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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망 May 08. 2024

이 좋은 봄날에

봄을 누릴 자유를!

이 좋은 봄날에!

꽃은 만발하다.

사방이 꽃으로 가득한 계절이다.


"날씨도 너무 좋은데 어르신들 정원 산책 하셔도 될까요?

토요일이라 사무실이 출근을 다 안 해서 지원 인력이 없어서 안 돼요.

날씨가 너무 좋잖아요. 꽃도 저렇게 예쁜데..

어제도 정원 산책 하셨잖아요.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잖아요.

걸을 수 있는 어르신들만 바람 좀 쐬드리면 안 될까요?

선생님, 나가시고 싶으세요?"

대화는 여기까지다. 어르신들께 산책을 시켜드리고 싶었다. 졸지에 내가 일 하기 싫어서 나가려고 머리 쓰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우리 층 담당복지사다.


바깥 날씨는 너무 화창하다. 밖으로 보이는 정원의 잔디는 초록이 싱그럽다. 꽃은 만발하다.

햇볕이 너무 환하다. 응접실은 실내라 어둡다. 저 화사한 햇볕이 들어오지를 못한다.

어두침침한 응접실이다. 어르신들은 소파에 주르륵 앉아계신다. 할 일 없이 TV만 보고 계신다.

이 좋은 봄날을 누리지를 못하신다.


요양원은 기본적으로 어르신들의 자유로운 출입이 제한된다.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층 이동을 위해서는 반드시 요양보호사나 다른 사무실 직원이 동행을 해야 한다. 엘리베이터 자체가 누른다고 열리지를 않는다. 직원들에게만 지급되는 보안패스가 있다. 그 카드가 있어야만 엘리베이터가 움직인다.

아무리 봄볓이 좋아도 그림의 떡이다. 내가 나가고 싶다고 언제든 나가는 자유는 없다.


처음 요양원 근무를 하며 요양원도 괜찮다 싶었다. 다들 요양원  들어가면 큰일 나듯 말하는 것이 과장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가족들의 돌봄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필요한 곳이다.  집에서 가족들이 부양을 한다면, 집안이 항상 편치 않았겠다 싶은 어르신들도 많다. 나이 들면 고집이 세진다. 거기에 한 성질 하시는 분들이 많다. 치매까지 더해지면 정말 답이 없다.


지금은 요양원이 감옥처럼 느껴진다. 눈 오는 겨울날은 설경이 너무 아름답다. 추워서 못 나가니 어차피 관람용 날씨다. 가을 단풍도 좋았다. 역시 쌀쌀한 날씨에 창으로 바라보면 만족이었다.

 이렇게 좋은 봄날을 맞았다. 햇볕은 화창하다. 꽃은 가득하다. 창 밖으로 관람하고 끝낼 수 없다. 나가서 햇볕을 쫴야 한다. 싱그러운 잔디도 밟아줘야 한다. 부드러운 꽃잎도 만져 봐야 한다. 그 꽃에 코를 대고 꽃향기도 맡아줘야 한다.


요양원에 계시는 한 그 자유는 없다. 일주일에 서너 번 한 시간 정도 산책을 시켜 드린다. 거기까지다. 내가 나가서 봄을 즐기고 싶어도 불가능이다. 내가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자유가 없다. 안전과 자유 중에서 안전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우리 요양원은 정원도 있어 산책이 가능하다. 빌딩의 몇개층으로 운영되는 요양원은 아예 바깥바람을 쐰다는 개념조차 없다. 감옥이 따로 없다.


'우리 안  나가?

나가고 싶은데.'

한 어르신이 말씀하신다.

괜히 미안하고 죄지은 듯하다.

1층에서 커피라도 뽑아다 드리겠다고 달랬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갑자기 용기가 생겼다.

어르신들께 이 봄을 마음껏 누리게 해 드리는 일이다.

내가 일 하기 싫어 꾀 피우는 사람으로 찍혀도 그만이다.


'날씨가 너무 좋은데 어르신들 산책시켜 드리면 안 될까요?'

이번에는 국장님께 읍소했다.

'오! 돼요. 그렇게 하세요. 걸을 수 있는 분들만 모시세요.

커피도 바깥에서 드시게 해요.'

내가 들고 있는 쟁반을 보시더니 말씀하신다.

'야외 카페네요'

우리 층 담당복지사의 좋지 않은 얼굴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신나게 올라와서 나가시자 했다. 모두 우르르 일어나신다.

어르신 한 분은 어느 틈에 당신 모자를 전부 들고 나오셨다.

다른 어르신들 머리에 하나씩 씌워주신다. 모두 나가고 싶었던 거다. 차마 말씀들을 못하고 눈치만 보고 계신 거였다. 항상 거침없이 말씀하시는 걸크러쉬 어르신이 총대를 멘 것 같았다.


병아리 떼 쫑쫑쫑!

산책을 나섰다.

문을 열고 나가며 어르신들의 탄성이 쏟아진다.

'햇볕이 너무 좋다.

바람도 너무 좋네'

행복했다.

아이들 봄나들이 나온 듯 기뻐하시는 모습이었다.


기왕 해 드리는 서비스다.

못 부르는 노래도 한 곡 불러드렸다.

소양강 처녀를 혼자 끝까지 불렀다.

노래 가사를 못 외워서 항상 흐지부지였다.

웬일인지 노래 가사도 다 생각이 난다.

손뼉 치며 노래도 부르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눴다.

물론 달짝지근한 커피도 한 잔씩 하셨다.

이렇게 좋은 봄날을 누렸다.


건강관리 잘해야지.

운동 열심히 해야지.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너무 늙어 누군가에게 짐이 되기 전에는 요양원은 피하고 싶다. 추워도 눈 오는 날 나가서 눈도 맞으며 살고 싶다. 쌀쌀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낙엽도 밟고 싶다. 봄날에는  흩날리는 꽃잎도 맞으며 살고 싶다. 뜨거운 여름날의 햇볕도 누리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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