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듣는다고 세상과 담쌓을 필요는 없다.
듣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글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엄마를 그 적막의 땅에서 끌어내야 했다.
이미 모든 의지를 던져 버린 엄마에게 무엇을 해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 항상 글을 쓰시던 엄마가 생각났다.
내가 기억하는 한 엄마는 항상 책을 읽으셨고, 일기를 쓰셨다.
생각나는 것들, 느끼는 것들을 평생 써 오셨다.
엄마의 꿈은 국문과에 진학해서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엄마를 낳아 주신 외할머니가 너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 꿈은 바람에 흩어진 연기가 되었다.
그래도 엄마는 글쓰기를 놓지 않으셨다.
내 어린 기억에,
아버지는 병석에 누워 계시고, 엄마는 생계를 위해 양장점을 하시면서도 책을 읽고 일기를 쓰셨다.
글을 쓰시다 너무 바빠서 미처 노트를 덮지 못해 본의 아니게 엄마의 일기를 훔쳐본 적도 많으니..
듣지 못해 대화를 할 수 없다면 글을 쓰면 되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나 혼자 너무 좋았다.
별 의미 없는 수다보다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글쓰기가 엄마에게는 특효약일 것 같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그 생각을 정리해야 글로 표현할 수 있다.
치매 예방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뇌자극이 필요하다.
글쓰기만큼 지속적인 뇌자극이 가능한 것도 별로 없을 것 같다. 거기에 글쓰기가 치매 예방에 더 좋은 것은 해마를 마구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들은 해마가 줄어든다. 치매가 아니라도 나이가 들고 머리를 안 쓰면 해마는 줄어든다.
치매 예방을 위해 더 필요한 것은 머리에 넣기만 하는 자극이 아닌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을 정리해서 뽑아내는 작업이다. 정보를 뽑아내며 글을 쓴다면 해마를 마구 자극하게 된다.
치매 예방을 위한 뇌자극에서 또 중요한 것이 감정이다.
아무리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있어도, 자기가 싫어하는 일이라면 부정적인 감정이 동반된다.
일단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나면 오히려 정말 안 하느니만 못한 자극이 된다.
치매 예방을 위해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를 되짚어 보는 일기를 쓰기를 권하는데, 여기서 강조하는 것이 부정적인 감정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역시 나는 안돼'. '다 틀렸어'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오히려 치매를 부르게 되고, 악화시킨다.
그냥 실수한 일이 있더라도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다' 정도로 끝내야 한다.
다행히 엄마는 원래 글쓰기를 좋아하셨다.
그리고 항상 하고 싶어 하는 일이다.
예전에 이모가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네 엄마가 제대로 공부하고 상황이 되었으면 박완서 님 같은 작가가 되었을 거다'
그만큼 엄마에게는 글쓰기에 대한 로망이 있다.
엄마가 제대로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도울 수만 있다면..
엄마의 열망이 합쳐지고, 노력이 합쳐진다면 엄마가 그 적막의 땅을 떠날 날이 올 것이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노인 우울증도 단번에 해결될 것이고.
엄마는 아직 치매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스스로를 고립하고, 무기력함 속에 빠져 있다면 노인 우울증이 올 거고, 그다음은 치매로 이어질 것이 뻔한 과정이다. 다시 엄마를 일으킬 수 있는 글쓰기를 하게 해 보기로 했다.
못 들으면 쓰면 되는 일이니까.
글로 쓰면 더욱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지 않은가!
엄마는 청력을 잃으며 세상과의 고립을 선택하면서 일기 쓰기도 놓으셨었다.
아마 일기 쓰기라도 계속 유지를 하셨으면 그렇게 빠른 시간에 단어를 잃어버리고,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함을 엄마를 통해 배웠다.
이 시간들이 나에게도 축복이다.
나도 어차피 엄마 나이가 될 것이고, 지금부터 잘 관리한다면 나의 노후는 더욱 빛날 테니까.
일기 쓰기도 안하니 세상 편하다는 엄마에게 다시 글쓰기 세포를 깨우는 일이 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