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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망 Jan 23. 2024

내 인생 2막의 버킷리스트

멈추지 않는 삶

나는 어린 시절 누구나처럼  학생이었다. 그다음은 누군가의 아내였고, 엄마였고, 며느리였다. 집안에는 환자가 끊이지 않았다. 외아들이니 시부모님 병시중이야 당연하다 친다. 신장에 문제를 가지고 태어난 딸과 긴 시간을 견뎌야 했다. 허리 디스크로 힘든 남편을 받들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알츠하이머 말기 치매 환자인 시어머니를 거의 10년간 모셨다.


내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오직 기도하며 하루를 견디며 살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결국 나와 화해하지 못하고 가셨다. 성인이 된 아이들도 자기들 길을 찾아갔다. 투쟁의 시간이 끝났다. 돌아보니 나를 위한 시간은 없었다. 시부모님, 남편, 아이들에게 내 젊음과 시간을 다 준 빈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거울 속에는 이미 노년의 모습이 보이는 내가 있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만 살고 싶다고. 내 삶이 너무 지쳤다. 그냥 무슨 병이라도 생겼으면 하는 시간이었다. 보험을 해약했다. 아프면 그냥 그대로 죽을 수 있도록. 아마도 시어머니와 끝내 화해하지 못한 것이 삶에 대한 소망을 놓은 이유였던 것 같다.  화목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었다. 내가 노력하면 되는 일인 줄 알고 죽을힘을 다해 살았었다. 내가 아무리 진심이어도 안 되는 일이었다는 것에 무너졌던 것 같다. 내가 애쓰며 살아온 삶이 모두 헛된 것 같은 허망함이었다. 사람 목숨이 그리 쉽게 가는 것이 아니었다. 죽을 듯이 아프지만 죽지 않았다. 그렇다면 살 수밖에 없었다.


남은 나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했다.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을 적어 봤다. 내 인생 2막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안 살고 싶다는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생각이 한 끗 차이였다. 갑자기 내 삶이 보였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는 오기였을 거다. 살자고 하니 살 길이 보였다.  이미 환갑을 바라보는 나에게는 시간이 없다. 선택하고 집중하기로 했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고전을 영어원서로 읽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을 엄마표 영어로 키웠다. 두 아이 다 우리말과 간극이 없는 영어를 한다. 원서로 책을 읽는 맛에 대해 얘기한다.  번역된 글은 번역가의 눈으로 볼 수밖에 없다. 맛을 봐야 맛을 아는 샘표 간장도 아니고,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알 일이다. 고전을 원서로 읽어 보고 싶은 소망이 항상 있었다.


나는 영어를 좋아는 했지만 잘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두 아이 다 영어를 직접 만들어 주었다. 영어로 놀며 영어를 즐기는 아이로 만들었다. 아이들을 키우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표 영어를 했던 방법도 얘기를 해 보고 싶다. 딸아이는 엄마가 자기들에게 영어를 했던 방법에 대해 책을 써 보라고 한다.


거창하게 영어 원서 읽기 프로젝트라 이름을 지었다. 10개월째 매일 1시간씩 영어책을 읽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했던 대로 쉬운 영어동화책부터 시작했다.  조금씩 레벨을 올려왔다. 지금은 young adult 정도의 책을 읽고 있다. 가장 큰 수확은 영어원서에 대한 부담감을 지운 것이다. 이제는 하얀 건 종이, 까만 건 영단어의 수준을 완전히 극복했다.


두 번째 버킷리스트는 글쓰기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꿈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그래도 젊은 날 글 써서 돈 벌었던 경력이 있다. 글 쓰는 것을 쉽게 생각했다. 내 블로그 글을 본 딸이 현실에 눈을 뜨게 해 줬다. 옛날 신문 보는 느낌의 글이란다. 많이 아팠다. 한 발 물러서서 내가 쓴 글을 봤다. 글 구성도 엉망이다. 포기하고 싶었다. 정말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현실은 말 그대로 개발새발이다.


그놈의 글쓰기가 뭔지. 쓰고 싶었다. 다시 글쓰기 공부를 하자 마음먹었다. 못하면 배우고 연습할 일이다. 내 인생 2막은 더 이상 망설이며 시간을 보내지 않겠다 다짐했었다. 멈추지 않고 나가자 마음먹었다.  책을 읽었다. 유튜브에서 글쓰기 영상을 찾아서 필기를 해 가며 공부했다. 구성은 아직 한창  멀었다. 하지만 만연체인 내  쓰는 습관은 많이 고쳤다.


딸아이는 부딪치며 글을 써보라 권했다.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라 했다. 브런치 글들을 보며 '감히 내가 '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뭇거렸다.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짧다. 더 이상 머뭇거리는 삶을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10번도 떨어진다는데..  일단 저지르기로 했다. 처음에는 딸아이의 도움을 받았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내 목소리가 아니었음이 걸렸다. 되든 안되든 내 목소리라도 내보자 싶었다. 그렇게 나 혼자 힘으로 두 번째 도전장을 내밀었다. 결과는 '브런치 작가가 되셨습니다 '였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았다.  엉겁결에 내 인생 2막의 두 번째 버킷리스트를 달성했다.


세 번째 버킷리스트는 건강하게 살아보기다. 타고나기를 약하게 타고났다. 몸도 작고, 왜소하다. 피부도 얇아서 온갖 자극에 반응한다. 제일 힘든 것은 약을 먹지 못하는 특이체질이다. 약성이 있는 음식조차도 반응을 한다. 남들 다 마시는 유자차, 모과차도 물 타서 마셔야 한다. 어지러워서다. 운동을 하고 싶지만, 그도 견디지를 못한다. 운동해 보겠다고 어지간히 돈도 바쳤다. 한 번 운동하면 한동안은 완전 방전 상태다. 남들 다 하는 일을 몸이 안 따라줘서 참 힘들게도 살았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가 될까 싶은 딸아이의 잔소리에 조금씩 몸관리를 하고 있다. 영양제도 먹고, 음식도 관리를 하고 있다.   조금씩 운동도 한다. 심장이 약해서 집에서 홈트를 하고 있다. 내 상태를 봐가며 힘든 날은 운동을 하지 않는다. 매일 스트레칭은 꼭 한다. 가랑비에 옷이 젖고 있다. 어느 틈엔가 몸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감당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어느 정도 버틸 수도 있겠다 싶어 요양원에 취직을 했다. 어찌보면 나를 테스트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요양원일을 하기로 한 것이 신의 한 수가 아니었나 싶다. 많이 움직이다 보니 몸이 더 건강해짐을 느낀다. 아마도 순환이 잘 되어서가 아닐까 싶다. 거기에 환경을 바꿔 보기로 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집에만 있을 때의 스트레스 상황을 벗어날 수 있어서다.


나는 그만 살아도 되겠다, 죽을병 걸리기 기다리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실까 기도했다. 생각이 뒤집어지니 살아서 할 일만 보인다. 예전에 좋아했던 사진도 찍고 싶다. 수채화로 꽃그림도 그리고 싶다. 40년이 지났으니 다 잊어버려서 다시 배워야 된다.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우왕좌왕하다가 지금 이 시간조차 잃을 수 있으니까. 인생 2막의 버킷리스트를 세 가지로 택했다. 그리고 그 여정을 매일 걸어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하다. 살아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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