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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망 Feb 29. 2024

첫 번째 덕질을 끝냈다.

인생 2막 버킷리스트- 영어 원서 읽기 프로젝트

드디어 첫 번째 덕질을 끝냈다. 한 달 가까운 투쟁의 결과다. 516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원서를 읽었다.

 내 삶에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물론 꿈은 꾸었다.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고 앉아 영어 원서를 우리말 책 읽듯 편안하게 읽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살아생전에 이런 일이 가능할 줄 어찌 알았을까? 나이 들어서 두꺼운 원서를 읽는 일이 말이다. 나 자신이 너무 대견하다.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어깨도 토닥여 주고, 엉덩이도 툭툭 치며 '잘했어' 칭찬을 해 주고 싶다.


릭 리오르단의 책을 덕질하기로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스토리가 재미있다. 책을 자꾸 읽고 싶게 하는 힘이 있다. 어려운 원서이지만 어떻게든 읽고 싶게 한다. 마지막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니까. 결말이 어떻게 끝나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참았다. 결말을 알고 나면 아무래도 어렵게 원서를 읽는 것을 포기할 것 같았다. 고맙게도 딸아이가 협조를 해 주었다. 매일 두꺼운 원서를 들고 고군분투하는 엄마를 격려했다. 결말을 스포해 주고 싶지만, 끝까지 읽게 하려면 안 해 줄 거라고.


릭 리오르단의 RED PYRAMID를 읽으며 책이 재미있으면 영어의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음을 다시 느꼈다. 물론 아직은 나에게는 많이 힘든 일이다. 그만큼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매일 도트 타이머를 켜 놓고 1시간을 읽었다. 그 1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책은 너무 재미있다. 그만큼 내 영어 실력이 안 따라준다. 1시간을 몸부림치며 읽어도 10페이지도 못 읽는 날도 있다. 다행히 잘 넘어가면 20  페이지 정도다. 도대체 남아 있는 분량이 줄지를 않았다.


결말이 너무 궁금했다. 딸아이에게 RED PYRAMID를 한글로 번역해 놓은 것이 없냐고 물어봤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서였다. 분명히 한글로 번역한 책이 있을 거라고 찾아보라고 했다. 당연히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절대 보지 마라고 했다. 시간이 걸려도 참고 그냥 원서로 보는 것이 좋다고 말이다. 원서로 보는 것이 더 좋은 것을 누가 모르냐고! 결말이 궁금해서 숨 넘어갈 지경이라고!  내 실력은 안돼서 아직도 책이 1/3이 남아 있단 말이다.


우선 번역된 책을 읽고, 궁금증을 해결한 다음에 원서를 읽겠다는 생각이었다. 내용이 궁금해서 병이 날 지경이었다. 원서를 끝까지 읽으려면 추리 소설이 가장 좋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다음 덕질은 추리 소설이다. 지금은 소용도 없는 다음 덕질할 거리까지 끌어낼 만큼 애가 탔었다.

딸아이가 왜 번역서를 읽지 마라고 하는지 이유를 말해 주었다. 얘기를 듣고는 바로 그냥 원서 읽겠다 했다.  fiery man을 '화염남자'라고 번역해 놓았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RED PYRAMID의 최대 빌런인 'SET'를 '화염남자' 정도로 생각하고 읽을 수 없다 싶어서였다. 원서를 읽는 맛을 말하는 이유가 이런 거였구나 싶었다.


마침 감기가 지독하게 걸렸다. 며칠간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 잠을 자면 좋으련만, 이 몸은 무슨 저주를 받았는지 너무 아프면 잠도 못 잔다. 그냥 포기하고 RED PYRAMID를 계속 읽었다. 집중해서 읽으면서 점점 읽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 그 며칠에 다 읽겠다는 욕심까지는 없었다. 그냥 결말에 어느 정도 접근이라도 했으면 했다. 하루를 꼬박 읽으니 끝이 보였다. 함께 안압도 마구 올라갔다. 머리도 더 아팠다. 잠자리에 들며 내일은 안 읽어야지 했다. 그놈의 결심은 하루를 못 갔다. 결국 아침을 먹고는 또 책을 잡았다. 안압이 올라간다고 약까지 먹었다. 해 지기 전에 결말을 봤다.


책의 마지막 결말을 봐서 좋은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해냈다는 것에 넘치도록 행복한 것을 알았다.

하고는 싶었지만 너무 먼 길이었다. 두꺼운 원서를 읽는다는 것이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현실감이 없었다. 우리 아이들이 두꺼운 원서를 우리말 책 읽듯 읽고, 쓰고, 유창하게 회화를 해도 아기 때부터 채워 줬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영어 원서 읽기를 인생 2막의 버킷리스트로 정해 놓고도 가능할까 했었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 해 보면 조금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가능했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아무래도 단어가 부족해서 더 디테일한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단어 공부를 따로 해야겠다 싶다. 거기에 아직은 읽는 속도가 너무 더디다. 이 부분은 앞으로 원서를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해결될 일이라 생각한다. 또 한 가지 가끔은 집중해서 충분한 시간을 원서 읽기에 투자할 필요가 있음을 체험했다. '매일 1시간을 꾸준히'가 기본이다. 거기에 한 번씩 몰입하는 시간이 더해진다면 원서 읽기가 더욱 날개를 달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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