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나라니!
엄마는 나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싶었다.
엄마가 쓴 주제일기를 읽으며
가장 놀랐던 글이 있다.
나에게 큰 상처를 준
사람이 있었나요?라는
질문이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엄마에게 큰 상처를 줬다니?
내가 효녀도 아니고, 엄마에게
항상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이
바로 나라니!
내가 못 이룬 꿈을 딸에게
바랬나 보다. 어려서부터
밤에나 보는 부모를 대신해
오빠와 동생을 돌보며
일찍 철이 든 딸을 나는
커리어 우먼이 되기를
소망했다.
딸이 대학을 갈 때도
내 미래를 그리듯 딸의
학과를 선택해서 그렇게
가기를 원했으나 제
마음대로 대학도 가버리고
결혼도 내가 바라는 상대는
온갖 이유로 거절했다.
평생 전업주부로 사는 딸이
나에게는 상처였다.
대학을 내 맘대로 간 것은 인정.
반골 기질이 있어서 내 인생은
내 거라는 고집이 있었다.
지금은 치기 어린 그 결정을
조금은 후회한다.
결혼도 엄마가 원하는 자리는
모두 신랑감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왠지 마마보이들
같아서 싫었다. 마마보이는
아닌 것 같아서 선택했지만
결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마보이와 결혼했다.
커리어우먼이 되지 못한 것은
내가 몸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런 내 상황을
몰라준 엄마에게 섭섭한
마음조차 들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특이체질이라 약도 맘대로
먹을 수 없었다.
항상 아프고 힘들었지만
아프다는 말을 하기 싫어서
혼자 버티며 살았다.
서울로 대학을 와서 혼자
견뎌야 했던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엄마는 내가 몸이 약한 것은
알았지만, 내가 그 몸으로
버티며 살아내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을 쳐야
했는지를 짐작하지 못했다.
내 상황을 모르고 내가 한
선택에 대해 상처를
받은 엄마였다.
아마도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고 의지하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며
엄마의 꿈을 접어야 했던
그 상처 때문인 것 같다.
나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싶으셨던 거다.
이제 와서 커리어 우먼이
될 수도 없고.
엄마의 꿈을 이뤄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만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