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망 Jan 31. 2024

이 낯섦을 어떡하나

낯섦을 극복하는 방법

나는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다. 새로운 환경, 사람에 적응하기 힘들다. 그 낯섦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 어렵다.  되도록이면 낯선 일을 안 만들려 한다.  항상 익숙한 카테고리 안에 머문다. 아마도 몸이 약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내 체력으로는 긴 시간 낯섦을 감당하기 버겁다. 그 시간들에 쏟아야 하는 에너지가 많기 때문일  거다.


요양원 근무 6개월 차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기에 선택한 일이다. 모두들 일단 집 밖으로 나가라 했다. 사람을 만나라 했다. 그렇게 시작한 낯선 직장생활이다. 나의 낯가림을 드러내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썼다. 항상  물 위에 떠 있는 기름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어울리는 동료들이 부러웠다.


모든 환경이 낯설었다. 모든 사람이 낯설고, 모든 일이 낯설었다.  나도 그 속에 자리를 잡아야만 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버텼다. 마술램프에 숨는 지니였으면 했다.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릴 수 있었으면 했다. 감사하게도 한 팀이 된 요양사들이 나를 품어 주었다. 팀장은 오랜 사회생활 선배로서 나를 배려했다. 다른 팀의 요양사들과도 얼굴을 익혀 가고 있다.


우리 요양원은 세 명의 요양보호사가 한 팀이 되어 일한다.

층마다 세 팀이 교대 근무를 한다. 나는 주일 예배를 지키기  위해 일요일을 쉰다. 6일 주기의 시간표를 맞추기 위해 다른 팀에 들어가야 한다. 낯섦이 어렵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익숙한 우리 팀이 아닌 다른 팀에 들어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출근하기가 부담스럽다. 가슴에 돌  하나를 담고 출근한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애들 말로 존버 정신으로 버텼다. 낯섦을 극복하는 방법이 없었다. 그냥 버티는 것 외에는.


  낮근무는 워낙 일이 바쁘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낯섦을 잊는다. 밤근무는 어르신들이 주무시는 시간이다. 당연히 고요한 시간이다. 우리 팀과의 밤근무는 이제 편안하다. 밤의 고요를 즐길 여유도 있다. 다른 팀과의 밤근무는 피하고 있었다. 낯선 이들과 밤을 지내는 일이다. 나에게는 낯섦 과목의 상급 과정이다.


이제 상급 과정으로 승급할 때가 되었나 보다. 결국 피하던 다른 팀과의 밤근무에 걸렸다. 시간표 짜는 복지사에게 사정을 했다. 일 더해도 좋으니까 우리 팀과 하게 해 달라고.

도저히 바꿀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얼마 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을 때 내가 실수를 한 탓이지 싶었다. '시간표 바꿔도 되죠' 하길래 '네 언제든 어디든 괜찮아요' 했었다. 내가 내 발등을 찍었다.


처음으로 다른 팀과 야근을 했다. 낮근무는 여러 번 해 본 팀이다. 그래도 함께 밤을 지나야 한다는 부담감은 여전했다. 마음의 방어막이 풀가동 됐다. 시간이 지나며 이 분들도 나처럼 낯섦에 힘들고 있음이 보였다. 낮근무 때는 보지 못한 모습이다. 이 분들도 낯가림이 있는 분들이었다.

서로 낯섦을 견디며 밤을 지새야 했다.  이 낯섦을 어떡해야 할지 머뭇거린다.   서로 그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낯섦은 익숙함이 되어 갔다.


결국 낯섦을 극복하는 방법은 버티는 것이었다. 버텨서 낯섦이 익숙함이 될 때까지 말이다. 낯섦을 견디지 못해 무던히도 도망쳤다. 낯섦이 싫어서 던져버린 수많은 기회들을 떠올린다. 또 낯섦이 무서워 버리지 못했던 일들을 생각해 본다. 낯섦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조금 더 과감했더라면 달라졌을 삶을 생각해 본다. 지금과는 정말 다른 삶이었을 거다.


젊을 때는 더 많은 기회가 있었다. 낯섦 뒤로 숨지 않고 그 파도를 타야 했다. 늦은 나이에 그 파도에 올라탔다. 더 이상은 숨지도 않겠다. 도망치지도 않겠다.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훗날 죽음의 자리에서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최소한 해 보기는 했다고. 그리고 오늘도 버틴다. 낯섦이 익숙함이 될 때까지다. 낯섦을 극복하는 방법이 별 거 아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