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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망 Jan 19. 2024

'얼른 가야'

한밤 중의 투어가 끝났다. 결국 포기하고 당신 방으로 가신단다. 조금 전까지 나가겠다는 '얼른 가야'였다. 다음은 당신 자리로 '얼른 가야'다. 마지막은 나한테 '얼른 가야'다.

당신을 나가게 해 주지 않아서 꼴 보기 싫다 쯤인것 같다.


요양원 밤근무다. 오늘은 내가 초저녁에 쉬고 밤을 새우는 날이다. 세 명이 교대로 5시간을 쉰다. 어르신들이 잠이 깊이 들지않는 초저녁이 제일 위험한 시간이다. 그 시간은 두 사람이 어르신들을 돌본다. 한 사람이 그 시간에 쉬고 밤을 새운다. 초저녁은 잠이 들지 않는 시간이다. 초저녁에 쉬는 사람은 그냥 한 숨 못잔다.  그저 바라고 또 바란다. 모두 깊이 잠들어 주시기를!


가끔  상태가 안좋은 어르신들이 있다. 그런 날은 거의 밤새 앉을 수도 없다. 30분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열, 산소포화도, 혈압을 재야 한다. 편찮으신 어르신들 때문에 밤을 새우는 날은 당연하게 여긴다. 그 분이 오시는 어르신들이 있는 날은 심정적으로 힘들다. 아마도 시어머니를 간병했던 트라우마 때문일 거다.

 

새벽 한 시에 근무를 시작했다. 우선 어르신들의 방을 돌았다.  이불도 덮어드리고, 베개도 바로 해 드리며 상태를 살폈다. 모두 깊이 편안히 주무신다. 마지막 방에서 그 분을 만났다. 광주 어르신이 기어이 일어나겠다고 몸부림을 치고 계셨다. 낙상 위험 1순위이신 분이다. 혹시 모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침대 난간을 묶어 놨다. 물론 보호자의 동의 하에서다. 요양원에서 행하는 어떤 구속도 보호자의 동의없이 진행되지는 않는다.


어르신들의 뛰어난 능력이 있다. 어떤 구속도 어르신들이 마음만 먹으면 풀어 낸다. 데이비드 커퍼필드가 울고 갈 정도다. 나름 본인만의 스킬이 있다. 그분이 오시고 필이 꽂히면 기어이 풀어버리신다. 요양원은 1:1  간병이 아니다.

여러 사람을 보살핀다. 잠간 다른 어르신을 돌보는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구속을 하게 된다.


광주 어르신은 항상 침대에서 내려오려 하신다. 침대 난간을 아무리 꽁꽁 묶어놔도 어떻게 푸시는지 알 수가 없다. 오늘은 천천히 푸는 것도 성에 안차셨다. 그냥 어놓은 끈을 잡아당기며 흔든다. 고요한 밤이다. 침대 난간 흔드는 소리가 요양원을 울린다. 밤이라고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다. '얼른 가야' 어딘지 가야 한다는 것에만 필이 꽂혔다. 결국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계속 되면 다른 어르신들이 깬다. 그러면 걷잡을 수가 없게 된다.


선배 요양사에게 배운대로 하기로 했다. 한 번 필이 꽂히면

어떤 말로도 안된다.  원하는 것을 최대한 해 주는 거다. 휠체어에 태워서 로비로 모시고 나왔다. 너무 좋아하신다.

'얼른 가야' 어디를 가자는 건지 알 수 없다. 밤에 로비로 모시고 나오면 간호 데스크의 불을 모두 끈다. 어르신들에게 밤이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서다. 불을 꺼도 소용이 없다. 목청껏 소리를 높이신다. '얼른 가야' 문이란 문은 다 두드리고 다니신다. 보통은 깜깜하면 얌전히 계신다.오늘은 어디를 가야겠다 싶으신지 거침이 없으시다. 방마다 문을 열어보려 하신다.  엘리베이터를 열심히 누르신다. 빨리 와서 문을 열라신다. 테라스로 나가는 문도 열심히 밀어보신다. 그냥 스스로 단념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결국 왜 못가냐고 물으신다. 아무도 없냐고 물으신다. 밤이라 아무도 없다 했다. 차도 없어 갈 수가 없다 했다. 드디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끼셨다 보다. 그럼 당신 방으로 가시겠단다. 모시고 가서 침대에 눕혀 드렸다.

다시 '얼른가야'가 시작됐다. 당신을 나가게 해 주지 않은 나에게 뿔이 났다. '보기 싫으니 얼른 가야'  아무리 보기 싫다 하셔도 침대 난간은 꿋꿋하게 묶고 나왔다.


그렇게 한밤 중의 투어가 끝났다. 화가 단단히 나셨다.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쓰신다. 이럴 때는 정말 아기같다.

이렇게 가끔 한밤 중에 헤프닝을 만드는 분이다. 지난 번에는 집에서 해 온 김치에 밥을 드시고 싶다고 애들처럼 두 손을 모으고 애원을 하셨다. 결국 새벽 3시에 모시고 나왔다. 마침 요양사들의 저녁밥으로 나온 밥이 있었다. 그 밥과 김치 김, 젓갈로 밥 한공기를 드시고 주무셨다.


밤에 라운딩을 하러 가면 야단을 하신다. 물론 그 분이 안오셨을 때다.  늦었는데 안자고 돌아다닌다고 우리 엄마처럼 뭐라 하신다,  '힘든디 워째 안자고 돌아다닌다야 이짜 누워' 기어이 몸을 움직이신다. 나를 눕힐 자리를 만드시는 거다. 빨리 누우라고 애가 타신다

어르신들은 춥다.  요양원 난방이 빵빵한 이유다. 우리는 뛰어다니며 일 하느라 어떨 때는 반팔이다.  한겨울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 날은 내 팔을 문지르시며 또 애가 탄다.

'추운디 워째 이러고 다닌다냐'  사랑이 많으신 분이다. 가끔은 아기처럼 성깔 피고 화도 내신다. 그래도 모두에게 진심어린 사랑을 느끼게  하는 분이다. 말로 다 못해도 우리 모두가 안다. 그 어르신은 사랑으로 충만한 분임을!


밤에 가장 힘들게 하는 분이다. 그런데 요양사들이 모두 사랑하는 어르신이다. 이 어르신을 보면서  뭘 해도 예쁘다는 말의 의미를 처음 느꼈다. 그냥 귀엽다. 그냥 사랑스럽다. 미운짓을 해도 다들 어르고 달랜다. 화를 내도 아기 달래듯 토닥거린다. 그 분이 오셔도 귀여운 어르신은 이 분 뿐이다.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운 축복을 받은 분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안에  사랑으로 가득한 천사가 있다.


기왕 태어나 사는거 이런 축복의 사람이고 싶다.

내가 있는 곳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기를

내가 있는 곳에 행복이 가득한 사람이기를

내가 있는 곳에 따스함이 넘치는 사람이기를

내가 있는 곳에 웃음이 넘치는 사람이기를.

타고 나지는 못했다.

노력해 볼  일이다.

내 삶은 그렇게 아름답게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그나저나 이 어르신은 어딜 가려 한 걸까?

'얼른 가야'

지금은 또 아기처럼 새근새근 주무신다.

천사같은 광주 할매!

꿈길에서라도 가고싶은 곳으로 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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