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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망 Feb 08. 2024

바나나킥으로 시작된 인생 2막

나의 인생 2막은 영어 덕분이다.

교회 식구의 꼬마가 등장했다.  의기양양하게 손에 바나나킥 과자 봉지를 들었다. 난감한 표정의 아빠가 뒤따라 들어왔다. 엄마가 과자를 허락하지 않는데... 딸아이의 애교에 아빠가 또 패잔병이 되었다.


바나나킥.

나에게는 정말 추억이 많은 과자다  큰 아이는 바나나킥을 좋아했다. 그 바나나킥으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몸으로 익히는 영어였다. 많이 듣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소리로만 들리는 영어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최대한 아이들에게 영어라는 것에 느낌을 가지게 하려고 노력했었다.


읽어주던 영어동화책 중에 inch by inch라는 책이 있었다. inchworm이 이것저것 재고 다니는 이야기다. 이야기 자체는 큰 재미는 없다. 마지막에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새에게서 벗어나는 장면 정도다. 새에게 길이를 재어주겠다고 하며 도망을 간다. 의미를 이해할 나이쯤이면 재밌다고 웃을 수도 있다. 너무 어린아이들에게는 그냥 소리일 뿐이다. 물론 영어의 느낌은 저장된다고 믿는다.


어느 날 큰 아이가 바나나킥을 먹고 있었다. inch by inch의 inchworm이 바나나킥과 닮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I measure your hand라 말해 주며 바나나킥으로 재는 시늉을 해 줬다. 그리고 입에 쏙! I measure your arm  팔을 재고 바나나킥을 입에 쏙!

아이의 몸 여기저기를 재며 I measure your ~ 바나나킥을 1개 입에 쏙!


아이는 이 놀이를 너무 좋아했다.  바나킥을 먹을 때마다 하는 즐거운 놀이였다. 바나나킥으로 잴 때의 간지러움을 더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말로 설명은 전혀 하지 않았다. 몸으로 느낌으로 영어를 즐기게 해 줬다. 영어가 자기를 즐겁게 해 준다는 의식을 주려 노력했다.


 돌 쯤부터 시작된 I measure your~놀이였다. 다른 영어동화책들에서 얻은 액티비티도 좋아했었다. 그만큼 영어로 놀았으면 한 구절쯤 중얼거릴 만도 했다. 영어로 재밌게 놀아도 한마디도 못했다. 그 녀석이 먹은 바나나킥을 쌓으면 높이가 어떨까 궁금하다.


5살 터울인 딸아이도 바나나킥으로 I measur your~놀이를 하며 자랐다. 일단 평소에 마음대로 못 먹는 과자타임이다. 그 시간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딸아이의 I measure your~는 바나나킥으로 몸을 재는 데서 끝나지 않은 것이었다.


보통 여동생들이 오빠보다 배짱이 좋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큰아이는 소심하다. 여동생은 거칠 것이 없었다.

바나나킥으로 재는 놀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빠는 바나나킥 놀이를 자기 몸을 재는 데서 끝났다. 여동생은 집 안 모든 것에 눈을 돌렸다. 장난감을 재는 것은 기본이었다.


점점 판이 커졌다. 나중에는 방문을 재겠다고 했다. 자기 키를 넘어가는 길이다. 자기를 들어달라고 했다. 바나나킥으로 방문을 잴 때까지 들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그 짧은 바나나킥으로 방문을 잴 때까지 애를 들고 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자기도 힘들었는지 몇 번 해 보더니 포기했다. 자기 키가 닿는 안에서 바나나킥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은 갑자기 색연필로 재는 놀이를 시작했다. 바나나킥을 더 긴 색연필로 바꾼 것이었다. 그러더니 더 긴 자를 쓰기 시작했다. 베란다에서 쓰던 빗자루까지 잡았다. 의기양양하게 자기를 들어달라고 했다. 방문을 재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빗자루 덕분에 세 번 정도로 끝냈다. 어떻게든 방문을 재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도 대단한 엄마였다. 그 모든 과정에 I measure ~를

외치고 있었다.


엄마표 영어를 하며 말도 많이 들었다. 열심히 영어동화책을 읽어줬다. 영어동화책의 문장을 응용한 놀이를 만들었다. 몸으로 영어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영어는 입도 못 뗐다. 빨래집게 놓고 A도 모르는 게 우리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자라며 주변 엄마들의 말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학원을 안 보내고 쓸데없는 짓 한다. 혼자 잘난 줄 안다 그런 말들이었다.


 영어를 즐기는 아이로 만들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내 나름대로의 방법이었다.

영어를 계속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얼마나 아는지 확인하지 않기

영어가 재밌어서 스스로 찾아 공부할 수 있도록 키우기


결국 나의 엄마표 영어는 성공했다. 중학교 때부터 영어가 드러났다. 고등학교 때는 이미 학생 정도의 수준은 넘어섰었다. 당연히 영어공부에 시간을 쓰지 않았다. 더 여유로운 입시를 치렀다. 대학 들어가서는 둘 다 번역 알바를 했다. 용돈 벌이가 쏠쏠했다. 큰 아이는 졸업 전에 번역서를 출간했다. 둘째도 우리말을 영어로 번역하는 전문 번역가다.

우리말과 간극이 없는 영어를 하기 때문이다.


바나나킥으로 시작된 엄마표 영어였다. 어쩌면 그 바나나킥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딸아이의 경우다. 몸이 안 따라줘서 취업을 포기했다. 영어가 되기 때문에 출퇴근 없는 프리랜서 번역가가 되었다. 그렇게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큰 아이도 자기 삶을 잘 꾸려가고 있다. 내가 인생 2막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바나나킥을 그냥 못 지나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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