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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망 Sep 09. 2024

청력을 잃으며 세상에서 도망친 엄마

들을 수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엄마는 청력을 잃으며 세상에서 도망쳤다.

정확히는 스스로 고립을 택했다.


엄마는 원래도 보청기를 불편해하시기는 했지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보청기를 쓰시기는 했었다.

엄마는 매일 집 앞 산으로 운동을 다니시는데 산에서 만나는 동네 할머니들과 얘기하는 것도 즐기셨다.

 불편하셔도 산에 갈 때는 보청기를 하고 가셨다.

우리 엄마는 은근히 수다를 좋아하신다.

사교성도 좋으셔서 누구하고 든 얘기도 잘하신다.

원래는..


1년 전쯤.

엄마는 산에서 보청기를 잃어버리셨다.

며느리가 250 만원이나 주고 해준 보청기를 잃어버리셨다고  얼마나 애타 하셨는지..

아들이 많이 벌어다주니 괜찮다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비싼 보청기나 잃어버리고 다니는 모자란 노친네가 되었다고.

제대로 하는 일 없이 사고나 치는 당신이 이제는 짐이 되었다고 한탄이 끝이 없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고 침대 밑에서 보청기  한쪽을 찾았다.

나머지 한쪽은 앞산 어딘가 고이고이 묻어둔 듯하고.

아마도 산에서 한쪽 보청기를 잃어버리신 것을 집에 와서 깨달으시고는 다른 쪽 보청기를 엉겁결에 아무 데나 두신 것 같았다. 그리고는 보청기  양쪽을 모두 산에서 잃어버린 거로 기억을 하신 듯하다.


나머지 한쪽도 잃어버릴까 무서워 아예 보청기를 하지 않고 앞산으로 운동을 다니셨다.

보청기를 안 꼈으니 뒤에서 누군가 불러도 뒤돌아 답을 할 수도 없었고,

어쩌다 아는 사람을 만나도 들을 수가 없어서 대화가 불가능했다.

귀가 안 들린다는 말을 하기 싫어서 대충 알아들은 척하고 집에 일이 있어 가봐야 한다고 도망을 치셨다.

나중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아예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시간에 운동을 가셨다.


엄마는 동생 가족과 함께 사신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가족과 얘기하는 것조차 피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잘 안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뭐라고 답해야 할지 너무 힘들어서..

식구들과 있는 시간을 되도록이면 피하려고 하신다고 하셨다.


막상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을 안 하게 되면서 너무 편해지셨단다.

듣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든 들으려 몸부림치는 것을 안 하니 살 것 같다고.

무언가를 배우려고 몸부림치며 다녔던 동사무소 문화센터도, 교회 노인 학교도 모두 놓아버리셨다.

오로지 주일에만 한쪽 남은 보청기를 하고 예배를 가셨다.

어떻게든 해 보려고 하던 몸부림을 포기하고 나니 편하다는 엄마가 나는 불안했다.

안 들린다고 그냥 사람 안 만나는 선까지면 봐줄만했다.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투쟁해 왔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엄마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을 비관하고 있었다.

엄마를 보러 갈 때마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잘 지내는 척하셨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제 뭘 할 수 있을까?

이제는 정말 인생 끝났지!'

언듯 언 듯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혼자 하는 독백을 본인은 몰랐다.

그 독백이 나에게는 가슴에 꽂히는 화살이었다.


노인 우울증은 치매로 이어지기 때문에 노년에는 노인 우울증을 정말 조심해야 한다.

세상과 단절되고 고립되는 생활이 노인 우울증을 부른다.

엄마는 이미 노인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다.

서울에서 어릴 적 친구들도 가끔 만나고 노년의 즐거운 삶을 누리고 계셨는데,

그저 고향섬으로만 가고 싶어 하시던 아버지한테 이끌려 먼 남쪽 바다, 섬으로 들어가셨었다.


아버지는 섬에서 즐거우셨지만, 엄마는 자식들 곁을 떠났고, 친구들 곁을 떠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셨다.

노인 우울증 진단을 받고 3년 정도 약을 드셔야 했다.

언제나 투사였던 엄마는 스스로 노력하며 노인 우울증을 이겨냈었다.

그렇지만 청력을 잃은  엄마의 상태는 다시 노인 우울증을 앓게 수도 있었다.


겨울을 지나며 엄마의 언어 표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짧은 시간이었는데..

불과 3~4달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이미 엄마는 단어 선택에 스스로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나와 대화를 할 때도 생각을 해 가면서 언어 표현을 해야 했다.

엄마의 얼굴도 어두워지고, 굳어져가고 있었다.

나중에 하시는 말씀이 스스로 단어가 생각이 안 나고,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

정말 무서웠다고.


그때, 엄마는 원래도 좋아하던 중국 드라마로 숨으셨다.

예전에는 '중국 드라마를 좋아한다.'였지만 그 당시는 중국 드라마를 보며 스스로를 지워가고 계셨다.

세상에서 도망친 엄마는 중국 드라마에 도피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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