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듯 퇴직을 했다. 날마다 월요병에 시달리고 힘듦이 턱 밑까지 차올라 벗어날 궁리를 하는 내가 위태로워 보였는지 남편도 마지못해 동의했다. 아무 계획 없이 일을 그만둔 게 걱정되기는커녕 나는 미루고 미루던 일을 해치운 것처럼 홀가분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한참을 침대에서 뭉그적거리고 일어나도 가야 할 곳이 없는 게 좋았다. 낮에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는 여유와 쓸데없이 도서관에서 빈둥대는 게 좋았다. 주말에는 월요일이 오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매번 비싸게 다니던 해외여행을 좋은 계절에 싼값으로 갈 수 있으니 땡처리 항공권을 검색하며 혼자 피식거렸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울감이 찾아왔고 마음과 몸이 연결된 것인지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때마침 코로나 펜데믹이 전세계를 휩쓸었다. 병원에 가기 두려운 마음이 병을 더 키웠을까...
아주 오랜 시간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내가 왜 아픈지 모르겠다는 의사도 있었다. 집에 쳐 박혀 나는 절망으로 더 병들고 있었다. 신병이 아니냐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어디 가서 점이라도 봐야 하나 생각했으나 믿지도 않았고 한편으론 무섭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언니가 별자리 이야기를 했다. 언니는 동네 문화센터에서 명리학을 비롯해 타로 강의를 들으며 가족 모임에서 타로점을 봐주곤 했는데 더 나아가 별자리 공부를 하고 있었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나의 사주와 별자리를 해석하고 내게 조언했다. 집 밖으로 나가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하고, 또 돈을 써야 내 몸이 나아진다고. 정말 그럴까?
별을 좋아해 천문대에서 직접 망원경으로 별을 찾아보고 유튜브에서 우주의 신비 등을 재밌게 시청했던 나는 별자리에 대한 호기심이 있기도 했지만, 건강에 대한 한 가닥의 희망을 품고 서울로 병원에 다니며 별자리를 배우게 되었다.
별자리는 내가 생각했던 학문의 영역과는 달랐다. 배움의 의지보다는 기분 전환의 마음으로 시작한 불순한 의도였던지 학습에 열의도 낮고 나아지지 않는 통증 때문에 집중력도 떨어졌다. 강의 내용이 어렵고 수업 중에 구사하는 은유적인 표현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결론에 맞추어 말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나마 서울로 콧바람 쐬며 나들이 간다고 생각하던 마음이 점차 시들해져 갔다.
그러던 중 가족 모임에서 언니가 남편의 별자리를 읽어 줬다. 남편은 자신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아준다며 신기해했다. 아픈 아내를 두고 낚시를 가고 싶은 남편의 마음을 언니가 두둔해 준 것으로 생각했는데 별자리 차트에는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마음의 안정을 얻는지 남편의 마음이 나와 있었다.
남편의 심리를 보여주는 지도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은 욕구가 일어났다. 더불어 오십이 넘어서도 잘 알지 못하는 나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졌다. 언니는 나에게 적합한 강의를 추천해 주었고 현재는 한 달에 두 번 줌으로 선생님을 만나고 있다. 공부할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끝이 있을지 모를 이 공부를 나는 그렇게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