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실수도 약이다
내 핸드폰에는 저장해 둔 사진이 많다.
딱히 쓸 일도 없고, 들여다볼 일도 없으면서 그냥 저장만 해 둔 사진들이다.
이제는 애 아빠가 되는 아들의 졸업, 입학 사진
애 둘 딸린 엄마가 될 나이라는 딸아이의 졸업, 입학 사진
여기저기 다니면서 찍어댄 사진들까지..
용량만 잡아먹어서 핸드폰만 느려진다고 딸아이의 타박을 들으면서도 그냥 두고 있었던 사진들이다.
가끔은 마음먹고 앉아서 지울 사진을 골라 보기도 했다.
이 사진은 이래서 둬야 될 것 같고, 저 사진은 저래서 둬야 될 것 같고.
이유 없는 사진이 없어서 결국 둬보자로 끝났다.
며칠 전, 내 손가락이 자유의지를 너무 발휘했는지..
정신없이 사진을 찾아보며 넘기다가 그만 삭제를 눌러버렸다.
한순간에 그 많은 사진이 몽땅 사라지는 마법이었다.
백지!
배운 건 있어서 휴지통에서 복원을 하면 될 일이었다.
여기서 정신줄을 또 놓았는지 복원을 누른다는 것이 또 삭제를 눌렀다.
진짜 몽땅 사라진 거다.
내가 좋아하는 미드 CSI사이버라면 어떻게든 복원을 하겠지만, 그냥 끝난 거다.
딱히 CSI사이버를 끌어들일 사진이 없는 것도 사실이고..
정신줄 놓고 사는 내가 한심해서, 매사에 어어하다가 실수를 연발하는 삶은 나이가 들어도 끝이 없음에 화도 나고..
그렇게 한동안을 지냈다.
그런데,
이게 이상하다.
처음에 허탈하고, 열받던 그 마음이 없어지더니, 어느 순간 가벼움이 느껴졌다.
그 사진을 지우지 못한 것은 분명 미련이었을 거다.
이제는 지나가 버리고 다시 오지 못할 시간에 대한 미련!
그 미련을 버려야 아이들도 나도 편해질 텐데 차마 그것을 못했던 거다.
사진을 몽땅 삭제해 버린 것은 분명 나의 실수다.
하지만 그 일을 통해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해방감을 느끼기 시작한 거다.
이제는 자기 몫을 다하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은 그들에게 주고,
나는 미련 없이 나의 남은 삶을 살면 되는 거다.
내 핸드폰 갤러리에는 이제 아이들 사진은 없다.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
미련을 남길 어떤 사진도 두지 않기로 했으니까
가끔은 실수도 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