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간에 다 읽을 수 있어요.
나의 인생 2막의 비전은 이미 시작 되었다.
이거 세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어요.
뻥치지 마! 500페이지가 넘는데 어떻게 세 시간에 다 읽어.
읽을 수 있어요. 쉬워요.
그래! 그럼 세 시간에 다 읽으면 내가 만원 준다.
진짜죠! 시작해요. 시간 재세요.
릭 리오르단의 GREEK HEROES를 세 시간 안에 읽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시간을 재라고 하더니 책을 잡고 읽기 시작한다.
나는 옆에서 역시 릭 리오르단의 GREEK GODS를 읽기 시작했다.
배틀 하자는 뜻은 아니었다.
온라인 독서모임의 매일 1시간 인증을 위해서다.
이 녀석은 배틀로 받아들였다.
나랑 놀잔다!
우리 교회 목사님 첫째 아들 녀석이다.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영어 동화책으로 영어를 가르친 녀석이다.
벌써 5년째다.
이 녀석의 영어 선생님이 된 햇수다.
우리 아이들을 엄마표 영어로 키우는 것을 지켜본 목사님 사모님의 부탁이었다.
학원 다니며 문법 위주의 영어를 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우리말처럼 영어를 받아들이기를 원했었다.
나 역시 아이들이 학원에 얽매여 영어공부 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마음이 맞아 목사님 아들들의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
2주에 한 번 영어동화책을 빌려다 주었다.
조금씩 단어 개수를 늘려가며 책을 조절해 주었다.
가끔 필사도 시키고, 중학 문법책인 3800제 정도를
공부하도록 가이드를 해 주는 정도였다.
역시 아이들이라 내가 원하는 만큼 열심히 읽지는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책을 읽게 했다.
자막을 뺀 미드나 영화도 보라 했다.
보다가 자막을 넣었다고 서로 고자질을 하는 바람에 미드 보기는 취소했다.
첫째는 중3 정도 되었을 때 영어책을 읽는 아이가 자기하고 한 아이 밖에 없다고 뿌듯해했었다.
그래도 계속 읽어야 한다고 닦달을 했다.
자기 생각에 영어책을 읽으니까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영어책 읽기가 흐지부지 되면서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1을 지나며 영어가 아직 안된 것을 깨달았던 모양이다.
지난겨울 방학에 특급 처방을 내렸다.
뭐가 됐든 하루 3시간 이상 영어를 하기.
매일 도서관 가서 영어동화책을 1~2시간 읽기.
자진해서 시간과 책 사진을 인증하겠다고 했다.
원래 영어책을 읽던 녀석이라 빨리 감각을 회복했다.
영어동화책 문장 속에 문법이 다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았다고 흥분을 했다.
그래도 5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을 세 시간에 읽지는 못할 거라 생각했다.
나도 영어 원서를 읽고 있다.
영어 원서 읽기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이틀을 야근을 한 주일 오후였다.
영어책을 읽으면서도 졸려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도저히 못 견뎌서 잠시 눈을 붙이려고 책을 내려놨다.
30분에 80페이지 읽었어요
뭐라고?
30분에 80페이지 읽었다고요.
난 11페이지 읽었는데!
밤에 계속 못 주무셔서 그렇죠. 괜찮아요.
이 말뜻은 자기가 이겼다는 뜻이다.
님아! 나 너랑 배틀한 거 아니라고.
30분에 80 페이지면 세 시간에 그 책을 다 읽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만큼 영어책 읽기가 된다는 뜻이었다.
너무 좋아서 졸음이 다 달아나 버렸다.
만원 아니라 10 만원이라도 아깝지 않았다.
처음 나와 영어를 시작할 때가 6학년 때다.
영어를 조금 했었다는데 알파벳 정도였다.
기본 단어조차 알지 못하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5년 만에 500페이지 원서를 세 시간에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뿌듯함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부담 없이 즐겁게 영어를 하게 한 열매를 보는 즐거움이었다.
그래도 조금 더 열심히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 녀석도 이제야 그 후회가 몰려온단다.
하라고 할 때 더 열심히 했으면 지금 영어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단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
내 인생 2막의 비전이다.
처음 아이들과 영어 공부를 시작한 5 년 전은 인생 2막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인생 2막의 비전을 실천하고 있었다.
재미있게 영어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삶이다.
물론 입시를 치러야 하니 단어도 시키고, 문법도 시킨다.
그래도 기본은 영어동화책이다.
웬만한 아이들보다는 영어 공부 자체를 힘들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만하면 내 인생 2막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만원을 줬냐고?
그 자리에서 책을 끝까지 안 읽어서 못줬다.
정말 주고 싶었다.
내가 못 견디고 잠이 들어버려서란다.
경쟁자가 자버리니 재미가 떨어진 건 이해한다.
옆에서 이 녀석도 잠이 들어 버렸다.
나중에 결국 다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