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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망 Feb 11. 2024

와! 맛있다.

먹을 수 있는 축복

와! 맛있다. 한 입 떠 넣어 드릴 때마다 감탄사다. '어찌 이리 맛있노!' ' 작게 말고 큰 거도!'  많이 좀 달란 뜻이다. 너무 맛있어서 어쩔 줄을 모르신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이리 큰 일이었다. 맛을 보며 음식을 먹는 것이 축복이다.


흡인성 폐렴으로 한동안 경관식을 하신 분이다. 음식을 삼키는데 어려움이 있는 분이다. 연하곤란이라고 말한다. 식도로 잘 넘어가야 할 음식이 폐로 흡인되는 경우다.

응급으로 병원을 다녀오셨다. 그때는 너무 심각해서 못 오시는 줄 알았다. 경관식을 하는 콧줄을 하고 오셨다.

음식이 폐로 흡인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입으로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하루 세 번 콧줄을 통해 유동식을 공급했다. 아주 심하지는 않지만 치매가 있으시다.

콧줄이 답답하니 빼버리신다. 다시 콧줄을 넣기 위해서는 가정 간호가 와야 한다. 한 번 올 때마다 2만 원이다. 가족들의 부담이다. 매일 콧줄을 뺐다. 어쩔 수 없이 손을 침상에 묶어야 했다. 물론 가족들의 동의 하에서다.


그런데 이 어르신이 데이비드 커퍼필드에게 사사를 받으셨다 보다. 탈출 마술의 일인자가 되셨다. 도대체 어떻게 하시는지 계속 콧줄을 빼셨다. 우연히 보니 상체를 옆으로 구부려 손에 얼굴이 닿게 하신다. 아크로바틱이 따로 없다.

어쩔 수 없이 손을 침상에 바짝 붙여 묶었다. 래도 매일 콧줄을 뽑는 묘기는  그치지 않았다.


결국 경관식을  포기하기로 했다. 액체 종류에 점성을 주는 연하제를 쓰기로 했다. 모든 음식에 연하제를 넣어서 삼킬 때 흡인이 되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제대로 씹어 삼키지도 못하시니  식사는 갈아서 드린다. 당연히 드실 수 있는 음식에 제약이 많다.


방에 들어가실 때마다 말씀하신다. '맛있는 거 좀 도. 아!' 아기 참새처럼 입을 벌리시지만 드릴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콧줄을 끼고 계실 때는 물조차 드릴 수 없었다. 물을 너무 찾으셨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가끔 보다 못하면 숟가락 끝에 물을 조금씩 드렸다. 삼키지는 못해도 입안이라도 적셨으면 해서였다. 어르신은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 하셨다. 어떻게 해도 시원하게 물을 마실 수는 없었다. 어르신이 화를 냈다.  삐져서 벽으로 돌아누우면 상황 끝이다. 시원하게 물을 들이길 수 있는 것이 축복임을 다시 깨닫는다.


오후에는 어르신들의 간식이 나온다. 요구르트, 과자, 과일 같은 것들이다. 그 어르신은 간식을 드릴 수가 없다. 요구르트 정도는 떠먹여 드린다. 다른 것들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요구르트를 드실 때마다 어쩔 줄을 모르신다. 그 놀라운 맛에 작은 눈이 커지신다.


요구르트와 바나나가 함께 간식으로 나왔다. 쿠크다스 1개를 부셔서 요구르트에 비볐다. 바나나는 얇게 저며서 접시에서 최대한 다졌다. 쿠크다스를 넣은 요구르트에 넣었다. 한 입을 드시더니 어쩔 줄 모르신다. 몸서리를 치신다. '와! 맛있다.'  조금씩 드렸더니 성에 안 차신다.  '작게 말고 큰 거도'  한 번에 많이 떠먹여 달라는 뜻이었다.


요즘은 뭘 먹어도 맛있지가 않다. 그냥 배가 안고프면 한다. 알약 한 알로 허기를 때울 수 있으면 한다. 먹는 것을 좋아했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있었다. 삶에 지칠 때도 맛있는 음식으로 힘을 얻기도 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입맛이 전 같지 않다. 그냥 허기만 때우면! 하고 산다.


이 어르신이 드시는 모습에 부끄럽다. 그 작은 맛 하나에도 감격하신다. 그 놀라운 느낌을 잃어버렸음을 깨닫는다. 음식을 맛보며 씹어 삼킬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던가! 어쩔 수 없어 먹는다 했다. 살아야 되니까 먹는다 했다. 얼마나 큰 오만이었는지 깨닫는다. 내 입으로 맛볼 수 있는 축복! 씹어 삼킬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이다.


목마를 때 시원한 물 한 모금의 느낌을 감사하지 못했다.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지 못했다.

혀로 맛볼 수 있음에 감사하지 못했다.

입맛이 없다는 말, 음식 먹을 생각이 없다는 말.

하지 말아야 할 말임을 깨닫는다. 물 한 모금도 감사할 일이다. 내 입에 들어가는 한 입 한 입의 음식이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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