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목요일. 소화기내과 진료를 보기 위해 B 병원에 왔다. 예상대로 별다른 말은 없었다. 대장항문외과 진료를 봤고 CT를 찍기로 하고 혈액종양내과 예약을 했다는 말을 전달했다.
직장이 많이 부었어서 '베니톨'이라는 약을 권해줘서 먹고 부기는 많이 빠졌다고 하니
"역시 외과 선생님이 경험이 많으셔서 잘 권해 주셨네요."
'이것 보세요, 선샘님. 이 약은 선생님이 권해 주셨어야 하는 약 아닌가요? 외과 선생님보다 경험도 더 많으신 분이...'
말로 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생각이 들 만큼 솔직히 좀 어이가 없었다. 직장 부기 관련된 약이면 내과에서 권해줘야 하는 약 아닌가? 경험도 더 많으시면서... 그리고 그 약은 먼저 동네 내과 선생님이 권해줘서 먹기 시작한 건데... 이 선생님은 정말 내 얘기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직장 부은 것도 가장 먼저 얘기했었는데 그때 이 약을 권해 줬다면 몇 주는 고생을 덜 했을 것 같다.
10월 27일 월요일. 이번에는 다시 B 병원 혈액종양내과 진료를 봤다. 처음으로 병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병이 처음 시작된 지 3개월이 넘은 시점이었다.
"어딘가 정맥이 막히면 이런 증상이 나올 수 있어요. 심장으로 가는 피가 중간에 어디선가 막히면 그 피가 계속 모여서 내장 어느 부위가 붓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아, 혹시 그 막힌 위치를 찾으면 뚫을 수 있나요? 그 정맥이 뚫리면 대장 부은 것이 빠지고 정상 상태로 돌아올 수 있나요?"
"일반적으로 정맥이 막히면 뚫기는 힘들어요. 정맥은 어디가 막혔는지 찾기도 힘들고 대부분 굉장히 가늘어서 꿇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가느다란 침 같은 것으로 뚫으려고 해도 오히려 정맥이 찢어지거나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맥이 막힐 경우 거의 수술을 하지 않아요."
"그러면 막힌 곳을 찾으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사실 막힌 곳을 찾는다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다른 해결 방법을 찾거나 그냥 자연 치유되기를 바라는 것 밖에 없어요"
이게 무슨 말일까? 원인을 찾아도 치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병의 원인을 알아도 몰라도 별로 상관이 없는 그런 문제인 것 같았다. 이제는 그냥 증상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 만을 고민해야 하나 보다. 그냥 자연 치유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외과 수술도 위험하다 하고, 그러면 달리 어떤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혈관이 막힌 이유를 찾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혹시 부모님 중에 비슷한 문제가 생긴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이런 증상은 제가 처음입니다."
"유전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에 지금 문제 말고도 혈관이 더 막히는 문제가 나올 수도 있어요. 그러면 그에 대한 대비를 또 해야 하니까 검사를 일단 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유전적이 문제가 있는 지에 대해 추가 검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검사는 피검사. 여태 피검사는 많이 해 봤지만 비용이 가장 비싸다. 20만원 정도. 유전 검사가 많이 비싼가보다...
여기저기 병원 다니면서 계속 스케줄 정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10월 30일 목요일. 다시 S 병원 방문하는 날이다. 이번 방문은 지난번 구불결장 내시경 결과를 보며 진료를 보는 날이다. 지난번 내시경 하며 들었던 얘기는 오히려 예전보다 심해졌다는 말이었는데...
"대장에 부은 것은 그대로인 것 같고, 직장 부은 것은 많이 없어졌는데 궤양이 아주 심하게 생겼어요. 여기 하얗게 된 부분들이 다 궤양이에요."
보여주는 화면을 보니 장 안쪽 벽이 온통 하얗게 되어 있다.
"저희 다른 교수님들과도 여러 가지 얘기해 봤는데요. 이 비슷한 증상으로 일 년에 한 두 분 정도 우리 병원에 오세요. 아마 수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외과 진료 예약해 드릴게요."
"궤양은 따로 치료를 하면 어떻게 좋아질 수 없을까요?"
"아마 좋아지기 힘드실 거예요."
"혹시 수술을 안 하고 자연 치유되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보통은 좀 지나면 배가 아프셔서 다시 병원에 오시고, 그때쯤 되면 다들 수술을 하시더라고요"
이 소화기 내과 선생님은 올해 조교수가 되신 젊은 분이셨는데 그래서인지 좀 특이한 병에 대해서는 다른 교수님들과 상의를 많이 하시는 것 같다. 아니면 원래 특이한 병에 대해서는 병원 내에서 컨퍼런스 같은 것이 활성화되어 있는 병원도 있다고 하던데 이 병원이 그런 병원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쨋든 병에 대해 어떤 병인지 알겠다고 확실히 말해주는 병원은 이 병원이 처음이었다. 크게 좋은 소식은 아니었지만 일단 병을 알았으니 쉽던 어렵든 간에 치료에 대한 방향이 정해질 것 같다. 드디어 어떻게 치료를 할 지, 어떤 노력을 할 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약간의 우울증과 무력함이 있는 내 상태에는 조금이라도 희망이 생기는 좋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