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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망 Jan 21. 2024

내가 예쁘다고?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별일이다. 이 나이에 예쁘다는 말을 들어본다. 젊어 한창 때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그런데 그 말이 기분 좋다. 나도 여자라고 예쁘다는 말에 정신줄 놓나 보다.


'선생님 정말 에쁘다. 어떻게 이렇게 예뻐. 너무 부러워!' 이쯤되면 이건 아부다. 치매가 있는 어르신도 있지만 인지가 정상인 어르신도 있다. 치매 환자에게 아부한다 할 수도 없다.  인지가 있으신 어르신은 진심이다, '곱다 어째 이리 곱노' 어르신의 기저귀를 갈아  드릴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다.


한 분만 그런 것도 아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예쁘다. 곱다' 하신다. 사실 황당하다. 한 번도 내가 예쁘다는  생각을 해 본적 없다. 예쁘다는 말도 들어본적 없다.  그런데 이 나이에? 왜지?


아마도 당신들을 돌보는 내가 예뻐보이나 싶다. 얼굴이 예뻐서가 아니다. 병들어 누운 당신들에게 항상 웃는 얼굴이 예쁜 거다. 알면서도 기분이 좋은 나는 뭐지? 가끔   마스크를 한 나를 보고도 '곱다' 하신다.그래도 이해가 안되서 거울을  본다.  나의 얼굴을 꼼꼼히 본다. 혹시 진짜 에뻐졌나 싶어서다. 이변은 없다.


어린시절 나는 자존감이 높은 아이였다. 예쁘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 대신 주변 어른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랐다. 나에게는 박수부대였다. 나름 애교 많은 아이였다.

 아마도 어른들은 그런 내가 예뻤을 거다. 뭐든지 '잘 한다 잘 한다'였다.  요즘 말하는 근자감이 충만한 아이였다.


걸혼하고는 '잘 한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시어머니나 남편에게 나는 항상  부족한 사람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칭찬을 너무 받고 자랐나 싶다. 왜 그렇게 괜찮다. 잘한다 그 말이 고팠을까? 무엇을 해도 야단 맞을 걸 염려 했다. 칭찬은 먼 이야기다.  타박만 안들어도 선방이었다. 내 딴에는 죽을 힘을 다 해 살았다. 그렇게 내 자존감은 안드로메다로 가 버렸다.


나는 항상 주눅 들어 있었다. 위축되어 있었다. 그런 내가 요양보호사 5개월차에 함박꽃이 되었다. 어르신들의 무한한 사랑 덕분이다. 다시 웃게 되었다. 다시 고개를 들게 되었다.

거울 속의 나는 환하게 웃고 있다. 표정이 밝아졌다. 굳어 있는 얼굴보다야 예쁘다.


 집을 나와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갇혀 있는 환경을 벗어나야만 했다. 나이 때문에 어디서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어쩔수 없이 떠밀려 온 요양보호사의 길이다.

여기서 내 상처는 치유되고 있다. 나아가 새 살이 돋고 있다.

아무리 뜯어 봐도 예쁜 구석 없는  얼굴이다. 여러 어르신들의 '곱다, 예쁘다'는 말은 나에게 마데카솔이다. 새 살 솔솔 마데카솔!


매일 어르신들과 함께 한다. 나의 작은 손길, 미소 한 번을 고마워 하신다. 그리고는 내가 예쁘단다. 이미 주름진 얼굴이다. 본판이 좋은 것도 아니다. 어르신들이 주시는 사랑이 귀한 화장품이다. 안드로메다로 갔던 나의 자존감이 돌아오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내가 예쁘지 않다고 속상했던 적도 없다. 예쁘고 싶어서 노력한 적도 없다. 아! 쌍꺼풀 술은 했다.

엄마는 얼굴 업그레이드가 목표였다. 나는 안구 쪽으로 자라나 사정없이 눈을 찔러대는 속눈썹 몇개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에쁘다는 그 말에 이리 행복할 일인가? 가출했던 자존감이 돌아올 정도로 말이다.


나도 에쁘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거다. 예쁘고 싶었던 거다.

어르신들의 에쁘다는 말에 성형수술이 됐나 보다. 쬐끔 예뻐진 것 같기도 하다. 고와진 것 같기도 하다.착각은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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