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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망 Jan 13. 2024

산티아고는 개뿔!

꿩 대신 닭이다.

산티아고는 개뿔!

결국 평생의 버킷 리스트였던 산티아고 길을 걷는 꿈을 내려 놓았다.

유리몸이지만 언젠가는 건강해져서 산티아고 길을 걷겠다는 꿈이 있었다.

십대 때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게 된 때부터 지금까지 그 꿈을 버린 적이 없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내 몸의 상태에 순응하기로 했다.

몸에 순응한다 하면서도, 안될 것을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했던 꿈이었다.


왼쪽 네번째 발가락이 휘어진 상태에서는 오래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몇년 전 파리를 여행하며 발가락이 휘어진 상태에서 걷느라 거의 정신이 오락가락할 정도였다.

문제는 그 발가락이 휘어져서 그렇게 아픈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우연히 내 발가락을 본 딸아이의 성화에 못이겨 병원에 갔다.

의사는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있었다고 야단을 했다. 세상 무식한 아줌마가 되었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며, 내 몸의 상태에는 거의 무신경하게 살았던 시간이었다.


이미 휘어져서 굳어져 버린 발가락 뼈를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치매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어서 수술은 못한다 했다. 다행히 의사는 수술을 한다고 완전히 낫는다는 것도 아니라고, 일단 교정기를 써보자 했다.

2년간 발가락 교정기를 열심히 끼고 스트레칭을 했다. 어쩌면 산티아고 길을 갈 수도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통증이 많이 없어졌다. 사람이 간사해서 통증이 없어지니 교정기를 끼는 일에 게으름이 생겼다.

하지만 어느날엔가 산책을 하며 엄청난 통증을 다시 겪어야했다. 몇년 동안 노력을 했지만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의사는 수술을 하지 않고 관리를 하며 지낼 정도만 된 것도 감사하라 했다. 나는 다 나아서 산티아고를 가야 하는데. . 딸아이는 산티아고 길을 버스 타고 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뚜벅이가 되어서 그 길을 걸어야 한단 말이다.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내려 놓은 줄 알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간 죽을 것 같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양보호사로 인생2막을 시작했다. 나같은 유리몸으로는 절대 못할 줄 알았던 요양보호사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멀스멀 다시 산티아고가 내 안 어딘가에서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만 잘 관리하면 어쩌면

그 산티아고를 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허리를 다쳤다. 이미 허리가 안좋아서 허리를 쓰는 일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시어머니를 모시며 목디스크와 허리가 안좋아져 치료를 받기도 했었다. 이미 척추관협착증과 디스크가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내 산티아고는?

어떻게 해도 산티아고는 내가 갈 길이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한많은 산티아고 길에 대한 버킷리스트를 지워야 했다.


내 몸은 유리몸

휘어진 발가락

아작난 허리

산티아고는 개뿔!


가까운 산도 자신있게 올라갈 수 없는 상황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예전에는 몸이 약해도 언젠가는 산티아고를 가겠다고 걷기에 정말 열과 성을 다했다. 잘 걸어야 산티아고를 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많은 시간이 지났다. 결국 내 몸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인다. 치매 시어머니를 모시며 힘들고, 마음 아프고 상할 때마다 꿈을 꾸었다. 배낭을 메고, 모자를 눌러 쓰고, 지팡이를 짚고, 산티아고 길을 혼자 묵묵히 걷는 내 모습을. 그 길의 중간에서 만날 이방의 여행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아마도 함께 노래도 부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도 

영어를 놓지 않으려 했나 싶다. 이제는 그 꿈을 내려 놓는다.


나는 8톤 트럭이 되고 싶었나 보다. 원래 경차였는데 말이다. 멋진 8톤 트럭이 되어서 나의 인생2막은 내 꿈을 펼치며 살고 싶었나 보다. 생긴대로 살아야지 싶다. 그래도 원래 생겨 먹은게 반항 기질이 있나 보다. 이대로는 죽을 수 없다는 반항이 또 저 깊은 곳 어딘가에서 머리를 쳐든다. 안되면 풀옵션 경차라도 되야겠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대신 유럽 도시 한 달 살기는 어떨까? 또 꿈을 꾸어 본다. 요양 보호사로 일하며 돈을 모은다면 그 꿈은 이루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아! 영어가 딸린다. 여행 가는데는 영어 못해도 갈만 했다. 하지만

한 달 살기는 영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나는 풀옵션 경차의 삶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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