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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망 Feb 17. 2024

우리 신랑 잘 생겼어요.

아들에 대한 집착이 무섭다.

'우리 신랑 잘 생겼어요. 친구들이 우리 신랑 잘 생겼다고 다 부러워해요.' ' 못생긴 건 아니야. 하지만 그렇게 잘 생긴 건 아니야. 길 가다 돌아볼 정도는 아니잖아.' ' 아니에요. 우리 신랑 진짜 잘 생겼어요.' 며늘아이가 애가 탄다. 결국은 아들이 그만그만을 외쳤다. 점점 이야기가 이상해진단다.

자기를 가운데 두고 인물평을 하니 불편하겠지!


세상 어느 엄마에게 귀하지 않은 아들이 있을까? 불임이었다. 결혼 5 년 만에 힘들게 얻은 아들이다. 나에게는 귀한 아들이다. 남들이 콰지모도라 해도 나에게는 알랭드롱인 아들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이다. 자라면서 엄마 가슴을 어지간히 쪼그라들게 한 놈이다. 그래도 아프지 않았던 것은 그렇게 소중한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귀한 아들에게 집착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노력했다. 시어머니의 남편에 대한 집착으로 내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집착도 습관이라 생각했다. 나도 시어머니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아들을 위해 몸부림치며 기도했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어느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남들 보기에는 내가 아들이라면 정신을 못 차린다 했다. 죽어라 책을 읽게 하고, 아무리 해줘도 Hello 한마디 못하는 아들에게 영어를 해 준다고 열성을 다 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공부하며 인생을 꾸려나갈 힘을 길러 주는 것이 나의 목적이었다. 그리고는 나비처럼 훨훨 내 품을 떠나 날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일곱 살 무렵이었다. 함께 자연관찰 비디오를 봤었다. 어미 살모사가 기어가면서 새끼를 낳는 장면이 나왔다. 새끼가 담겨 있는 양막 주머니를 낳아 놓고는 어미는 갈 길을 가 버렸다. 나뭇가지 위에서 새끼를 낳은 어미는 그렇게 새끼가 들어 있는 양막 주머니를 떨궈 놓고는 또 갈 길을 가 버렸다. 그때 결심했었다. 살모사 어미가 되기로! 떠나보낼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보내도록 항상 준비하며 살기로 했다. '위임 맡은 양육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아이들을 키울 때의 내 기도 제목이다.


아들이 대학을 들어갔다. 학교가 집에서 가깝지만 독립을 원했다. 남편은 반대했지만 나는 찬성했다. 처음 몇 번은 반찬을 해 주기도 했다. 슬쩍 알아서 해 먹으라고 밀었다. 철저하게 스스로 삶을 꾸려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남편도 학교 다닐 때 자취를 했다. 시어머니는 일주일에 2~3회를 좇아다니며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남편은 내가 아들이 먹을 것을 제대로 챙기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다. 엄마가 돼서 할 일을 안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아들에게 혼자 해나가야 한다고 얘기를 했다. 가끔 먹을 것을 해 주기는 했지만 거의 놔둬 버렸다. 다행히 아들은 내가 말하는 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를 했다.


여자 친구가 생기기 전까지는 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지였다. 아들은 나에게 책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책이나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여자 친구가 생긴 뒤로는 그런 대화가 없어졌다. 살짝 섭섭한 마음이 들어올 뻔했다. 거기서 지면 나도 아들에게 집착하는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다시는 아들에게 책이나 작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들이 미안했는지 선물을 했다. 희랍어 원전 번역본인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나는 그 책으로 다시 삶의 목적을 찾았다. 영어 원서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싶다는 인생 2막의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엄마 마음을 아는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작년 봄에 결혼을 했다. 시집살이 모질게 한 나는 절대 시어머니 짓 안 하겠다 맹세했다. 블로그에 시어머니 짓 안 하겠다고 결심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시어머니 짓의 근본 원인이 무얼까 생각해 봤다. 내 아들이 잘났다는 착각에서 시작된다. 나에게 잘난 아들이면 그걸로 됐다. 객관적으로 잘난 조건 필요 없다. 엄마에게 잘난 아들이라는 이유가 전부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 집착하는 것으로 정점을 찍는다. 우리 시어머니도 아들에 대한 집착으로 결국 아름답지 못한 마지막을 맞이했다.


나는 결혼을 하고 한 주도 빠짐없이 시댁에 가야 했다. 시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집착을 그때는 몰랐다. 시댁에 가면 시어머니는 아프다고 누워 있을 때가 많았다. 남편은 바로 약국으로 뛰어야 했다. 아들을 당신에게 묶어 두기 위한 시어머니의 병이었다. 시어머니는 몸이 약해서 항상 아픈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막상 치매 때문에 모시게 되면서 건강한 분임을 알게 되었다. 10년 가까이 모시면서 감기 한 번 제대로 하신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아들에 대한 집착임을 알게 되었다. 시어머니의 집착에 호응해야 했던 남편도 자기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던 것 같다. 자기 어머니니 절대 말은 안 한다. 어쩌면 그 집착에 호응했던 효자라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 싶다.


내가 살아왔던 시간들을 며느리에게 겪지 않게 하려 한다. 조금이라도 내 아들이라는 생각을 안 하려 한다.

결혼식날 사부인이 '나는 보냈어요' 하셨다. 나는 거기에 대고 '아들 하나 드릴게요. 내가 보냈어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명절이든, 휴일이든 처가에 가서 놀라고 한다. '네 아내가 편하고 즐거워야 네가 편하다는 것을 절대 잊으면 안 돼' 단속을 한다. '네가 지켜야 할 사람은 네 아내야. 엄마 아빠 때문에 네 가정이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원칙을 정확히 해' 보기만 하면 잔소리를 한다. 아들이 자기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먼저 잘해야 한다. 아들에게 절대 집착하지 않기, 아들은 며느리 꺼!


아들에 대한 집착을 안 가지기 위해 자주 안 보려 한다. 꼭 일이 없으면 연락도 안 한다. 나는 1년에 두세 번 생일에나 보자 한다. 며느리는 그래도 자주 보자고 한다. 자주 보다가 아들에게 집착이 생길까 무서워 피하는 것을 모른다. 무슨 말을 들어도 며느리 편에서 이해하려 노력한다. 이미 성인이 된 아이들이다. 죽을 쑤든, 밥을 먹든 자기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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