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나온다.
장루를 통해 소화된 음식들이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온다. 물만 나온다.
처음 하루 정도는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둘째 날도 안 나오고 불안해졌지만 별로 불편한 곳은 없어서 더 기다렸다. 셋째 날이 됐는데도 여전히 물만 나오고 건더기라고 할 만한 것이 나오는 것이 없다.
음식을 먹으면 장루로 거의 소화된 음식물들이 나오게 되는데, 액체 위주로 나오거나 건더기 위주로 나오거나 두 가지가 섞여 나온다. 결과적으로 먹은 음식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섞이면 되거나 묽은 똥색의 죽과 같은 형태가 된다. 그런데 지금은 그 죽을 거른 것처럼 99% 액체로만 나오는 것이다.
보통 장루를 만들었을 때 가장 조심할 부분 중에 하나가 장이 막히는 장폐색인데, 장이 막히면 나오는 것이 없다고 한다. 하루만 안 나와도 바로 병원을 가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난 지금 불편하지가 않은데? 이상하다. 배가 딱히 아프거나 하지도 않고 액체는 계속 나오는 것으로 봐서 막힌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계속 액체만 나오는 것이다.
토요일부터 4일째, 여전히 액체만 나오니 걱정이 많이 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장루 구멍이 막힌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드는데 소화를 돕기 위해 장루에 꽂아 놓은 관이 의심스럽다.
"여보, 아무래도 느낌에 이 관이 막힌 거 아닐까요? 배가 불편하거나 아프거나 하지 않은 걸로 봐서 장폐색 같은 증상은 아닌 거 같은데요."
"그런데 병원에서 퇴원할 때 그 관은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했잖아요."
"그렇게 말을 하기는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영 찝찝한데요. 관이 막히고 그 사이 틈으로 물만 새서 나오거나 하면 이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냥 이 관 한번 뽑아 볼까요? 만약 관이 막혀서 그러거나 하는 게 아닌데 이렇게 안 나오고 막힌 거면 큰 문제일 수도 있다고 바로 병원 가야 한다고 그러던데요."
"그때 막히는 거 같은 문제가 생길 거 같으면 관이 밀려 나올 거라고 했었잖아요. 난 우리가 임의로 뽑거나 하면 안 될 거 같은데요."
난 관이 막혀서 변이 안 나오는 것이 더 걱정인데, 아내는 관을 뽑아서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 봐 더 걱정인가 보다. 어떤 게 맞는 건지를 모르니까... 일단 하루만 더 참았다가 내일도 계속 같은 상태면 관을 뽑던지 병원을 다시 가던지 둘 중 하나는 해야 될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수요일. 오늘도 여전히 액체만 나온다.
아, 진짜 다시 입원하고 싶지 않은데 또 그렇게 될까 봐 너무 걱정이 된다. 어제 아내와 얘기했던 대로 뭐든 하거나 병원을 가거나 해야 할 것 같다.
오전, 지금 관을 뽑아 보고 오후까지 계속 같은 상태면 저녁때는 다시 응급실을 가기로 한다. '이걸 내가 직접해도 되나'하는 걱정을 계속하면서 조심조심 장루 주머니를 풀고 관을 뽑는다. 다행히 특별한 뭔가는 없다. 뽑아보니 그냥 장루 안에 약 20~30 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고무관이 꽂혀 있었을 뿐.
혹시나 하고 관 한쪽에 물을 흘려보니 좀 이상하다. 반대쪽으로 물이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를 않는다. 좀 더 세게 물을 넣으니 이제야 조금의 건더기와 함께 반대쪽으로 물이 흘러나온다.
"여보, 이것 좀 봐요! 관이 막혔다가 이제 뚫리는 것 같은데요."
버섯이다. 생각도 못했다. 버섯은 주의해야 할 음식에 들어있지도 않았었는데...
생각해 보니 액체만 나오기 시작할 그때쯤에 된장찌개에 버섯을 좀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잘 씹었던 음식이라 결대로 찢겨 있기는 한데 소화가 되지 않은 버섯들이 관에 들어가 구멍을 막아버린 것이다. 관이 막혀서 액체만 나온 것이 맞을 것 같다. 아니 이 이유가 맞아야 한다. 아니면 다시 병원을 가야 하니까.
두어 시간 정도 지나 막 오후가 되었을 무렵부터 장루에서 건더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5일 만에 액체가 아닌 것이 나오는 것이다. 그동안 먹었던 음식들이 다 어디에 있었을까. 배가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한 번에 많은 양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조금씩 계속 나왔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편해져서 나온 것들은 좀 살펴보니, 재미있게도 정말 결대로 찢긴 버섯이 많이 보인다.
또 한 번 고비를 넘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