 피트와 그의 아내 지나는 친부보다 더 칼라일을 자식처럼 대해 준 서커스단의 일원으로 칼라일은 서커스단에서 일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대략적으로 읽어내는 법과 최면술을 배웁니다. 사랑하는 아내 몰리도 만나죠. 하지만 어두운 밤 피트가 가져달라는 술을 가져다주다 실수로 소독용 알코올을 가져다 주어 피트를 죽게 하고 맙니다.


세번째는 에즈라입니다. 에즈라 그린들은 아내를 잃고 상심에 빠져 사는 인물로 부자입니다. 아내를 되살려달라고 칼라일을 고용하는데요. 칼라일은 에즈라의 아내와 닮은 몰리를 유령으로 분장시키다 되려 에즈라에게 발각당해 그를 지독히 폭행해 살해하며 영화는 파국을 향해 나아갑니다. 칼라일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자신의 아버지들을 죽게 하는 셈이죠. 이러한 이야기 전개에 대한 복선으로 무려 윌럼 대포가 연기한 서커스단 단장이 에녹이라는 엄마의 배를 가르고 나온 아이의 미라를 보여줍니다. 칼라일은 에녹에 이상한 애착을 보이고 그가 완전히 파멸하는 엔딩 장면에서도 에녹이 새로운 서커스단 단장 뒤에서 칼라일을 조용히 노려보고 있어요. 이는 에녹과 마찬가지로 부모를 죽이는 운명을 타고난 칼라일에 대한 복선이자 감독의 색채를 드러내는 몇 안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칼라일의 파멸, 릴리스의 복수


그렇다면 칼라일은 영화 내내 무엇을 추구했을까요. 물론 돈과 성공에 대한 열망이 영화에서 표면적인 이유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칼라일은 화목한 가정을 진심으로 바랐던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이 들었습니다. 몰리는 칼라일이 후반부에 살인을 저지르며 타락하자 그를 떠나는데, 릴리스와 바람까지 피우고 그렇게 안 피겠다고 다짐한 술까지 조금씩 마시며 타락해가던 그인데도 몰리에게 끝까지 매달리는 디테일과 끝내 몰리가 그를 떠나자 쫒아가며 난 너 필요없다고 소리소리지르는 행동에서 이런 면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증오하고 아버지가 중독되어 있었던 술에 대한 반감도 그의 이러한 소망과 심리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러모로 오이디푸스를 떠오르게 하기도 하는데요. 오이디푸스와 칼라일 모두 아버지를 증오했으며 아버지를 파멸시켰고 스스로의 운명에서 도망치고자 했으나 끝내 그 운명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릴리스는 왜 칼라일을 파멸시키려 했을까요. 칼라일은 중반부부터 최면술에 능해지면서 신처럼 추앙받고 자신이 상대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다고 자만합니다. 릴리스는 정신분석가로 칼라일의 한 수 위에 있는 인물이죠. 그는 칼라일을 유혹하고 그가 릴리스를 주무르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뒤 그의 돈을 빼돌리고 그를 파멸시킵니다. 칼라일이 릴리스가 자신에게 준 가방에 약속했던 100달러 대신 1달러가 가득 들어있자 충격 받아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장면에서 칼라일을 나지막히 비웃는 장면은 소름이 끼쳤어요. 케이트 블란쳇이라는 배우가 가진 카리스마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장면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릴리스는 칼라일을 유혹할 때 나신을 보이는데요. 릴리스의 배에는 큰 상처가 있습니다. 에즈라가 몰리를 아내로 착각하고 고해성사를 할 때 자신은 다른 여자들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고 말합니다. 과한 상상일지 모르겠습니다만 릴리스는 에즈라에게 모종의 이유로 성적 폭행을 당했고 복수하기 위해 칼라일을 이용했음을 추론할 수 있겠습니다.




장면들 그리고 제목의 의미


인상적인 장면도 많습니다. 릴리스가 칼라일에게 본색을 드러내는 장면. 칼라일의 심령술에 영향을 받은 한 할머니가 남편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충격적인 장면. 칼라일이 에즈라를 살해한 후 릴리스의 집까지 도주하는 긴 롱테이크 모두가 인상깊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압도적이었던 마지만 엔딩이 기억에 남아요. 짐승으로 취급받는 기인을 직접 보고도 알코올에 중독되어 서커스 단장이 말한 그대로 칼라일이 기인이 되는 엔딩은 영화를 깔끔하게 수미상관으로 마무리 지어주는 동시에 그동안 이야기의 진행에 상관없어 보였던 세밀한 복선이 합쳐져 저를 전율하게 했습니다. 고통과 자괴감에 눈물을 흘리며 괴로운 웃음을 짓는 브래들리의 광기 어린 연기가 몰입도를 높여주기도 했구요.


마지막으로 나이트메어 앨리라는 제목은 주인공 칼라일이 반복적으로 꾸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심령술이라는 속임수에도 넘어갈 만큼 연약해진 전쟁 전후 사람들의 심리나 칼라일이 후반부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치던 뒷골목을 연상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악몽과도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려 애쓰지만 끝내 탐욕과 자만으로 알코올 중독에 기인이 되어버린 칼라일의 기구한 신세를 비유하기도 하죠.


약간은 지루한 초중반부를 지나 깔끔한 복선회수와 탐욕과 자만으로 가득 찬 주인공의 필연적 파멸을 인상깊게 그려내며 폭주하는 영화. 그러면서도 델 토로 감독 특유의 기괴한 잔혹 동화 분위기를 잃지 않아 더욱 독특하고 매력적인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나이트메어 앨리>입니다.




평점 3/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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