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정원

올 해 목표는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가 되는 것

by 이수


"**씨, 이 한자 한번 읽어보세요."

앗, 또다시 돌아온 한자 시간이다.


작년부터 내 작은 아빠 뻘쯤 되는 상사를 새롭게 맡게 되었는데,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종종 내 자리에 와서 이런저런 세상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재미있고 인품이 좋은 분이라 그 시간이 싫지는 않지만 가끔 이렇게 한자를 물어보면 내 무지를 들킬까 조마조마하다. 초등학생때 했던 눈높이 한자, 그리고 제일 쉬운 등급인 한자 8급 시험이 마지막 한자 공부였던 것 같은데...


한자 잘 모른다고 엄살을 떨며 종이를 슬쩍 보니 휴, 다행히도 쉬운 글자다.

8급 시험에도 나왔던 [밭 전 田] 자와 [마음 심 心] 자. 흥미롭게도 이 두 한자가 합쳐지면 [생각 사 思] 자가 만들어진다. 유래를 찾아보니 원래는 囟(정수리 신) 자와 마음 심자가 합쳐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밭 전 자로 잘못 바뀌어 이렇게 쓰게 되었다는 설이 있단다.


유래와는 상관없이, 내 상사는 밭 전 자를 정원으로 해석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마음의 정원을 돌보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했다.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것이지 않겠냐며, 스스로에 대한 생각과 돌봄도 멈추지 말라고. 실없는 농담을 끊임없이 던져 가벼워 보이다가도, 이따금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그는 상사보다는 어른에 가깝다.



*


딸깍.


집으로 돌아와 스탠드의 줄을 당겨 불을 켠다. 회색으로 어두침침했던 거실 한편이 노르스름한 빛으로 뭉근히 데워진다. 새해를 맞이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접이식 책상을 창가를 바라보게 두어 작게나마 읽고 쓰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원래는 커다란 다이닝 테이블을 창가에 두고 식탁 겸 서재 공간으로 써왔는데, 작년에 강아지를 입양하면서부터 테이블을 주방과 가까이 옮기고, 창가 쪽은 켄넬과 밥그릇을 놓아두는 공간으로 비워두었다. 게다가 작년에는 10개월 정도 시험공부를 하느라 저녁시간과 주말은 대부분 집 근처 독서실에서 보내, 집에서는 대부분 지쳐 쓰러져 누워 있었다.


시험만 끝나면 바로 다시 건강하고 이상적인 일상으로 뿅 하고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다. 공부를 안 해도 되니, 그 시간에 건강한 재료로 요리해서 저녁도 먹고 짬을 내어 책도 읽고 일기도 쓰는 알찬 시간을 보내야지 다짐했었다. 그러나 연말 두어 달 동안은 빼앗긴 것을 보상이라도 받아야 하는 듯, 저녁시간은 넷플릭스와 유튜브와 함께 한 배달음식의 파티였고, 집안일은 거의 손을 놓았기에 예전의 궤도로 돌아오는데 꽤나 품과 시간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멋대로 마음껏 게으르고 싶었다.


역시 쾌락과 고통은 하나의 저울, 또는 시소와 같은 것이라, 두 달 정도 타락(?) 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정적인 것, 건강한 것을 다시 채워 넣고 싶어진다. 생각보다 독서는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취미였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마음껏 몰입하여 읽고 어떤 것이든 끄적이고 싶어 져 미뤄두었던 서랍 정리도 하고, 다이어리와 문구류 쇼핑도 했다. 그리고 베란다에 두었던 접이식 책상을 창문 앞으로 옮겨 나만의 책상을 만들었다.


올해는 책상 앞에서 목마른 사람처럼 좋은 책들을 섭취하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좋은 문장을 손으로 옮겨 적는 시간, 즉 내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싶다.


정원에 어떤 씨앗을 심고, 어떤 열매가 영글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그 정원을 돌보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 햇빛을 쬐어주고 이따금씩 시원한 물을 줄 여유 있는 정원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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