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습니다.
큰 병원인데, 25년 의사를 했는데 모르겠단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더 있을까 싶다. 이 말이 날 정말 힘들게 했다.
"정말 팔이 하나 없어지는 그런 일이 생기면 처음에는 좌절도 하겠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어떻게든 남은 팔로라도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을 할 거야. 암에 걸려도 치료방법이 정해지고 내가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정해지면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 노력을 할 수 있어. 그런데 지금은 몸이 계속 나빠져 가는 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어. 제발 모르겠다는 소리만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당시 아내에게 말했던 솔직한 마음이다. 건방진 말이기도 하고 실제 상황이 되면 또 정말 힘든 일이겠지만, 성격이 강한 편이고 힘들어도 보통 긍정정으로 어떻게든 노력을 하는 편이어서 진심이기도 했다. 모르겠다는 말만은 정말 듣고 싶지 않았다.
2주 뒤 CT를 찍고 다시 2주 뒤 진료를 보기로 했으니 한 달이나 더 참아야 한다.
그 사이에 동네 내과를 찾았다. 원래 고혈압과 약하게 당뇨를 가지고 있는데 약을 먹고 조절은 잘 되는 편이다. 9년째 동네의 가까운 내과를 두 달에 한번 약을 받으러 찾고 있다. 현재는 회사 건강검진결과를 같이 분석하며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줄 정도의 친분도 있는 상태이다. 동네 내과 의사 선생님께서는 지금 내 상태를 보고 놀라며 대해 무슨 일인지 물어본다. 현재 상태에 대해 말하며 화장실은 계속 가지만 점액질 변만 나오고 여러 날에 한 번씩 실제 변을 본다고 말을 하니 나 이상으로 걱정을 해 주며 장 움직임을 도와주는 약이라고 추가 약을 추천해 준다. 약이 계속 늘어난다.
추가로 받아온 약이 도움이 되었는지 이때쯤부터 하루, 이틀에 한 번씩은 실제 변을 보게 되었다.
약을 계속 먹고, 배는 하루 종일 아프고, 하루 20번 정도의 화장실을 가며, 이 중 5번 정도는 하루치의 변을 나눠서 보게 되었다. 배는 하루 종일 아픈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갑작스럽게 배가 많이 아플 때는 오래 참지 못하고 바로 화장실을 가야 했다. 회사에서는 배가 아플 때 가만히 앉아 일을 할 수가 없을 때가 종종 있어서 그냥 복도를 방황하며 돌아다니기도 하고, 30분에서 한 시간마다 한 번씩 화장실을 가며, 출퇴근 약 1시간 거리를 이동할 때 혹시 참을 수 없게 될까 봐 가장 두려워하며 회사를 다녔다. 물론 출퇴근할 때 지하철 화장실도 꼭 한 번씩 가게 되었다.
도저히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생활이 이어진다. 회사에서 또 배가 아파 화장실 자리가 나길 기다리다가 결국 큰 일을 치르게 되었다.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똥이 나온 것이다. 옷을 입은 채 화장실 자리가 나기을 기다리며 계속 똥이 나온다. 참아지지가 않는다. 또 마침 양도 많이 나온다. 아찔하다. 어떻게 수습해야 하지.
아프기 시작한 뒤로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갑작스럽게 점액질 변이 조금씩 새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가방에는 언젠가부터 늘 팬티 하나를 가지고 다녔다. 현재 옷 속에 나온 똥들은 다행히 팬티를 벗어나지 않았다. 마침 이때 화장실 자리가 났다. 들어가서 살짝 옷을 내리고 팬티에 있는 똥들을 처리한다. 일단 벗고 바지를 확인하니 바지에는 묻은 것이 없었다. 식은땀은 나지만 일단 수습은 가능할 것 같다. 남은 일을 마저 보고 밖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을 때 살짝 나와 팬티를 빨았다. 따로 버릴 만한 곳도 없고 잘 못 버리면 블라인드 같은 곳에 소문이 날 것 같다. 젖은 팬티는 최대한 숨기며 자리로 돌아와서 가방에 있던 팬티와 바꿔 들고 다시 화장실에 가서 입고 나온다. 아무도 모르게 수습이 된 것 같다.
다행이다. 비참하다.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울 수는 없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것 같다. 건강을 건강할 때 지켜라, 건강이 최고다라는 말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난 키가 큰 편이고 체격도 살은 좀 쪘지만 예전에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이 많은 건장해 보이는 이미지이다. 하지만 흡연을 하고, 술을 많이 좋아해서 조금씩이라도 거의 매일 먹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면 분명히 술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병명을 알 수 없는 지금 이 증상은 술과는 별로 관계가 없을 거라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병명을 알아야, 원인을 알아야 고치기 위해 노력을 하거나 조심을 할 것이 아닌가. 많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