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박이 유기견을 입양했습니다.
"얘는 종이 뭐예요?"
여느 때처럼 출근 전 산책을 하던 아침,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나의 점박이 개를 가리키며 물었다.
"얘는 믹스예요."
"뭔스?"
"믹스견이요. 똥개요. 종이 없어요."
나의 대답에 할아버지는 뭔가 아쉬운 듯한 눈빛으로 입맛을 다시며 지나갔다. '잉글리시 잭러셀테리어예요' 같은 멋진 대답을 기대했던 걸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답변이었나 보다.
종이란 무엇일까. 사냥이나 목축을 하던 옛 시절에는 역할에 맞는 종 개량이 필요했을지 몰라도, 이제 인간의 친구이자 가족으로 자리 잡은 개들에게 '종'이라는 이름표가 그리 중요할까?
물론 종마다 고유한 특성은 있다. 보더콜리는 똑똑하고, 리트리버는 친근하며, 비숑은 사교적이다. 입양할 때 이런 성격적 특징을 고려하는 것은 반려 생활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 나 역시 특정 품종견을 꿈꿨던 적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윤리적인 브리더를 찾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고, 결국 유기견을 입양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결론에 닿아 시루를 만났다.
사실 종을 물어보는 행위는 일종의 '아이스브레이킹'임을 안다. 시루는 특유의 점박이 무늬 덕분에 종종 시선을 끌고, 나 역시 새로운 강아지 친구를 보면 비슷한 질문을 던지곤 하니까. 하지만 믹스견을 입양하고 난 뒤로는 유독 다른 믹스견들에게 더 마음이 쓰인다.
믹스견 보호자들에게는 '예측 불가능함에 대한 사랑'을 경험했다는 유대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견이 되었을 때 크기가 어떠할지, 어떤 성격을 갖게 될지 확신할 수 없어도 "너를 책임지고 무조건 사랑할게"라고 다짐한 사람들. 그런 마음이 공유되는 것인지 믹스견 보호자를 만나면 할 이야기도 훨씬 많아진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하면 동병상련의 (특히 실외 배변만 한다면...^^ 비 오는 날에도 마주치는) 보호자들을 자연스레 만나게 된다.
여우를 닮은 럭키는 정읍 보호소에서 인천을 거쳐 지금의 가족을 만났고, 럭키가 다니는 유치원을 추천받아 시루도 함께 다니고 있다. 짜장 입을 가진 칸쵸는 안락사 직전에 극적으로 입양되었다. 무서운 인상과 달리 마음 따뜻한 칸쵸 아버님은 시루에게 배변 패드를 나눔 해주시며 "이 녀석 수발들기 힘들다"라고 툴툴대시다가도, "여기 목 부분 털 좀 만져봐요, 얼마나 부드러운지 몰라"라며 은근한 자랑을 멈추지 않으신다. 시루와 많이 닮았지만 성격은 훨씬 더 점잖은 점박이 보리도 있다. 외국인 남편과 한국인 와이프가 키우는 보리는 시루가 어릴 때부터 종종 만났는데 이제 시루가 보리보다 덩치가 커졌다. 시루는 보리에게서 매너 있게 인사하는 법을 배웠다. 아직 멀었지만.
(물론 산책길에 만나는 시바견 오늘이, 골든두들 쉐이디, 슈나우저 보라, 시츄 돌돌이, 웰시코기 마루도 모두 고유하게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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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아침에 종을 물어봤던 할아버지에게 종이 없다고 말한 것은 틀린 대답이었다. 시루는 얼마 전 DNA 검사를 했다. 믹스견과 사는 보호자들이 항상 마음 한편에 가지고 있는 궁금증. 종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시루는 어떤 강아지 조상을 가지고 있을까? 유전적인 질병은 없을까? 포천의 시골마을에서 3남매가 함께 발견되었다는 것 말고는 다른 정보는 모른다. 시루의 뿌리가 궁금해졌다.
인간의 DNA 테스트와 비슷하게, 강아지도 면봉 스왑을 한다. 물론 그게 뭔지 모르는 개를 붙잡고 면봉으로 볼 안쪽을 충분히 훑는 것은 두 사람의 힘과 협동이 필요한 일이었다. 축축한 면봉을 밀봉해 봉투에 넣어 미국 본사로 보내면, 2주 후 결과를 이메일로 알려준다. 참 좋은 세상이다.
시루의 DNA 결과는 대반전이었다. 한국 시골개 : 54% / 재패니즈 스피츠 : 19% / 여기까지는 예상된 결과였다. 그런데, 푸들 : 27% 가 나온 것이다..! 한국 시골개 (Korean Village Dog) 은 흔히 말하는 시고르 자브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혈통으로 유전적 다양성이 있다. 시루의 풍성한 모량과 민첩성은 스피츠, 높은 지능과 활동성은 푸들의 뿌리를 닮은 것이라고 했다. 당연하게도 근친교배 계수는 0% 였고 유전병은 없는 것으로 나왔지만, 눈 건강 관련 변이 유전자가 있으니 관리가 필요하다는 유용한 정보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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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라는 잉글리시 포인터를 보호소에서 입양한 안담 작가는, '무늬의 견종을 밝히는 일은 늘 꺼려진다'라고 말했다. '무늬의 외양을 탐내는 누군가가 '포인터'를 검색할까 봐, 그리고 곧바로 포인터를 번식시키는 공장과 가정집을 찾아낼까 봐 걱정이 된다'라고. 유기된 품종견을 키우는 이들의 이 복잡한 마음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한 지점이었다.
작가의 그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만히 곱씹어 본다. 어쩌면 특정 품종을 향한 우리의 열광이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이기심을 자극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극적인 공급망을 견고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여전히 시루를 특정 종으로 정의 내리고 싶어 하겠지만, 그리고 나는 스피츠와 푸들이 섞인 시고르 자브종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시루는 어떤 단어로도 묶이지 않는 그저 '시루'일뿐이다. 우리는 기능을 위해 개를 분류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존재 그 자체를 위해 개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내일부터는 이렇게 인사해야지.
"얘는 무슨 종이예요?" 대신, "이름이 뭐예요?"라고.