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망 Jan 12. 2024

대한민국 사투리가 다 모인 곳

요양원에는 우리 나라 사투리가 다 있다.

대한민국 사투리가 다 모인 곳은?

대학교 기숙사와 요양원이다.


대학을 가며 들어갔던 기숙사는 팔도 사투리 집합소였다.

서로 사투리 흉내를 내며 깔깔거리던 시절이었다.

신입생일수록 사투리가 심해서 어떨 때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길 정도였다.  그래도 서울 생활에 적응하고 싶은 여학생들은 억양은 남아 있어도 서울말을 배워갔다.  대학 기숙사의 사투리는 학년이 올라가며 옅어진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졸업할 때가 되면 서울말과 섞여 억양만 남아 있게 된다.  물론 같은 고향 출신의 친구들끼리 모이면 원래 찰진 사투리는 그대로 나오지만.


요양원도 팔도 사투리 집합소다.

처음 요양원 근무를 시작하며 사방에서 들려 오는 사투리가 낯설지 않았다. 묘한 기시감이었다.  처음 대학 기숙사에 들어서던 그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차이가 있다면 어르신들의 사투리는 훨씬 원색적이고, 강하다. 가끔 어르신들의 원초적 사투리에 당황스럽기도 하다.  특히나 사투리로 하는 찰진 욕은 마치 옛날 국산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어르신들의 사투리는 억양과 말투는 그러려니 해도, 원색적 표현에 가끔 할 말을 잃을 때가 많다.


특히나 밤에 몸이라도 불편하시면 원색적인 사투리의 볼륨이 올라간다.  다른 어르신들이 잠이라도 깨면 또 다른 지역의 찰진 욕이 섞인 사투리의 배틀이 벌어진다. 금방 머리채라도 잡을 듯  분위기가 험해진다.  민망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가끔은 웃을 때도 많다.


90세가 넘으신 이북 출신 어르신이 계신다.

'내래~', '~하라우'

어르신의 사투리다.

'박수 치라우'

기분 좋으시면 하시는 말씀이다.

6.25 전쟁과 피난민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86세의 광주 어르신도 계신다.

'~워메', '~해야', '나 죽것네',

는 이 어르신의 사투리가 제일 좋다.

목포 출신인 우리 엄마와 같은 사투리를 쓰신다는 이유로.

'자야, 워째 안자고 돌아다닌다야'

야근 하는 날.

주무시는 어른들의 방을 1시간 간격으로 라운딩할 때면 늘 하시는 말씀이다.


울산 출신의 어르신도 계신다.

'어째 그카노', '내사 마 싫다'

나는 이 어르신의 사투리는 정확하게 알아듣는다.  울산 옆동네 부산 출신인 지역적 이점이다.  가끔 광주 출신 어르신과 사투리 배틀이 붙을 때가 있다.  영호남의  혈전이다.   항상 승자는 없이 전쟁은 끝난다.

 

가끔 포항 어르신께 경상도 사투리를 시전했다가 한마디씩 듣는다. '지대로 하도 못함시롱 와 할라케샀노' 당했다!

광주 어르신은 나의 어설픈 사투리를 재밌어 하신다.  더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로 내 입을 막아버리는 고난도의 스킬을 구사하신다. 그리고는 너무 재밌어 하신다. 그 모습이 왜 그리 귀여운지!


서울 살이 40 여년이다. 억양은 남아 있어도 사투리를 하지는 않았다. 나이 들어가며 사투리가 툭툭 튀어나온다.

딸아이 말로는 너무 기분좋을 때, 당황할 때 부산 사투리가 튀어나온단다. 아마 나이 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젊어서는 힘이 남아 있어서 서울말 흉내라도 내고 살았었나 싶다. 이제는 모든 삶의 방어막을 내린 상태다. 부산 사투리 전라도 사투리 마구 섞였다.


나이 들어가며 남는 것은 그리움인가 보다. 어르신들의 사투리를 들으며 지나간 젊은날을 추억한다. 그 기숙사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팔도 사투리로 깔깔거리던 그 친구들도 이제 환갑이다.



작가의 이전글 애정행각? 마지막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