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망 Aug 15. 2024

영어 동화책과 함께 한 시간들

인생 2막 버킷리스트 - 영어 원서 읽기

오랜만에 도서관 나들이를 했다.

예전에는 자주 어린이 도서관엘 갔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그림이 예쁜 영어 동화책을 쌓아 놓고 읽는 시간은 나에게는 힐링 타임이었다.

이제는 일을 시작해서 그런 편한 시간을 마음껏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나의 인생 2막을 위한 여정은 멈추면 안 되니까!


보고 싶은 영어 동화책을 찾다 보면 우리 아이들과 추억이 많은 책들을 만난다.

그 책들을 함께 하며 쌓았던 추억들이 정말 많다.

엄마가 읽어 주는 영어 동화책에 반응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쿠션을 찾아다니던 아이들.

영어 동화책 내용을 따라 우리 집은 숲 속이 되기도 했고, 배를 타고 떠나는 바다가 되기도 했다.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는 마을이 되기도 하고, 신나는 물건이 많은 시장이 되기도 했다.

가장 좋아했던 것은 곰이 겨울잠을 자는 동굴이 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모두 어른이 되었다.

나에게는 지나간 추억이지만 그 책들을 볼 때마다 아이들의 그 시절 모습이 떠오른다.

아마도 내가 영어 동화책을 더 좋아하는 이유일지도..

나이 먹으니 추억만 먹고사는 것 같기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엄마표 영어라는 것을 했다.

영어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시험과목이지만, 원어민에게는 그들의 언어다.

당연히 언어를 배우는 과정으로 영어를 익히는 것이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프랑스어 선생님께 배운 대로.

내가 영어를 잘 못하니 집에서 영어를 사용하며 이중 언어 환경을 만들어 줄 수는 없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책이었다.

일단 그냥 영어를 들이붓는 방법.

다음은 영어가 재밌다는 느낌을 아주 머리에 꽉 새겨 주기.

두 가지가 주요 전략이었다.


영어가 재밌다는 느낌을 만들어 주기 위해 영어 동화책을 많이 이용했었다.

그냥 읽어 준들 무슨 소리인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영어 동화책의 내용과 연관된 놀이를 만들어 몸으로 영어를 익히도록 했다.


THE BEAR WENT OVER THE MOUNTAIN이라는 동화책이 있다.

THE BEAR WENT OVER THE MOUNTAIN

THE BEAR WENT THROUGH THE FOREST

THE BEAR WENT UNDER THE BRIDGE

THE BEAR WENT INTO THE CAVE

AND THEN HE WENT TO SLEEP


문장을 반복하며 전치사를 익히도록 만들어진 책이다.

노래로 따라 부르도록 악보가 있는 책인데, 내가 편한 대로 곡을 붙였다.

THE BEAR WENT OVER THE MOUNTAIN을 부르며 의자 위를 넘어가게 했다.

THE BEAR WENT THROUGH THE FOREST를 부르며 통로를 만든 의자 2개의 사이를 지나가게 했다.

THE BEAR WENT UNDER THE BRIDGE를 부르며 식탁 밑을 기어가게 했다.

THE BEAR WENT INTO THE CAVE는 소파나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AND THEN HE WENT TO SLEEP은 쿠션이나 베개에 엎어지며 코를 고는 시늉을 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모르고 엄마 손을 잡고 집안을 돌았다.

조금씩 상황에 익숙해지면서 나름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노래를 따라 하거나 단어 하나라도 말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엄마와 하는 놀이는 재미있었나 보다.

많이 익숙해지고는 다른 과정은 엄마의 노래로 대충 듣기만 하고 마지막 부분이 되면 눈이 반짝거렸다.

AND THEN HE WENT TO SLEEP에서 자는 시늉을 하고 싶어서였다.

책을 읽어 주다가 이 마지막 부분이 가까워지면 갑자기 바빠진다.

좋아하는 베개를 가져와서 엄마의 노래가 끝나는 지점에서 베개에 엎어져야 했다.

아이들은 5살 터울인데 신기하게도 좋아하는 부분이 둘 다 같았다.


아들이 가장 좋아했던 영어 동화책 놀이는 SAIL AWAY라는 책이다.

아이들이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태풍도 만나고 하는 이야기다.

아이를 얇은 이불에 앉혀서 집 안을 끌고 다니며 책에서 나오는 상황을 연출해 주었다.  너무 짧아서 거의 단어 한 두 개 수준이라 외워서 놀아 주었다.

남자 아이라 그런지 태풍 흉내를 내며 이불을 거칠게 흔드는 것이 좋았던가 보다. 걸핏하면 이불을 끌고 와서 놀아 달라는 바람에 이불이 여러 개 헤어졌다.


FLYING이라는 동화책도 좋아했었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가며 산도 넘고, 도시도 넘고, 강도 넘고 하는 이야기다.

아이의 배를 발 위에 얹고 하늘로 띄워서 영어 동화책의 순서대로 얘기를 해 주며 놀아 주었다.

제일 마지막에 비행기가 착륙하는 장면이 있는데 DOWN DOWN DOWN이라는 문장이 있다.

아이들이 FLYING을 정말 좋아했었다. 좋아하면서도 겁이 많아서 무서워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무서우면서도 그 놀이를 해 달라고 억지로 바닥에 눕히고 내 발을 자기 배에 갖다 대는 것은 무슨 심정인지..

어느 날인가 갑자기 놀랄 일이 생겼다.

FLYING놀이를 하던 아이가 갑자기 DOWN DOWN DOWN 하고 소리를 쳤다.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구나 싶어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딸아이는 MARKET STREET라는 책을 좋아했었다.

A로 시작하는 단어부터 Z로 시작하는 단어를 차례로 가르쳐 주는 책이다.

아이가 MARKET에서 이런 단어의 물건들을 산다는 내용이다.

집안의 여러 물건을 이용해서 책의 내용과 비슷한 상황을 만드는 놀이를 했었다.

책과 똑같은 물건이 없으니 알파벳만 맞춰서 놀이를 했다.

집안의 모든 살림이 장난감이 되는 수순을 피할 수 없었다.

덕분인지  딸아이는 오빠보다 훨씬 다양한 방법으로 영어 공부를 찾아서 했다.


내 삶을 살아 보고 싶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영어 원서 읽기다.

지금은 영어동화책을 읽을 수준은 한참 지났다.

그래도 나는 영어 동화책이 좋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영어동화책을 보면 세월을 잊는다.


딸아이는 자주 엄마가 영어동화책에 마음대로 노래를 붙였던 것들을 흥얼거린다.

'그거 엄마가 마음대로 곡 붙인 건데'

'알아. 그래도 이미 입에 촥 붙어서 어쩔 수가 없음'

우리는 지금도 함께 엄마 작곡 영어 동화책 가사 노래를 부른다.


작가의 이전글 영어 원서는 가슴으로 읽어야 되나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