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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망 Jan 18. 2024

털 빠진 곰 저만 춥다.

'털 빠진 곰 저만 춥다'

친정엄마의 명언 중  하나다.

대충 '저 잘낫다고 뻗대봤자 저만 손해다' 정도로 의역을 하면 될 것 같다.


요양원의 점심 식사가 끝났다. 어르신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신다. 분위기 좋게 얘기를 하고 계신다고 신경을 끄면 안된다.  정도는 다르지만 어느 정도 치매가 있는 분들이 많다. 치매가 없이 인지가 정상인 분들도 섞여 있다. 어떤 말에서 필이 잘못 꽂히면 워커가 날라다닐 수도 있을만큼 분위기가 험해진다. 초기진화가 필수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 요양사들이 돌아가며 어르신들 사이에 같이 앉는다. 일을 한다 해도 반드시 어르신들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어야  한다. 어르신들이 응접실에 계시는 때는 한 사람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규칙이다.


어르신 한 분이 며느리에 대한 불평이 끝이 없다. 너무 싫어서 그렇게 결혼을 반대했는데 아들이 결혼을 했단다. 20년이 넘도록 인정하지 않고 안보신다고 득의양양해서 말씀하신다. 함께 얘기 하시던 어르신이 말씀 하신다. '우리 며느리는 생긴건 안예뻐. 근디 착혀. 살림도 야무지게 잘하고, 애들도 잘 키우고, 우리 아들한테도 너무 잘혀. 나한테도 엄청 잘 혀. 난 며느리 복 받았당께. 참말로 이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이었다. 이뻐하자고 악을 쓰며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어찌 그 어르신이라고 며느리가 예쁘기만 했을까. 예뻐하는 마음이어야 가족 모두가 편하겠다 싶으셨을거다. 그리고 안좋은건 안보기로  하셨을 거다. 그 노력이 쌓여서 며느리가 정말 예쁜 사람이 되었을 거다. 그 어르신은 치매도 없다. 우리 요양원에 오시기전 중환자실에서 오래 계시며 1년 이상을 경관식을 하실만큼 크게 앓으셨다고 한다. 퇴원하시고 바로 우리 요양원으로 오셨다. 며느리가 당신을 간병하며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배려였다.


그 어르신은 털 빠진 곰 저만 춥다는 말을 잘 알고 계신다. 아는데서 끝나지 않고 실천을 하셨다. 우리 요양원 어르신들 중 가족의 보살핌이 제일 살뜰한 분이시다. 당신이 뿌리신대로 거두고 계신다. 시어머니가 먼저 며느리를 배려다.  며느리도 그에 맞췄다. 모든 자녀들의 사랑이 넘친다. 복 많은 어르신이다. 아이바오 느낌으로 풍성한 털옷을 입고 계신다. 팬더는 곰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며느리가 싫다고 기를 쓰던 어르신이 더 화가 났다. 같이 며느리 욕을 해 줘야 되는데 말이다. 그저 자기 며느리 자랑만 하는 어르신에게  뿔이 단단히 났다.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신다. 음성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결국은 내가 불을 끄러 나섰다. 문제는 내가 이미 며느리를 사랑하시는 어르신께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다.

'어르신 정말 잘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며느리 귀하게 여기시다니 멋지세요!' 불 난 집에 부채질 했다.


며느리를 못마땅해 하시는 어르신은 이미 치매가 상당히 진행이 되었다. 어르신의 그 성격에 얼마나 며느리가 마음이 상했을까 싶다. 그래도 요양원에 들어온 시어머니에게 김치랑 반찬을 해 보냈다. 요양원에 들어간 시어머니에게 긍휼한 마음이 들었을 거다. 그 며느리도 며느리를 볼 만큼 나이가 들었다. 자기도 나이가 들어가며 시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 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단순한 반찬이 아닌 화해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걸 받아 드시면서도 못마땅하셔서 점심 식사 후에 그 난리가 났다.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해 보냈단다. 반찬을 드시면서도 못마땅함을 어떻게든 드러내시려 화난 얼굴이셨다. 밥은 먹었어도 디저트로 며느리 흉을 봐야 하는데 뜻하지 않은 복병의 공격을 받으셨다. 거기에 내가 적군 지원까지 했으니!


이 어르신은 털이 다 빠져 버린 것을 본인만 모르고 있다. 결국 당신만 털 빠져 추운 것을 알지 못한다. 아들만 잡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신다. 아들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아들도 효자라 다 받아 준다. 매주 토요일이면 모시고 나가서 점심을 함께 한다. 보통은 아들, 며느리가 함께 모시고 나간다. 점심을 드시고도 저녁 때가 다 되어야 들어 오신다. 이 어르신은 점심만 먹으면 거의 바로 들어 오신다. 며느리가 함께 왔다면 조금 더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다.


우리 시어머니가 생각난다. 워낙 별난 성격 때문에 시집살이가 힘들었다. 거기에 나중에는 알츠하이머 말기 치매로 더 힘든 시간을 지나야 했다. 요양병원에 계시던 어머니를 내가 집으로 모셔 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도 집착하는 아들곁에 있게 해 드리고 싶어서라는 이유도 있다. 시어머니의 아들 집착에 힘든 결혼 생활이었다. 나도 아들을 낳아 키워 보니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나도 아들 가진 엄마라는 동질감에서 스스로 총대를 매었다.


시어머니가 딸들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당신 딸들이 당신을 책임질 거라는 생각이셨다. '너한테 신세질 일 없다' 우리 어머니의 단골 멘트였다. 나도 결혼하고 살아보니 친정 부모님께 생각만큼 안되는 것을 경험했다. 결국 내 차지일 것을 알았다. 그런 말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시어머니를 모셔 왔는데 딸들이 자주 들여다 보지를 않았다. 아마도 나를 못마땅해 했던 시어머니가 나에 대해 편치 않은 말들을 했을 거다. 딸들은 그런 내가 편치 않아 우리집에를 오지 못했을 거다. 시어머니는 딸들이 자주 와 주기를 기대했을 거다.  우리 시어머니도 털 빠진 곰 저만 추웠다.


아무리 기세등등한 시어머니도 늙는다. 그리고 힘이 없어진다. 며느리는 나이 들어가며 실세가 된다. 힘이 생긴다. 한창 때야 털이 북실북실해서 따뜻하다. 누가 건드려봤자 기별도 안간다. 나이 들어 그 털이 다 빠지게 된다. 스쳐가는 바람에도 시린다. 춥다. 털이 없어 이 상처, 저 상처 다 받으며 아프다고 한들 누가 들어주지도 않는다. 털이 있을 때 털 관리 잘 해야겠다. 그저 우리 며느리 예쁘다고... 잘 한다고...

나중에 며느리가 털코트를 입혀 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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